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연 백발을 꿈꾸는가

흰 머리를 마주한 40대의 딜레마

by 미리새

노화는 나도 모른 사이에 스며든다. 먼지처럼, 어느 날 거울 속 얼굴선을 따라 뽀얗게 내려앉고 나서야 비로소 알아차린다.


노화를 본격적으로 체감하기 시작한 건 마흔이 되었을 무렵이다. 거울 속 칙칙한 얼굴을 보며 하루치 피곤이 덜 풀린 얼굴이겠거니, 전날 과음을 한 탓이겠거니 하는 날이 쌓여 지금은 그런 모습이 내 기본값이 되었다. 밤늦게까지 무리를 해도 금세 회복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작은 피로도 오래 남아 수면시간 확보를 위해 애써야 하고, 소화가 잘 되지 않는 날도 많아졌다. 중력과 더욱 친해진 피부는 더 이상 탱탱하지 않고, 나이가 들수록 나도 모르게 얼굴에 힘이 들어가거나, 입술을 오므리는 등 새로운 습관들도 하나씩 더해져 지금은 무심코 굳어진 얼굴을 의식적으로 풀어주지 않으면 안된다. 처음 발견했을 때 날 몹시 놀라게 했던 흰머리 한 가닥도 이제는 뭉텅이가 되어 헤어브릿지로 보일 정도다. 헤어브릿지라니, 스스로에게 너무 관대한 걸까. 이뿐만이 아니다. 작년에 나를 가장 놀라게 했던 건 목과 어깨라인이었다. 20년 가까이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시간의 흔적이 나의 몸에 고스란히 남아, 얇은 목을 가리려 터틀넥을 즐겨 입던 내가 무색하게, 내 목은 아름드리 나무처럼 두꺼워져 있었고 어깨라인은 완만한 언덕을 닮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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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30대부터 해왔다. 단지 늙는다는 사실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어떤 인상으로 나이 들어갈 것인지에 대해—말투나 옷차림, 표정까지도 나름의 시뮬레이션을 해보곤 했다. 하지만 마음의 준비와는 별개로 노화의 그래프가 가파라지는 게 느껴지니 초연함을 잃는다. 친구와 지금이 우리의 '마지막 젊음'일 거라며, 자연스럽게 이 현상들을 받아들이자고 이야기했지만, 몸 구석구석에서 발견하는 노화의 현상이 여전히 반갑지만은 않다.


"자연은 실로 모욕적인 방식으로 우리에게 암시하고 경고한다. 소매를 살짝 잡아당기는 게 아니라, 이빨을 뽑아놓고, 머리카락을 뭉텅뭉텅 뜯어놓고, 시력을 훔치고, 얼굴을 추악한 가면으로 바꿔놓고, 요컨대 온갖 모멸을 다 가한다. 게다가 좋은 용모를 유지하고자 하는 열망을 없애주지도 않고, 우리 주변에서 게속 아름다운 새로운 형상들을 빚어냄으로써 우리의 고통을 한층 격화시킨다." 라는 데이비드 실즈의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속 이 구절처럼 노화는 때로 이렇게 가차 없이 우리를 흔들어놓는다. 나 역시 거울 앞에서, 혹은 일상 속에서 이런 변화를 마주하며 당혹스럽기도 하고, 때로는 억울함마저 느끼니 말이다.


몇 해 전, 모 아이돌 출신 여배우의 사진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었다. ‘○○○ 노화’라는 제목을 단 기사와 포스팅이 수십 개씩 쏟아졌다. 나도 처음엔 조금 놀랐지만, 그 배우는 나와 나이가 비슷했고, 출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마흔한두 살의 얼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러 비슷한 이유로 이슈가 된 연예인들도 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그들이 ‘자연스럽게 늙기로 작정한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TV에 나오는 사람이라면 꾸미거나 노화를 늦추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질 수 있지만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 ‘○○○, 50대 맞아?’ 같은 말보다

“그래, 이 나이면 이 정도 얼굴이지”라는 시선이 자연스러워지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누군가는 조금 빠르게, 누군가는 조금 천천히 늙어가더라도, 그 각각의 속도와 흔적을 당연하게 여기는 눈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아름답게 늙는다’는 말에 그동안 이 말에 별다른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하지만 아름다움이란 멈춰 있어야만 가능한 것 같고, 나이 들어간다는 건 어쩔 수 없이 계속 변해가는 일임을 이제는 안다. 그러니 나는 이 둘을 어떻게든 화해시키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변화를 억지로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내 나름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가끔은 피부과 시술을 받기도 하고, 흰머리는 그냥 두기도 한다. 억지로 붙잡지도, 완전히 내버려두지도 않으면서, 내 몸과 마음의 변화를 예민하게 살피는 것. 그게 지금 내가 선택한 ‘아름답게 늙는 법’이다. 조금 더 걷고, 조금 더 자고, 조금 덜 먹으려 노력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금 더 웃고, 조금 덜 움츠리는 마음을 갖고자 한다.


프랑스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는 “노년은 무엇보다도 한 인간의 삶이 완성되는 시기이며, 이야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질 수 있는 시간이다.”(『노년(나이듦의 의미와 그 위대함』)라고 했다. 나는 인생이라는 긴 이야기에서 이제 겨우 중간에 도착했을 뿐이다. 심리학자 융도 중년은 “외적인 세계에 적응하던 삶에서 내적인 세계로 눈을 돌리는 전환점”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지금부터 나의 과업은 지나온 삶을 진솔하게 평가하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새로운 가치와 목표를 찾아, 남은 인생을 더 깊고 충만하게 살아가는 데 있다.


늙는다는 건 어떤 방식으로든 내가 살아온 시간과 마주보는 일이다. 그 흐름을 너무 조급히 바꾸려 하지 말고, 한 번쯤은 흘러가는 대로 놓아두는 게 좋겠다. 내가 나에게 다정해지기 위해서라도. 주름과 흰머리, 굳어진 표정 너머에 여전히 나다운 무언가가 남아 있음을 발견한다. 젊음에 집착하기보다, 내 삶의 모든 순간을 소중하게 받아들이며, 매일 조금씩 더 나답게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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