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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다 Oct 05. 2020

육아의 라떼는 말이야

#라떼는 제가 달라고 할 때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Latte is Horse. 



직장, 학교, 명절 때 보는 친척 어른들의 훈수 말고도 육아 상황에도 넘쳐흐르는 라떼는 말이야.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유치원 수업이 끝난 다섯 살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건 아마 근처 놀이터에서 신나게 땀 빼고 집에 들어가는 일일 겁니다. 그 날은 놀이터에서 1시간 즈음 머물렀을 거예요. 제 아이는 놀 때 엄마가 집에 가자고 하는 말을 제일 싫어했습니다. 떼를 쓰거나, 못 들은 척하고 놀이터에서 뭉개기도 하고요. 저는 남들 앞에서 버럭 하고 싶지 않았고, 육아 공부에 열성적인 엄마였습니다. 그래서 책에서 본 대로 '환경변화를 싫어하는 아이에게는 앞서서 예상할 수 있도록 앞으로의 계획을 알려준다'는 개념에 밑줄 쫙! 긋고 성실하게 실천했습니다. 



"축복아~~ 축복아~ 이리 와봐. 우리 5시 되면 집에 갈 거야. 5시까지만 노는 거야. 알겠지?"

아이는 엉겁결에 알겠다고 대답하고 다시 뛰어갔습니다. 

그때 옆에 있던 나이 많은 선배 엄마가 가르쳐주겠다는 듯 한 마디 했습니다. 

"아니, 애들은 그런 거 몰라. 다섯 시인지, 몇 시인지 알지도 못하는데." 

머쓱해진 저는 허허 웃는 얼굴로 '이렇게 해야 애가 잘 따라나서더라구요' 한 마디 하고 끝냈습니다.   




또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엄마 여섯에 아이들 여섯이 한 집에 모였습니다. 그중 한 엄마가 돌이 갓 넘은 동생을 함께 데리고 왔죠. 아이들을 위한 떡볶이와 피자, 엄마들을 위한 맥주와 주전부리가 식탁에 거하게 차려졌습니다. 주변 사람 모두가 뭘 맛있게 먹고 있는데 돌쟁이 아기도 당연히 입맛을 다실 수밖에요. 한 엄마가 젤리 하나를 아이 먹이라고 건넸고 엄마는 망설였습니다. 

"이거 먹여도 되려나.."

그 엄마가 말을 마치자마자 하나같이,

"아유. 그런 거 먹어도 어차피 잘 커.", "둘째인데도 그런 걸 신경 써?"라며 목소리를 합치는 겁니다. 

그 엄마는 순식간에 아이 먹는 것을 너-무 신경 쓰는 융통성 없는 사람이 되었고, 결국 마지못해 껍질을 벗기고 젤리를 아이 입에 넣어 주었습니다.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로 계속 쓸 수 있습니다. 

애 하나인데도 육아 너무 힘들어. - 옛날 엄마들은 집에서 어른도 모시고, 애들도 키우고, 살림도 살았는데? 

임신 8개월째, 배가 무겁고, 밥맛도 없어요. - 지금이 좋을 때야. 낳아 봐라, 더 힘들지. 

뭐 등등이요. 






듣고 있으면 참 '너 잘났다' 싶은 이야기들입니다.

네, 그거죠.

'너 잘났다'를 듣고 싶어서 그렇게 라떼 타령을 합니다. 


잘난척하다 물에 빠진 나르키소스가 죽은 자리에 피어났다는 수선화




이건 꼰대다 싶은 얘기를 들을 때마다 혀를 막 차면서 나는 그 무리에 속하지 않는다고, 않을 거라고 다짐하던 어느 날 그분이 오셨습니다. 라떼는 말이야께서 오셨어요.



제 둘째 아이와 대학 후배 첫째 아이의 개월 수가 비슷합니다. 

코로나 시대라 만나지는 못하고 전화로 커피숍 토크를 종종 했죠. 

한 번은 후배가 아이 낮잠을 어른 침대 위에서 재운다고 했습니다. 6개월이 넘었는데 몸이 무거워 뒤집기를 못한다면서요. 좀 전에도 아이 잘 눕히고 나왔답니다. 저는 놀라서 펄쩍 뛰며 돌고래 초음파 보내듯 하이톤으로 쏘았습니다. 

"어머, 야! 안돼! 그렇게 안심하다가 침대에서 굴러 떨어진 사고가 얼마나 많은데! 떨어져서 팔이나 다리 다치면 그나마 다행이지, 머리 다치면 장애 올 수도 있고.. 또.. 얼마 전에 뉴스에서 봤는데, 아기를 어른 침대 위에서 재우다가 나중에 보니 침대랑 벽 사이의 틈에 끼여서 아이가 질식해서 죽었대. 뒤집기 하는 건 한 순간에 올 수도 있어!" 

랩 하듯 속사포처럼 쏟아낸 훈계에 후배는 좀 말이 없었습니다. 아차 싶었어요. 

"아이는 엄마가 사실 제일 잘 알지. 뒤집기 하려는지 아직은 괜찮은지 남들은 몰라도 엄마는 미세한 것까지 알잖아. 그래도 사고는 한순간이니까 한 말이야." 

그냥 덤덤하게 조심하라고 한 마디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그리 열을 냈을까 싶었어요. 저도 애 둘 좀 키워봤다고 잘난척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혹시 모를 사고를 막고 싶은 이모의 걱정스러운 마음도 있었지만요.



'나 때'를 말하고 싶은 사람들은(나와 꼬인 관계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상대에게 조언을 해주고 싶다는 좋은 의도로 말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들어보면 조언으로 가장한 자기애입니다. 진짜 상대를 염려해서 하는 조언은 당사자가 알아듣습니다. 고생해서 내가 얻은 값진 인생의 경험과 관점을 절절하게 이야기해주는데 듣고 감동해야 할 상대는 심드렁하고 나만 열을 내고 있으면 그건 자기애입니다. 그런데 이게 참 음흉한 성격이 있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드러내고는 정작 자신은 모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랑 늘어놓는 사람만 빼고 주위 사람들만 다 아는 꼰대가 탄생합니다. 




저도 경험치가 쌓이는 영역에 대해서는 자랑을 좀 하고 싶습니다. 그건 부인할 수가 없네요. 

그래도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의 꼰대 짓은 안 하고 싶습니다. 

누가 진심으로 요청했을 때, 라떼는 그때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누군가 제가 청하지도 않은 조언을 주는데 팩트는 없고 폭행만 있다면 얼른 도망갈 겁니다. 

주문하지 않은 라떼는 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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