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의 배우들을 말하다
뭐랄까..
잔인한 살육을 소재로 한 영화는 널리고 널렸다.
나홍진 감독의 <곡성>은 언뜻 보자면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영화들, <빌리지>나 <<싸인>, <해프닝> 처럼 뜬금없는 공포, 실체가 있는 듯 없는 듯한 공포의 장치와 닮아있다. 샤말란의 영화는 실체없이 옥죄어 오던 공포들이 종반부에서 어이없게 해결되거나 소멸되어 버리지만 관객을 각성케한다.
결국 이 공포는 인간들이 자초한 인재이니 앞으로 조심하라는 경각이 담겨져 있는 반면 나홍진 감독은 인간의 본질, 심연의 모습에 더 중점을 둔다.
강동원이 입으면 사제복도 '간지'로 승화된다며 여성 관객들에 의해 본질이 흐려져 개인적으로 안타까움을 자아냈던 영화 <검은 사제들>과도 소재나 주제면에서 겹치긴 한다. 이를테면 악마에게 찍히면(?) 스토커도 그런 상스토커가 없다는 설정과 악마와 인간의 지난한 싸움 같은 것 말이다.
그럼에도 <곡성>만의 차별성 혹은 독특함(매력이라 해도 좋고..무엇이든간에)은 분명 있다.
156분의 긴 러닝타임이 지루할 틈없이 전라도 사투리로 표현되는 유머와 공포의 극대화.
스토리에만 의존하는 영화가 아니라 배우들이 스토리를 입고 있는 듯한 캐릭터의 육화.
롤러코스터를 타고 정점에서 내려올 때의 짜릿한 공포를 보여주기 위해 웃길 때는 관객들을 얼마나 웃게 하는지..그러다 소스라치게 만드는 사악한 한 방.
좀 전에 웃겼던 모든 것들이 다시 어두운 공포 속으로 빨려 들어갈 때는 웃느라 이완되었던 근육들이 일순간 긴장되는 탓에 영화를 보는 내내 뒷목이 결렸다. 씨.
음향과 영상미 또한 나홍진의 계산에서 한 치 흔들림이 없다.
붉은 빛이 서서히 산을 감쌀 때의 아름다운 산노을의 영상미는 조용한 산골짜기 마을에서 일어나는 잔인한 살생이 더 극적으로 부각되고, 까마귀들이 날아 오르며 신경질적으로 퍼드득 거리는 소리는 또 '그 다음에 무엇이 나오려나..'로 놀랄 준비를 하며 예민해진다.
스토리 보다 배우 이야기를 좀 해보자.
러닝타임 내내 영화를 끌고 나가는 곽도원은 제법 부담을 느꼈을 법 하지만 능글맞음, 우유부단함, 분노, 슬픔, 탄식..등 인간이기 이전에 아비가 가져야 할 감정들을 참 잘 읽어내었다. 그의 딸로 나오는 아역배우
'김환희'의 연기에 ‘아역’이라는 타이틀을 붙이지 말자. 이 아이는 어리지만 어른배우 못지않게 압도적으로 연기를 한다. 신들린 연기란 이런 것임을 보여주는 진짜 배우, 김환희..이 배우의 능청스러운 연기에 얼마나 웃고, 가슴 아프고, 또한 얼마나 심장이 쪼그라 들었나.
영화 후반부에나 등장하는 황정민이 단번에 이 영화를 어떻게 찜쪄 먹는지도 <곡성>의 독특한 매력 중 하나이다.
그의 연기가 얼마나 미쳤느냐는 스토리를 이야기해야 하므로 그냥 삼키겠다.
<국제시장>과 <베테랑>으로 천만 배우를 두 번이나 해먹었고, <히말라야>와 <검사외전>의 못지않은 흥행으로 이미 수천만 명 을 끌어들인 배우가 되어 버린 그에게 어떤 이는 감히 지겹다고 말한다.
그는 늘 변한다. 그것만 알아 두시라.
<곡성>에서 그의 매력은 시쳇말로 포텐 터진다.
비록 그의 분량은 30분 남짓이지만 보고 나서 내내 미친 듯이 연기하는 그 장면만이 떠오른다.
쿠니무라 준의 눈빛과 천우희의 목소리는 공포영화에 더할 나위없이 어울린다.
천우희의 떨리는 목소리는 영화 <써니>에서도 본드에 취한 채 덜덜 떨며 자기를 왜 버렸느냐고 친구의 사랑을 갈구하던 그 때부터 남달랐다.
영화는 산을 자꾸 비춰준다.
등산 애호가들이 보면 '저 산이 도대체 어딘고?' 마구 맞히고 싶어 할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 그 깊숙한 골짜기에 있는 마을에서 일어나는 기이하고 참혹한 사건들.
이것은 어쩌면 인간성 가장 깊숙이 숨어 있는 악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악마적 본성은 스스로 짐짓 모른 척 하고 살 뿐, 나는, 그리고 당신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자신만의 잣대로 의심하고 재단하고, 결론 짓는다. 실로 내가 보고 느낀 것이 아님에도 실체없는 이미지를 형상화함으로써 내려 버리는 결론은 누군가를 처참히 죽일 수도 있다.
내 속에도 아직 드러나지 않은 악마적 본성이 숨어 있겠지만, 가족에게 넘치도록 받은 사랑의 힘이 저 끝에서 팽팽히 당겨주니 잘 끌려가지 않을 뿐이다.
주인공도 나도 우리도 모두 그러할 뿐이다. 언제 악마성이 튀어나올 지는 시간문제일 것이다. 악마적.본성을 막을 별다른 결계가 있겠는가.
그저 서로 사랑할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