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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노래 May 25. 2022

<우린 열한 살에 만났다>

우린 열한 살에 만났다(옥혜숙, 이상헌 저)

-우린 열한 살에 만났다-


한 편의 영화 같은 재미있는 책을 만났다.

우리 삶이 다 드라마고 영화지만 요소요소에 유머와 위기, 아픔, 희망, 절망 등 인생의 페이소스가 진하게 담긴 이들의 삶은 마치 영화 '클래식'의 해피엔딩 버전 혹은 드라마 '스물 다섯 스물 하나'의 다른 결말 버전이라고 할까.

5학년  같은 학급 친구로 만나 서로에게 막연한 애정을 품고 있던 남자아이와 여자 아이는 스무  되기 직전에 인연의 실이 연결되어 다시 만난다.   현실의 파도를 끈기 있고 슬기롭게 넘으며 결혼을 한다.

연애의 해피엔딩은 결혼이라고 할 수 없다. 다만 둘이 함께 행복하고자 노력하는 시간의 연속은 진정한 해피엔딩이라 하겠다. 이들은 참 귀엽고, 애틋하고, 지혜롭게 결혼 생활을 이어간다.

여자와 남자가 사랑할 때 그들의 사랑은 주로 주변인들의 간섭에 의해 지치고 퇴색되거나 변질될 때가 많다.

그러나 이들의 이야기에는 사랑을 지켜주는 주변인들이 더 많다.

어쩌면 남자의 인간관계와 여자의 인성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그들의 주변인들을 울타리로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흡사 남자와 여자의 교차 일기같은 이들의 이야기는 그들의 마음으로부터 스르르 이어진다.

5학년 때 앉고 싶은 짝 이름을 적어내는 사건을 시작으로 남자의 이야기와 여자의 이야기가 살포시 만나는 것이다. 하나의 화면에 두 개의 장면을 동시에 보는 느낌이다.

이런 아이디어.. 참 좋다.

마치 '바이브'의 노래 < 그 남자 그 여자 > 같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살았는데 나는 왜 이런 몽글한 연애를 못 했을까.. 하는 회한은 넣어둬야겠다. 어차피 내 남자도 우리가 만난 29살 이전까지 여자 손 한 번 못 잡아봤으니 우린 둘 다 바보 비슷한 멍충이 비슷한 오징어들이다.

누구는 이렇게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서로를 마음에 두고, 잊지 않고, 기억하고, 스무 살 직전에 서로를 찾아 예정된 길이었던 것처럼, 아니 다른 선택은 애초에 없던 사람들처럼 확신을 가지고 결혼을 하는데 나와 남편은 어떤가.

우리도 초등학교 동창인데 말이다.



'똑똑한 남자와 사는 여자는 어떨까' 가끔씩 상상을 한다.

내 남편이 똑똑하지 못하다는 말은 아니다. 그도 어떤 부분에서는 똑똑한 것 같다.

그런데 고질적으로 이름을 못 외운다.

정치인 이름은 잘 외우는데 이상하게 유명한 연예인들의 이름을 못 외우는 고질병이 있다.

가령 '조혜련'을 '조미련'이라 그러고, '줄리아 로버츠'를 '줄리아 바바라'라고 아주 자연스럽게 말하고, 어떨 땐 맥도날드를 롯데날드라고 한다. 이제 뭐 아무리 개떡같이 말해도 나는 다 알아듣는다.  

더 이상 정정해 주지도 않는다.

무튼, 이 책 속의 이상헌 님은 그의 수재적 머리와 끈기와 용기로 일반인들 같으면 의사의 진단에 따라 아이에게 뇌수술을 시켜야 했을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고 길을 찾고 길을 만들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어찌나 조마조마하고 나중에 안도가 되던지 말이다.

이들 부부에게 딸은 '바람'이라고 한다. 바람이 그들의 인생을 한국 밖으로 움직인 것이라며.

우리는 운명론자가 아닌 척하며 살지만, 비록 내가 놓은 돌다리들이 나를 여기로 데려다 놓았지만, 결국 되돌아보면 어차피 내가 찾기 쉽게 돌들이 내 주위에 있었기에 인생의 험한 강을 넘을 수 있었지 않을까.

모든 것이, 모든 인연들이, 모든 상황들이 우리 앞의 돌다리인 것이다.

나는 가끔씩 딸과 아들에게 이 '돌다리' 개똥철학을 말한다.

돌다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발 앞의 한 개.. 그거 한 개만 놓고 그다음엔 또 한 개.. 또 한 개.. 그렇게 놓다 보면 어느새 건너와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니 긴 목표를 정하는 것이 힘들면 그저 눈앞의 상황을 건널 돌다리만 하나 놓으라고 말한다.


이상헌 님 보다 학력고사 성적은 딸려도 심성고사 성적은 상위 0.1% 일 것 같은 옥혜숙 님은 너무 대단하다.

심성에서 나오는 지혜가 대단하다.

책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나는 옥혜숙 님에게 반하고 또 반한다.

남편이 이토록 깊게 신뢰하고, 의지하고, 자랑하고, 사랑하는 여자의 매력을 하나하나 전하고 싶지만, 이 궁금증은 책으로 직접 확인하시라.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앞두고 있거나, 결혼 생활에 지치고 힘에 겨운 이들이 읽으면 좋겠다.

지금 둘이 함께 시절을 보내고 있다면, 하나 보다 둘이 강하다는 것을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물론 마음을 맞추고, 서로를 잘 들여다봤을 때 일이다.


결혼 생활을 오래 한 이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

많은 것을 망각하고, 소진한 채 살았지만, 첫 만남-첫 순간-첫 아이-첫 내 집 등의 기억을 함께 꺼내 보시라.

그러면 기억들이 뽀송한 솜처럼 사르르 올라올 것이다.  

그 재미로 중년의 결혼생활을 다시 가볍고 산뜻하게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들처럼 '우린 ___ 살에 만났다'도 소환해보자.



<번외 - 우린 스물아홉 살에 만났다  Song by Moon >


남편과 나는 29살 가을, 추석 전날 노래방 대기실에서 우연히 만났다.

추석 하루 전날이라 집에 있기도 뭐해서 나는 친구들과 도피성으로 노래방에 갔다.

당시 노래방은 우리 같은 애매한 부류의 종족들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는 빈 방이 나올 때까지 노래방 입구 긴 의자에 앉아 뻘쭘하게 대기하고 있었는데 함께 있던 친구 혜정이가 노래방 문을 열고 들어오는 웬 꺽다리와 뚱뚱이에게 아는 척을 하는 것이다.

얘네 셋은 같은 대학교 서클 친구였다.

그런데 꺽다리가 나에게도 아는 척을 한다.

'아니, 이 꺽다리가 나를 어떻게 알지?'


"저, 봉학 국민학교 안 나왔어요?"

허걱..

그렇게 서로 국민학교 동창인 것을 확인하고 분위기가 애매하게 돌아갔다.

여자 셋, 남자 둘은 이왕 친구끼리, 친구의 친구끼리 만났으니 방이 나오면 같이 들어가서 놀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뭐 두 번 보겠나 싶어 정신줄을 놓고 노래를 불렀다. 아니, 춤이었나.

꺽다리 남자는 정말 음치 중에 상음치였다.

음치들은 묘하게 귀엽지 않은가.

노래방 시간이 다 끝나가고 모두가 지쳐 마지막 곡을 서로에게 미룰 때 나는 못 이기는 척하고 'I will always love you'를 눌렀다. 그리고 눈을 감고 멋진 척하며 불렀다.

꺽다리 남자는 아니, "음치-꺽다리 남자"는 노래방에서 당시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를 부르는 여자는 처음이라며 눈에 하트가 켜졌다.

나도 이 음치 꺽다리가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이미 서른을 앞둔 늙다리 싱글이었다.

'우린 열한 살에 만났다'의 옥혜숙과 이상헌은 열한 살에 만났고 열아홉 살에 다시 만나 길게 연애할 시간이 많았겠지만, 우리는 29살 9월 10일에 만나 30살 2월 4일에 결혼했다.

다섯 번째 만남에 6학년 4반 송상언은 얇은 실반지를 주며

"미래애~ 나 10월 3일에 스위스로 연수 간다. 다녀오면 결혼하자."

"야, 내 이름도 정확하게 안 부르는 너랑 결혼을.. 하지 뭐. 근데 연수 가서 언제 오노?"


우리가 실제 사귄 기간은 채 두 달이 못되었다. 9월에 만나 남자는 10월부터 12월까지 회사에서 스위스로 연수를 보냈고, 1월에 돌아와 2월 초에 결혼했으니 말이다.

연애가 모자란 우리의 결혼생활은 어땠을까..

신혼 3년 간 정말 피 터지게 싸웠다.   

우리에겐 연애 세월이 주는 보드라움이 턱없이 모자랐다.  

아무리 초등학교 동창이었어도 이미 '내가 낸데~' 하는 자아 강한 두 인간이 만났으니 충돌할 일이 많았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모난 부분을 피를 철철 흘리며 둥글게 만들었다.

결혼 이듬해 딸을 낳고, 딸이 태어난 이듬해 친정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다시 새로운 생명인 아들이 태어나고, 10여 년간 병상에서 전신이 마비된 채 누워 계셨던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내가 아프고, 또 아프고, 자꾸 아프고, 막내 시동생이 죽고..  

만남과 아픔과 이별의 순간들을 공유하며 함께 인생의 파도를 넘으니 이제는 이렇게 좋은 남편이 또 없다.  

분명 우린 초등학교 동창인데 남편은 이제 내 엄마 같고 마누라 같다.

혹시 나는 남편에게 아버지 같고 남편 같은 건 아닌지. 이건 좀 곤란한데 말이다.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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