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19년
《자아, 예술가, 엄마 Selfhood, Artisthood, Motherhood》는 김다은님의 책의 제목이며, 본 매거진 명도 여기에서 따왔음을 밝힙니다.
‘#일하는엄마’로 산 지 올해로 19년 차가 되었다. 남들보다 좀 일찍 엄마가 됐고, 지금처럼 인터넷에 육아 관련한 정보가 다양하지도 않아서 하정훈 선생의 ‘삐뽀삐뽀 119’를 닳도록 읽었다. 주로 아이의 병증에 관한 내용이었지만, 간간이 수면이나 행동교정도 언급하고 있어 그 책은 내게 훌륭한 육아 바이블이었다. 유튜브도 활성화되지 않았을 때라 검은 비닐봉지를 구겨가며 소리를 낸다거나 세면대에 물을 틀어두어 나만의 ASMR로 우는 애를 달래곤 했다.
지금이야 ‘워킹맘’이 흔한 단어가 되었다지만, 그때는 엄마로서 직업이 있는 사람이 되는 일이 아주 쉽지는 않았다. 지금도 많은 여성들이 비슷한 딜레마에 빠져 살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워킹파파라는 단어는 쓰이지 않는다. Working과 Mom은 아직도 각각의 정체성을 가진 채 존재한다. 어째서 엄마에게만 ‘일하는’이 붙는지 알 수 없다. 이 단어엔 일하는 것에 대한 엄마로서의 죄책감이 함의되어 있다.
'자아'에 '자식'이 더해진 삶의 구조적 변화는 A에서 B로 가 아닌 a에서 A로의 변화에 가깝다. 엄마의 상태로 접어들면서 나는 여전히 '나'로 존재하면서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관점은 달라졌다. 이제는 내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나 그 이상의 존재인 내 아이를 둘러싼 모든 것에 대해 다면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하나가 끝나면 곧이어 또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결정은 내 아이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매 순간 명확한 결단력과 예리한 상황 판단을 요한다. 일상의 모습 또한 달라졌는데 이는 시간의 효율적인 배분에 따라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크게 나의 시간, 가족의 시간, 그리고 아이의 시간으로 나뉜다. 특히 일, 수면, 휴식, 취미 생활 등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은 아이와의 공유가 물리적으로 어렵다. 감히 원한다면 이를 일과에 적절하게 배치해야 한다. 하루의 시작부터 끝까지 어느 하나 허투루 소비할 시간은 없다.
- 김다은 〈엄마됨〉, 《Selfhood, Artisthood, Motherhood》 中
애가 태어난다고 해서 ‘내’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물론 아이가 태어나 나의 삶의 많은 부분에 변화가 생기고, 이전까지와 다른 책임감이 생기기는 했지만, 나는 여전히 패션PR이었고, 공연기획자다. 하지만 지금도 때마다 하는 내 선택이 옳은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고, 그 선택으로 어떤 결과가 초래됐을 땐 끝없는 자괴의 나락으로 빠진다.
자주 언급하는 이야기지만 아이를 어른이 될 때까지 키워 세상으로 보내는 과정은 한 스테이지가 끝나고 또 다른 왕을 맞이하는 게임과 같다. 육아란 단순히 재우고, 먹이고, 놀아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성과 커리어는 서로를 보완하고 성장시키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정체성이다.
- 헬렌뉘복베이 〈인터뷰:균형, 선택 그리고 집중의 삶〉,
《Selfhood, Artisthood, Motherhood》 中
우스개로 자주 하는 이야기 중에 지천명프리덤이 있다. 둘째가 한국나이로 스무 살이 되면 난 마흔아홉이 되니, 나이 오십에는 자유를 맞이하겠다며 외치는 장난이 담긴 소망이다. 지천명프리덤까지 6년이 남았다. 아마 그때까지도 나는 ‘일하는 엄마’로 살고 있을 것이다. 물론 가장이기도 하니 꼭 직업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가 이유의 다는 아니다. 박미리새로서의 나와, 비안이들의 엄마로서의 나와, 페이지터너 이사로서의 나를 다 따로 떨어뜨릴 수 있는가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다. 결국 다 하나의 나고, ‘박헤르미온느’라는 웃을 수 없는 별명까지 생겼지만 나는 앞으로도 계속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분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