[양미르의 영화영수증 #175] <새벽의 Tango>
김효은 감독은 장편 데뷔작에서 딱 부러지는 선택을 하지 않는다. 악인을 만들지 않겠다는 결심, 로맨스로 수렴시키지 않겠다는 결심. 그 두 가지 거부 사이에서 영화는 스스로 표류한다. 마치 탱고처럼. 탱고는 한 사람이 이끌고 한 사람이 따르는 춤이 아니다. 밀착과 거리, 기다림과 속도 조율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춤이다. <새벽의 Tango>는 그 형식 자체를 영화의 방법론으로 삼는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명쾌하지 않은 만큼 오래 남는다.
친구의 배신으로 보증금을 통째로 날린 '지원'(이연)은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듯 숙식 제공 공장에 취직한다. 공대를 졸업한 27세 여성이 중소 제조업 라인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이미 '지원'이 얼마나 막다른 곳까지 몰렸는지를 말해준다. 면접장에서 '지원'은 전략적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대신 자포자기한 사람처럼 솔직하게 현재 상태를 털어놓는다. 어차피 떨어질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덜컥 붙는다. 그 얼떨떨함이 이 영화의 출발점이다. '지원'은 정 붙이지 않을 곳에 잠시 머물다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 '지원'의 룸메이트로 들어온 '주희'(권소현)는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병든 아버지를 부양하면서도 명랑하고, 손해 보면서도 불평 없이 먼저 손을 내밀고, 무엇보다 아무 대가 없이 친절하다. '지원'의 시선에서 '주희'의 호의는 의심스럽거나 불가사의하게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지원'이 지금의 지경에 이른 것은 바로 그런 다정함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주희'는 뜬금없이 제안한다. 탱고 파트너가 없으니 한 곡만 함께 완성하자고. '지원'은 마지못해 수락한다. 자신도 '주희'에게 부탁할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틈새 시간마다 발을 맞추기 시작한다. 일과가 끝난 뒤, 공장 건물 한편에서. 서로의 발을 밟고 스텝이 꼬이면서도 조금씩 상대의 리듬을 감지해간다. 불안을 잠시 내려놓고 몸을 맡기는 그 짧은 시간이, 두 사람에게 가장 가벼운 순간이기도 하다.
영화의 균열은 조장 '한별'(박한솔)로부터 시작된다. 19세의 나이에 조장 자리를 꿰찬 '한별'은 능력 있지만 그 능력을 선한 방향으로 쓸 줄 모른다. 영화는 '한별'을 노골적인 악인으로 만들지 않는다. 대신 '한별'을 강박과 불안에 시달리며 주변을 통제하려 하는, 연결되고 싶을수록 오히려 고립되는 인물로 그린다. 문제는 '한별'이 두 번 타인에게 서명을 강요하는 사건이다. 첫 번째로 인해 누군가 영구적 장애를 얻고, 두 번째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한별'은 자기합리화로 일관하며 책임을 회피한다. 그 여파가 '지원'과 '주희'의 소박한 일상을 뒤흔든다.
이 지점에서 세 인물의 대비가 선명해진다. '지원'은 불편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끝내 선택을 해야 하는 자리에 놓인다. '주희'는 홀로 모든 것을 감당하려 한다. '한별'은 책임을 피한다. 김효은 감독은 이 세 가지 태도 중 어느 것이 옳다고 판정하지 않는다. 감독 스스로 밝혔듯, 이 영화의 출발점은 "믿음 또한 결국 내가 한 선택"이라는 인식이다. 믿음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 그렇다면 배신당한 피해자도, 손해 보면서 친절을 베푼 사람도, 사인을 강요한 사람도, 각자의 방식으로 그 책임의 무게 앞에 서 있다.
단편 <거북이가 죽었다>(2021년)부터 이어진 이연과 김효은 감독의 협업은 이번 장편에서 더 깊어진다. 김 감독은 이연에 대해 "감정을 극도로 절제하면서도 찰나의 눈빛만으로 인물의 내면을 표현해낸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원'이 가장 많은 것을 말하는 순간은 대사가 아닌 표정과 침묵이다.
권소현은 주희의 엉뚱하면서도 진심 어린 에너지를 특유의 싱그러움으로 구현한다. 이미 독립영화 씬에서 착실히 필모를 쌓아온 권소현은 이번 작품에서 닫힌 문을 두드리는 다정함을 소화하며 지원과의 케미를 만든다. 박한솔은 미워하기만도 어려운, 연민과 혐오가 뒤섞이는 한별을 섬세하게 조각한다. 세 배우의 앙상블이 이 영화의 가장 확실한 자산이다.
한편, 영화의 제목에서 'Tango'가 영문으로 표기된 데에도 이유가 있다. 김효은 감독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시작된 이 춤의 원형, 즉 고향을 떠나 낯선 땅에 모인 이들이 서로의 외로움을 나누기 위해 가슴을 맞대고 '함께 걸으면서' 시작된 춤, '땅고'의 정서를 담고 싶었다고 밝혔다. 화려하게 변형된 서구식 '탱고'가 아니라, 관계의 본질을 간직한 '땅고'. 영화를 보고 나면 이 단어를 자연스럽게 '땅고'로 발음하게 될 것이라는 감독의 믿음이 제목에 담겨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무엇일까? 악인을 만들기를 거부했기에 카타르시스는 없다. 러브라인을 표방하지 않았기에 감정적 해소도 명쾌하지 않다. 영화는 그 두 가지 욕망의 사이에서 의도적으로 표류한다. 탱고가 두 사람이 함께 걷는 춤인 것처럼, 이 영화도 어느 한 방향으로 치닫지 않는다. 어둠으로 스며드는 이른 저녁으로 시작해 빛을 향해 나아가는 새벽으로 끝나는 구조가, 인물의 내면 여정을 가장 정직하게 대변한다. ★★★
2024/12/02 CGV 압구정
- 제50회 서울독립영화제(SIFF) 상영작
※ 영화 리뷰
- 제목 : <새벽의 Tango> (Tango at Dawn, 2026)
- 개봉일 : 2026. 04. 22.
- 제작국 : 한국
- 러닝타임 : 117분
- 장르 : 드라마
-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감독 : 김효은
- 출연 : 이연, 권소현, 박한솔, 오경주, 박서은 등
- 화면비율 : 2.39: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