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미르의 영화영수증 #174] <고트: 더 레전드>
<고트: 더 레전드>를 보고 나서 머릿속에 맴도는 이미지는 두 가지다. 하나는 덩굴과 그래피티로 뒤덮인 도시 '바인랜드'의 첫 장면, 마치 인류가 사라진 뒤 자연이 슬며시 돌아온 것처럼 이끼와 넝쿨이 빌딩을 감싸안은 그 풍경. 다른 하나는 "이거 <주토피아>(2016년) 아닌가?" 비주얼은 새로웠는데, 이야기는 어딘가 익숙했다. 그 간극이 이 영화를 정확히 설명한다.
염소 '윌 해리스'(케일럽 맥러플린 목소리)는 거대한 동물들이 지배하는 '으르렁 농구' 리그에서 뛰는 꿈을 가진 소년이다. 작은 체구 탓에 세상이 그에게 불가능하다고 할 때마다 '윌'은 공을 잡는다. 그러던 어느 날, 라이벌 팀의 에이스 '메인 어트랙션'(에런 피에르 목소리)과 벌인 길거리 일대일 대결 영상이 SNS에서 화제가 되고, '바인랜드 쏜스'의 구단주 '플로'(제니퍼 루이스 목소리)는 침체된 팀에 활력이 필요하다는 계산 아래 '윌'을 영입한다.
팀의 에이스인 표범 '제트 필모어'(가브리엘 유니온 목소리)는 당연히 반발한다. 리그 최고의 선수이면서도 단 한 번도 챔피언십 트로피를 들지 못한 '제트'에게, 주목받고 싶어서 데려온 염소 한 마리는 자신의 레거시를 위협하는 잡음처럼 보인다. 이 설정은 기시감이 짙다. 약자가 편견의 벽을 뚫는다. 팀워크가 개인 실력보다 중요하다. 꿈을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길이 열린다. <주토피아>가 그랬다.
공동 연출을 맡은 아담 로제트는 "이 영화는 스포츠에서 높은 목표를 향해 도전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꿈을 가진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선의 있는 발언이지만, 스크린 위에서 그 야심이 얼마나 구현되었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윌'은 처음부터 선하고, 재능 있고, 겸손하다. 그런 그에게 내적 결함이 없으니, 성장도 없다. 실제로 변화하는 건 '제트'다. 독불장군 에이스가 팀 플레이어로 거듭나는 서사가 영화의 진짜 척추인데, 포스터의 주인공은 '윌'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괜찮은 이유는 비주얼에 있다.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2023년), <케이팝 데몬 헌터스>(2025년)의 제작진이 이번에는 동물 세계관으로 무대를 옮겼고, 그 감각은 여전히 살아있다. '바인랜드'는 <주토피아>의 도시처럼 깔끔하게 설계된 공간이 아니라, 허물어져 가는 도심에 생명이 기어오르는 곳이다. 담벼락의 그라피티, 녹슨 농구 골대, 덩굴이 뒤엉킨 경기장 같은 질감들이 영화에 하나의 계층감을 부여한다.
타이리 딜리헤이 감독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가장 경이롭고 초현실적이면서도 동물적인 코트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라고 밝혔는데, 6개 생태 구역 각각의 경기장(용암 위의 코트, 얼음판 위의 경기, 석순이 떨어지는 동굴)은 그 말을 근거 있게 뒷받침한다. 언리얼 엔진을 전격 도입해 100명 이상의 군중 씬을 실시간으로 구현한 기술력도 화면의 밀도에 이바지한다.
NBA의 살아있는 전설 스테판 커리가 제작 전반과 기린 '레니 윌리엄슨' 목소리 연기에 직접 참여한 건, 이 영화의 정체성을 선명하게 만드는 선택이었다. 고교 시절 180cm도 채 안 되는 키에 농구 명문 대학들에게 외면받았던 스테판 커리의 실제 이력은 '윌'의 서사와 겹친다. 커리는 "나도 역시 과소평가되고 주목받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자신감을 찾았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이 영화에 유효하게 작동하는 이유는, 스테판 커리가 스타덤을 얻기 위해 자신을 뜯어고친 게 아니라 자신만의 플레이 방식 자체로 농구의 패러다임을 바꿨기 때문이다. '윌'도 마찬가지다. 그는 거대한 동물처럼 몸싸움을 배우는 게 아니라, '스몰'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코트를 흔든다.
돌아오면 결국 이 물음이다. <고트: 더 레전드>는 "드림 빅"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얼마나 영리한 방법을 선택했는가. 대답은 절반쯤이다. 세계관은 독창적이고, 비주얼은 아름다우며, 캐릭터들 사이의 역학은 종종 재미있다. 하지만 서사가 지나치게 예측할 수 있는 위치에 놓여있고, "꿈을 포기하지 마라"라는 메시지는 그걸 뒷받침하는 이야기보다 먼저 도착한다.
<주토피아>가 편견이라는 사회적 구조를 우화로 빚어낸 데 비해, <고트: 더 레전드>는 그 편견을 배경 삼아 스포츠 영화의 공식을 충실히 따른다. 공식이 나쁜 건 아니다. 그 공식 안에서 이 영화는 충분히 유쾌하고, 비주얼만으로도 극장 스크린을 정당화한다. 다만 끝나고 나서 무언가 더 남길 바랐다면, 그 기대는 반만 채워진다. 작은 염소가 꿈꾸는 이야기는 언제나 응원하고 싶다. 다음번엔 그 꿈이 조금 더 새로운 언어로 도착하길 바란다. ★★★
2026/04/09 롯데시네마 건대입구
※ 영화 리뷰
- 제목 : <고트: 더 레전드> (Goat, 2026)
- 개봉일 : 2026. 04. 17.
- 제작국 : 미국
- 러닝타임 : 100분
- 장르 : 애니메이션, 액션, 모험, 코미디
- 등급 : 전체 관람가
- 감독 : 타이리 딜리헤이, 아담 로제트
- 목소리 출연 : 케일럽 맥러플린, 가브리엘 유니온, 스테판 커리, 니콜라 커그랜, 데이빗 하버 등
- 화면비율 : 2.39: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