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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다 Dec 19. 2020

내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2)

#애착의 대물림 #아이를 자유롭게 사랑하고 싶은 부모를 위한 빨간약

메인사진 by Liv Bruce on Unsplash.


불안정한 애착으로 괴로웠고, 이제는 부모가 된 당신에게. 



지난 글을 먼저 읽고 오시면 좋습니다. 

애착이 무엇이고, 애착 때문에 고민해야 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설명합니다. 



이 글에 관심을 가지는 분들이라면 애착이나 양육과 관련한 책들을 많이 읽어도 보고(그러나 어떻게 하라는지 뚜렷하게 감이 안 잡히는), 주변인들에게 고민도 털어놔 보고(그러나 속시원히 해결은 안 되는) 그러다 책과 다른 사람의 조언은 그냥 저 세상 얘기.. 어쩌라는 거지 내 애를 너희들이 키워봤냐 ㅠㅠ 하는 마음일 수도 있겠다고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육하면서 뿌리가 단단하고 안정감 있는 부모가 되고 싶은 소망이 참 큰 분이라고, 나와 아이를 잘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큰 사람이라고 상상해 보았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애착이 대물림되는 방식과 불안정한 애착이 '나의' 자녀에게까지 가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내용들 자체가 워낙 방대합니다. 책 수백 권, 논문 수천 편이 나올 수 있거든요. 그래서 위와 같은 고민을 가졌던 분들이 좀 더 쉽게 이해하도록, 지금 당장 시도해 볼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 드리기 위해 좀 더 많이 고민하고 자세히 써볼까 합니다. 



오늘 글을 읽고 나면 불안정 애착을 가진 부모가 아이를 잘 양육하는 게 왜 어려운지 알게 되실 것입니다. 





애착의 대물림



애착은 규칙입니다.


아이가 부모와 어떻게든 관계를 맺으려고 하고, 부모 아래에서 생존하려고 노력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부모가 민감하고 수용적이고 공감하며 한계를 잘 설정한다면 아이는 이런 부모와 관계 맺기 위해 안정애착을 발달시킵니다. 그런데, 부모가 공감을 잘 못하는 사람이면? 훈육을 할 때 잘잘못을 가르쳐주는 건지 화풀이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면? 아이에게 공감은 잘해주지만 해결은 못하고 자신이 더 힘들어하는 부모라면? 그래서 아이가 결국 입을 닫게 되었다면? 더 나아가 학대와 방임이 일어났다면? 아이는 그런 부모 아래에서 살아보려고 그 부모에게 맞춤형 방식으로 불안정 애착을 발달시킵니다. 



이렇게 애착을 부모 대응형으로 발달시킬 수 있는 건 모든 아이의 마음속에 애착을 만들어내는 규칙 시스템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 부나 모, 혹은 부모와 관계가 건강하지 못했을 뿐인데 왜 몇십 년이 지나도록 강력하게 작동하는지 그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그런 방식으로 애착하는 것이 규칙이니까요. 규칙은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 규칙이 태어나서 처음 생존하는 데에 무척 중요했고, 감정적으로 이런 규칙에 익숙해져 있는데 이후에 규칙에서 벗어나는 행동과 말을 하려고 할 때는 안전감에 빨간불이 들어옵니다. '네가 맨 처음 살아남았던 그 패턴이 아니야!' 하면서요. 



애착 규칙은 세상과 자기 행동의 선택들에 대해 여러 가지 대안들을 미리 머릿속에 그려서 살아남는 가능성을 최대한 높이는 방법입니다. 이를 통해 아이는 부모를 대하는 여러 방식 중 뭐가 최선일지 실험해보고 그중 생존에 좋은 것을 선택합니다. 다음 같은 질문을 던지면서요. 


날 살려줄 사람, 누구야? 

내 애착 대상은 어디 가면 찾을 수 있지?

이 사람은 나에게 어떻게 대할까?

내가 다가가도 될까? 나를 거절할까? 나에게 일관적일까? 나를 죽이려나? 


이런 질문을 안고 아이들은 부모와 계속 상호작용합니다. 

질문을 하고, 애착 대상의 응답을 듣습니다. 그것을 무수하게도 많이 반복합니다. 

그렇게 해서 아이의 생존에 가장 적합한 애착 규칙 시스템이 만들어집니다. 





불안정 애착 규칙이 얼마나 경직되어 있는지!


애착을 만들어내는 규칙 시스템이 어떤 사람에게 불안정 애착을 기본값으로 만들었다고 가정해 볼게요. 불안정한 애착 패턴으로 성장한 사람은 애착 규칙이 경직되어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이 규칙에서 벗어나는 생각이나 감정은 마음에 부대끼게 됩니다. 부모라면 누구나 아시겠지만, 아이에게 적절하게 반응해 준다는 건 온몸의 안테나를 바짝 세우는 일입니다. 경직된 규칙을 가진 부모는 자기 규칙을 잘 확보해 내느라 온 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때문에 아이의 것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습니다.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는 애를 쓰고 아이를 잘 양육하고자 하는 마음이 의식적으로는 있을지 몰라도, 애초에 아이에게 쏟을 수 있는 정신 에너지가 안정형인 부모보다 적습니다. 마치 전쟁 중 적을 살피며 잔뜩 긴장해 있는 사람에게 저글링을 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비유하자면 이렇다는 겁니다. 



불안정 애착이 허락하지 않는 '마음에 대한 마음'


양육을 안정되고 일관되게 하는 사람들을 살펴보았더니 그들이 아이에게 주는 능력이 있더랍니다. 바로 '마음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또 다른 마음'입니다. 다른 말로 마음에 대한 메타인지능력입니다. 되돌아볼 수 있다(reflective) 해서 성찰기능이라고도 합니다. 정신화라고도 하지요. 요새 메타인지 학습법 책이 육아서에서 꽤 인기라 들어보신 분도 많을 것 같습니다. 메타인지능력은 '내 꼴이 어떤지 아는 능력'입니다. 공부를 잘한다고 무조건 메타인지 능력이 뛰어난 게 아닙니다. 내가 이번 시험에서 몇 점 맞을 것 같다고 예측을 해서 그걸 근접하게 맞추면 메타인지능력이 뛰어난 것입니다. 공부를 쭉 잘하려면 이번 시험 100점 맞는 것보다 알아야 하는 내용이 무엇이고, 나는 그것을 얼마큼 알고 있고, 모르는 것은 무엇인지를 아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 메타인지 학습법의 요지입니다. 안정형 부모가 아이에게 주는 것이 바로 마음에 대한 메타인지 능력, 성찰기능, 정신화입니다. 아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욕구가 무엇인지, 행동 뒤에 숨겨져 있을 법한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능력. 그것이 안정형 부모가 가진 능력이고, 이 능력은 아이와의 대화, 행동, 상호작용을 통해 아이의 애착 규칙 시스템에 고이 저장됩니다.  



불안정 애착을 가진 부모들의 불리한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들이 가진 애착 규칙은 경직되었고, 마음을 보는 또 다른 마음에 대해 살펴볼 여유가 없습니다. 한 걸음 물러서서 자신의 경험을 되돌아볼 여유지요.



불안정한 애착의 부모로서 이 글을 읽든, 자녀로서 읽든 위의 내용은 참 가슴이 아픕니다. 부모 돈의 많고 적음을 금수저와 흙수저로 비유하던데, 정서적인 흙수저로 태어났다면 이 얼마나 가혹한가요. 그들의 부모 역시 부모로부터 척박한 반응 아래 자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고 자녀에게까지 이 척박함을 물려주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방법은 있습니다. 




불안정 애착으로 자란 성인, 자녀를 안정되게 키울 수 있다?



한 실험이 있습니다.

Fonagy라는 정신분석학자이자 임상심리학자가 무려 33년 전에 실시한 실험입니다. 출산을 앞둔 100명의 부부를 모집하여 성인이 된 그들의 애착을 측정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들이 나중에 출산한 아이들이 돌이 되었을 때의 애착 유형과 일치하더랍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애착 경험이 부정적이었던 부모들이 있었는데 이들의 아이들은 부모와 애착 유형이 다르게 무척 안정적이 더랍니다. '애착의 대물림'이 깨진 것이죠.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연구자는 바로 그 집단의 무엇이 아이들을 안정적으로 키웠는지 확실하게 밝혀내려고 또 다른 실험을 했습니다. 연구에 참여한 엄마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었습니다. 첫 번째 집단은 애착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고, 두 번째 집단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애착에 심각한 문제를 가진 엄마의 자녀 중에 엄마가 성찰기능이 높으면 아이들이 모두 안정애착이었습니다. 

성찰기능이 떨어지는 엄마들의 아이들은 17명 중에 단 한 명만 안정애착이었습니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실은 부모가 안정애착인 사람인 것보다 성찰기능이 높은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불안정 애착인 부모에게 희망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에게 안정애착은 내가 태어나서 선택받지 못한, 나의 노력이 손 쓸 틈이 없게 만들어진 결과입니다. 

그러나 성찰기능을 높이는 것은 그들도 할 수 있습니다. 

부모에게서 받지 못했더라도 키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애착 그 자체보다 이 성찰기능이 더 중요합니다. 






마음을 살펴보는 또 다른 마음, 성찰하는 마음 



우리는 성찰을 참 이상한 방식으로 듣고 자랐습니다. 저는 성찰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제일 먼저 반성문, 일기장, '이렇게 해야겠다'는 다짐, 결심, '그런데 안되네'하는 좌절. 이런 단어들이 연관 검색어로 머릿속에서 우수수 떠오릅니다. 수도승이나 종교인들이 도 닦는 모습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성찰하는 마음은 마음속 검열관이 아닙니다. 내가 아이에게 잘못하는 것 같은데 계속되는 대화, 행동, 감정적 반응을 옆에서 지켜보며 '그게 아니고, 이렇게 했어야죠'하고 혼내는 선생님이 아닙니다. 위와 같은 성찰이라는 단어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 때문에 Fonagy 박사가 이야기 한 마음 회복, 성장의 정수를 그냥 지나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럼 도대체 그 성찰하는 마음이 무엇인지, 일상의 나는 어떻게 적용해 볼 수 있을지 다음 글에서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리고 그전에, 불안정한 애착 부모들을 세 가지 모습으로 나눠서 살펴볼 것입니다. 어떻게 자랐기에 불안정 애착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들이 아이에게 하는 모습이 어떨지 볼 것입니다. 좀 더 자신의 경우에 맞추어 생각해 보도록이요. 그 속에서 불안정 애착을 눈물 나게 극복했던 한 엄마의 이야기도 함께 들려드리겠습니다.




각각의 애착 중 자신이 어디에 해당할까요. 








이 브런치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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