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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다 Dec 31. 2020

내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마지막)

#애착의 대물림 #아이를 자유롭게 사랑하고 싶은 부모를 위한 빨간약

오늘은 '내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시리즈의 마지막입니다. 불안정 애착으로 자라난 부모를 위한 정신화하기(Mentalizing)'란 빨간약을 소개할게요. 그러나 꼭 그분들만을 위한 글도 아닐 겁니다. 양육 상황에서, 가족(남편/아내/부모님)을 대하는 상황에서, 친밀한 연인이나 친한 친구와의 관계에서 적용될 수 있으니까요. 내 마음도 잘 알아채고, 아이 마음도 척하면 척하고 아는 묘약을 소개합니다.  



대인관계 상황에서
자신과 타인의 행동 아래에 있는 
정신상태(신념, 동기, 정서, 바람, 욕구)를
상상하여 이해하는 것.


아이에게 어떤 행동을 했는데 도대체 왜 그랬지? 하고 마음이 복잡하신 적이 있지 않으세요? 얘는 이런 말, 행동을 왜 하는 걸까 답답해하신 적도 있지 않나요? 저는 있습니다. 이럴 때 정신화하기를 통해 아이와 내 마음을 알고 잘 소통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만든 연구자는 '마음으로 마음을 안아주기'라고 낭만적으로 표현하기도 했지요. 



정신화하기가 무엇인지 두 예시를 보여드릴게요. 하나는 실패, 하나는 성공 사례입니다. 


실패

(아이들을 재우고 난 뒤 엄마는 일을 하려고 9시부터 불을 껐다. 그러나 1시간이 지나도록 잠을 자기는커녕 방 안을 돌아다니고, 자기들끼리 장난을 치고, 발을 쿵쾅쿵쾅 구르고, 시답잖은 농담을 한다. 새끼 사자들이 놀듯 몸을 엎치락뒤치락하는 통에 이부자리는 엉망이 되었다.) 

엄마: 너희들, 안 자니?! (좀 더 하이톤) 대체 지금이 몇 시야?
축복: 그치만 안 졸려요. 안 졸린 걸 어떡해요. 
뽀송: 우아우요히히아후아~. (흥분의 발 쿵쿵 구르기) 
엄마: 오늘 아침에 그렇게 늦게 일어나니까 잠이 안 오지! (실은 엄마도 늦잠을 잤다.) 내일부터는 아침 일찍 깨울 줄 알아! 
축복: 엄마, 이거 말하면 엄마 화낼 것 같은데.. 화낼 거죠? (뭔데?) 물 먹고 싶어요. 
엄마: (깊~~~~~은 한숨) (뭔가 이건 아닌데 싶은 마음이 들면서도 애들을 빨리 재우고 싶은 욕구가 더 커서 그냥 짜증이 나는 대로 마음이 끌려감) 
축복: 거 봐 거 봐. 화낼 줄 알았어. 
엄마: 얼른 물이나 마시고 자! 


성공

(두 살인 뽀송이는 카시트에 오래 앉으면 울음이 폭발한다. 짜증 → 울음 → 더 센 울음 → 분노 폭발로 가기 전에 내리기 위해 차는 30분 이내만 타려고 한다. 그런데 대체 언제 울고 언제 괜찮아지는 건지 잘 모르겠다. 오늘은 차가 막혀 1시간이 넘게 운전을 하는 중이다.)

뽀송: 에-. 에-. 
엄마: (머릿속에 적색경보 켜짐. 울리면 안 된다! 이전에 우는 걸 내버려 뒀다가 서지도 못하는 도로에 갇혀 30분 내내 운 적이 있다. 이번에는 울려는 시도 자체를 못하게 하자고 전략을 세움) 뽀송이 깼어? 치즈 줄까? (응) (치즈 하나 까서 줌)
뽀송: 에- 
엄마: (울려는 아이 말 낚아채기) 치즈 다 먹었어? (응) 과자 줄까? (응) (한 개씩 줘서 시간 끌기)
뽀송: 음음- 
엄마: (우사인 볼트처럼 반응하기) CD 들을까? (아이이이) 그럼 노래펜 틀어줄까? (아이이이) 그럼 같이 숫자를 세볼까? 하나아, 두울, 세엣-
뽀송: 하나아, 두울, 세엣- (40까지 엿가락 늘어지듯 세고 나니 도착) 

엄마는 아이가 울지 않고 카시트에 잘 앉아 온 것을 보고서야 깨닫는다.
'얘가 심심해서 울었구나! 엄마한테 안기고 싶어서 우는 줄 알았는데.' 



경직되지 않고 여유를 가진 부모는 자신이나 아이 행동 밑에 숨겨져 있는 욕구나 감정, 의도를 잘 알아챌 수 있습니다. 바로 그게 어려워서 곤란한 건데 정신화를 도대체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실 것 같습니다. 정식으로 이런 매뉴얼이 있는 건 아니지만 상담과 일상에서 제가 쓰는 방법을 말씀드릴게요.




마음으로 마음을 안아주기 

정신화는 어떻게? 



1. STOP 

아이와 대화할 때 미묘하게 감정 조율이 어긋난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을 겁니다. 그 상태가 점점 더 지나가면 둘 사이의 감정 골은 더 깊어집니다. 한쪽은 도망가고 다른 쪽은 쫓아가거나, 둘 다 격앙되었지만 각자 할 말만 하거나, 서로 등을 지는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상태든 요상한 기운이 느껴지면 그때 "STOP"을 마음속으로 외치는 것입니다. 그때 자신의 마음 상태는 감정에 휩싸여서 이성적 판단이 들지 않거나, 감정을 통제하려고 애를 쓰는 상태일 것입니다. 기운을 빠르게 눈치챌수록 이후가 수월해집니다. 



2. 내 감정을 느끼고 행동의 이유 살피기

내가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왜 그런지 살펴봅니다. 



3. 아이 감정을 느끼고 행동의 이유 살피기 

아이가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왜 그런지 살펴봅니다. 



4. 다르게 생각해 볼 여지 만들기

2번과 3번에 대해서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지 살펴봅니다. 이 장면을 천장에서 내려다보는 상상을 하거나, 영화의 한 장면으로 관객이 되어 본다면 어떻게 느껴지는지 상상해보면 도움이 됩니다. 아이 눈에 비친 내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또 하나는 아이 나이 때로 기억을 더듬어 그 당시 내가 부모님께 듣기 싫었던 말, 듣고 싶었던 표현, 알아줬으면 했던 욕구, 보여주었으면 했던 태도를 상상해 보는 것입니다. 



1-4번을 꼭 순서대로 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1번 일단 멈추기를 하고 나서 이것저것 시도해 보면 됩니다.

 





시리즈의 맨 처음에 소개한 한 불안정 애착의 엄마를 기억하세요? 그는 불안정 애착의 대물림을 끊을 수 있었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나는 오랫동안 아이를 때리는 엄마였다. 나의 양육방식에 대한 후회와 반성, 그리고 엄마로서 자신의 심리적 어려움을 아이 앞에서 결코 드러내지 않겠다는 각오에도 불구하고 엄마이기 전에 존재로서 해결하지 못한 우울은 공기처럼 아이에게 전염되는 듯하였다. 바쁜 업무와 잦은 모임으로 집에서 겨우 잠만 해결했던 남편과의 관계는 나에게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상처를 불러일으켰다. 나는 하루에도 수백 번 이 끔찍한 악몽에서 깨어나고 싶은 절박함과 순진무구한 눈빛으로 나를 향해 있는 한 아이의 엄마라는 의무감 사이에 끼어 질식되어 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어항 밖으로 던져진 채 몰려오는 공기의 완력에 압도되어 헐떡이는 물고기처럼 깊은 우울에 짓눌려 간신히 숨만 쉬고 있었다. 단지 살아있는데 급급했던 나는 순한 기질이었던 아이의 억지와 고집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이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내가 잘못된 엄마이고 능력이 없는 엄마라고 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엄마로서 실패할까 봐 두려웠고 내 아이가 잘못되는 것 같아서 불안했다. 하지만 어려움을 누군가와 나누어 본 경험이 없었던 나는 나와 내 아이 곁에 없었던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는 것조차 생각해내지 못했었다. 이러한 나의 양육에의 무능력은 나의 무가치함으로 연결되었고 이는 남편이 내 곁에 없는 이유를 증명하는 것만 같았다. 상실의 고통과 양육 경험의 부재로 어찌해야 할 바를 알지 못했던 나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애를 때리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

.....

그러나 엄마의 불안정 애착 패턴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양육으로 이끄는 예상하지 못했던 긍정적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었다. 먼저, 엄마로서 나의 불안과 두려움으로부터 자녀를 지켜내고자 한 경각심은 ‘유년의 나’를 불러일으켰고 유년기의 감정 기억은 내 아이의 신호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정신화가 조금씩 가능하게 하였다. 또한 심리치료와 상담 공부는 안전 기지 경험과 새로운 애착 대상 경험을 가능하게 하여 나의 불안정 애착을 획득된 안정 애착으로 변화시킴으로써 안정적인 양육에 기여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외상 경험에 매몰된 채 민감성을 잃어버린 나를 대신하여 자녀의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해준 남편의 아버지 역할은 안정적인 양육에 결정적인 기여가 되었다.


     <불안정 애착 엄마의 자녀양육과 안정화 경험에 대한 자문화기술지> 김수안, 김명찬 저. 


그가 꼽은 세 가지는 아이의 마음을 이해해보는 정신화, 새로운 애착을 통해 긍정적인 관계를 경험하기, 미처 몰랐지만 이미 존재했던 남편의 아이를 향한 사랑입니다. 



심리적으로 불안정했던 사람들의 역사를 자세히 듣다 보면 지금까지 그들을 있게 한 사랑이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온기 섞인 진심을 받았던 기억, 끊이지 않고 안부를 묻는 지인의 관심, 친하지 않았던 누군가의 생각지도 않은 배려. 어느 학자는 그들을 '안정의 섬'이라고 부릅니다. 그 섬들이 있었기에 한 번 더 사람을 믿기로 하고, 내가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확인했을 것입니다. 위 글의 저자는 자신의 상담자를 새로운 안정의 섬으로 만났습니다. 이미 연결되어 있었지만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안정의 섬을 떠올리고, 새로운 섬을 만날 기회에 마음을 열어보면 어떨까요? 한 걸음, 한걸음을 응원합니다. (저 스스로에게도 하는 응원입니다.)



엄마와 아이는 태내에서부터 연결되었던 존재입니다. 아이의 탄생이라는 물리적인 분리는 심리적인 분리의 시작일 뿐입니다. 그래서인지 유독 엄마는 자신의 말과 행동이 아이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며 두려움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분리 이전에 이미 연결된 존재로 몸에 각인된 아이를 '나는 나, 너는 너'로 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요. 나의 불안정한 양육으로 아이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후회되고, 아픈 마음도 참 이해합니다.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이유는 아이에게 엄마가 큰 존재일지라도 모든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위의 엄마처럼 엄마가 채우지 못한 아이의 감정 그릇을 아빠가 잘 채워줄 수도 있으니까요. 아빠가 아니라면 할머니, 할아버지, 다른 가까운 어른의 존재가 아이에게 '안정의 섬'이 되어주었을 것입니다. 아무도 없었다면 이제 아이에게 새로운 '안정의 섬'을 경험하도록 해주면 됩니다. 



사진 by Ahmed Yaaniu on Unsplash






저는 이 세상에서 사랑이 제일 어렵습니다. 제가 정의하는 사랑은 삶에서 일어난 모든 것들을 껴안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다음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아이였고 또 누군가의 부모인 당신의 사랑을 응원합니다. 





*메인사진 by Eugene Zhyvchik on Unsplash


이 브런치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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