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그린 예술, 자수
어느 주말 하루에 세개의 전시를 본 친구가 그날 가장 기억에 남은 굉장한 전시였다고 말해준 덕수궁 자수전. 바느질을 하는 친구라 더욱 자수에 마음이 가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시청부근에 나갈 일이 있어 일을 마친 후 덕수궁에 들렀다. 친구가 바느질을 해서 더 감정이입을 할 순 있겠다만 일반적으로도 상당히 생경하고 독특하며 이름 모를 (최근의 작품들은 작가가 명확히 있다) 여러 분들의 집단창작과 생산의 결과물에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게 되는 전시였다.
한국 근현대 자수: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
24.5.1 ~ 8.4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공예품들은 예술의 영역으로 상당부분 넘어왔다고 생각이 된다만 자수는 처음 밑그림을 그린 사람과 실제 자수를 놓는 여러 사람 사이 창의력과 노동력이 공존하면서 예술의 영역인지 아닌지 헤깔린다. 다른 모든 자수를 예술이라고 칭하긴 어렵겠다만 최소 이곳에 전시된 작품들은 예술에 걸쳐 있다 해도 무리가 없겠구나, 생각이 든다.
1층 초입에는 자수를 놓은 병풍들이 전시되 있다. 한폭당 하나의 그림이기도, 쭉 이어져 하나의 그림이기도 하다. 자수로 만든 병풍은 처음 보았다. 병풍하면 산수화가 그려진 어느 양반집 멋드러진 병풍이 자연스레 머리에 떠오르는데 그림병풍은 그러고 보니 남성적이고, 자수병풍은 조금더 여성적이다. 그림병풍이 주로 수묵화로 채색이 있더라도 옅어 흑백의 묵직한 느낌을 준다면 색색의 실에서 오는 화려한 자수병풍은 규방에 좀 더 어울릴 듯 화려함이 어마어마하다.
여러 병풍들을 보다 보니 폭이 나뉘어진 것보다 폭을 연결해 크게 한폭으로 그린 자수병풍이 더 좋았다. 그림처럼 십장생이나 화조가 소재로 자주 쓰인다.
눈으로 직접 봐도 믿기지 않는 실로 한땀 한땀 떠서 만든 매화나무. 김규진이 자수의 밑그림이 되는 초본을 그리고 자수를 둔 이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름 모를 옛 어르신의 시간이 이 열두폭 비단 위에 빼곡히 내려 앉았다.
이런 기명절지도는 규방보다는 바깥양반의 방에 놓임직하다. 깔끔하게 똑떨어진 자수 기명절지도가 은근하고 묘연하다.
아이들의 앞 잔머리, 웃는 표정, 각기 다른 의복 등 표현이 아주 세밀하다
주로 산수화 화조도 초충도 같은 것을 떠올리다 기명절지도에 스토리까지 담긴 병풍을 보니 조선 시대 자수의 소재가 무궁무진했음에 또 한번 놀랬다. 위 병풍은 주나라 문왕이 부인들에게서 100명의 아들을 얻은 일화에서 유래한 백동자고사를 그렸다고 하는데 이런 병풍은 손을 바라는 어느 댁에 놓였을까, 상상한다.
1층 초입에 병풍들을 압도하며 놓여있던 궁중 활옷.
멀리 보면 누가 이 꽃들이 진정 자수로 그 형태를 만들어낸 것이라 생각할까
붉은 비단위로 빼곡히 들어선 활짝 핀 꽃들이 이 옷을 입은 자의 위엄과 권위를 단박에 알려준다. 이런 소재와 노동력을 이 옷 한벌에 쓸수 있는, 이 옷을 입고 곧 혼례에 나설 공주옹주는 활짝 핀 꽃만큼이나 귀한 자태를 보일 듯하다.
하도 화려한 자수병풍과 활옷을 이미 보았더니 '자수'하면 떠올랐을 여인네의 악세사리는 이젠 너무 소소해 보였다. 故최순우관장이 자수에 대해 이야기해둔 부분이 있어 남겨 놓고
멀리서 이 작품앞으로 가는동안
자수겠지만 자수겠어?
자수일리 없지만 자수겠지?
동어반복같은 생각이 계속 떠올랐다. 분명 자수다. 조선시대 회화가 밑그림이 아니라 혹시나 했는데 자수 맞다. 이번엔 배경도 자수작업이 되있다.
하.. 이런 노력은 미적 가치가 없어도 인정해 줘야 한다. 그런데 하물며 미적으로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붓으로 그렸대도 아름다웠을 산수는 실로 그려 희소하고 색다르다. 하나의 색을 선택해 전반적으로 차분하고 안정적인데 그 색이 또 여러 층위로 갈라져 명암을 만들고 원근을 나타내고 여백을 두었다. 이는 밑그림도 훌륭했지만 자수를 둔 이가 재료의 속성과 색에 대한 이해도가 뛰어났기 때문이다.
타이틀을 보니 여고생들의 작품이다.
이 시절 여고생들 무엇!
RESPECT!!
집에 들인다면 이 작품 하나를 마음에 우선 두고
먼저 본 위위 <해금강> 작품이 너무 맘에 들었는데 이 <금강산 보덕굴>도 그에 못지 않다. 밑그림은 다를지라도 스타일이 비슷하여 타이틀을 들여다 보니 같은 대구공립여고보생 학생들의 작품이다. 8년의 시간차로 같은 학생들은 아니니 아마도 지도하는 교사가 동일했거나 비슷한 교수법을 구사했거나 했나보다. 1931년에 해금강에 수를 놓던 학생들은 1939년엔 금강산으로 스케일을 키워 동아일보 주관 제8회 전조선남녀학생작품 전람회에서 입상도 했다.
집에 들인다면 이 작품!!!
배꽃을 그린 소재도 호불호가 없거니와 작품의 톤앤매너가 전반적으로 현대적이고 붓으로 그린 것 같기도 실로 뜬 것 같기도 한 경계가 묘한 작품이다. 초록의 배경에 흐드러지게 핀 배꽃이 작품을 뚫고 나올 듯이 맹렬한 것도 좋다. 실로 어떻게 이런 것이 표현될까...
작가가 존재하는 90년대 작품인데 자수의 명백을 잘 이어오면서 현대적인 세련된 감각도 발전시킨 작품이다.
자수로 표현한 성모라니.. 현대로 넘어 오면서 소재는 더욱 무궁무진해 졌다. 블랙과 화이트로만 표현되 모던한 감각이 잘 드러났다. '자수'와 '모던'이라는 단어가 서로 붙는다는게 신기하고
근현대로 넘어오면서 자수 작품도 작가의 이름을 갖는다. 보기 좋다.
작품의 소재, 표현방식도 진화를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확장되고 있고.
무궁화가 그 어떤 다른 장식없이 고고하게 피어있다. 나무기둥부터 거대하게 서있는게 아니라 기둥은 캔버스 밖으로 밀어 놓고 기둥에서 뻣어 나온 가지로 부터 희기도 붉기도 한 꽃을 풍성하게 피워 낸 우리나라 꽃이다. 나무기둥을 생략해 오른쪽에 충분한 여백이 생겼지만 그 기둥은 이 아름다운 줄기와 꽃들을 굳건히 지키고 있을 것이 상상된다.
이 작품은 완성까지 3년 넘게 걸렸으며 당시 청와대에서 구입해 대통령실에 배치한 것을 재제작한 것이라 한다. 흰색 무궁화는 남한을 붉은색 무궁화는 북한을 상징하며 우아한 곡선의 가지는 한반도의 형태에서 따왔다 한다. 꽃의 독특한 볼륨감은 속심을 넣기 때문이라고.
전체적인 미적 완성도도, 디테일도, 각각의 상징도 국격에 적확하게 어울리며 고고하게 아름다운 작품이다.
실들로 회화에 버금가는 궁극의 미가 가능하구나.
기법적으로도 이렇게 부드러운 그라데이션이 가능하다니...
이 작품은 1920년 순종의 후원을 받아 오일영과 이용우가 창덕궁 대조전의 부벽화를 그린 봉황도를 밑그림으로 한 작품이라고 한다.
위의 통일(무궁화)작품도 이 봉황도도 왕실과 청와대라는 국가 최고권력자의 집무와 생활 공간에 놓이며 우리의 국가 수준을 은연중에 드러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우리 궁중자수의 수준이 이에 달했다.
조선시대 궁에서 의례에 쓰였던 의장용 궁중 진채화 병풍을 밑그림으로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모란과 장수를 의미하는 괴석이 자수명인의 손길로 재탄생했다. 비교적 최근 작품인 것도 있겠지만 자수에 사용된 명주실의 색감과 광택이 지금도 찬란하여 눈을 뗄 수가 없다.
비교적 단순한 구성일지라도 만개한 모란과 각양각색의 괴석이 작품에 전혀 지루함을 주지 않는다.
실로 입을 다물지 못한 자수의 세계다.
자수로 이룬 대서사
회화로는 역사적 스토리가 있는 연작들이 각국에 대표로 존재하는데 자수로도 이게 가능했다. 총 8편이 각각 하나의 벽면을 채워도 될 만큼 웅장했는데, 8편이 사열을 하듯 공간을 꽉 채운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압도적이다.
10년에 걸친 작품이었는데 도를 닦는 마음으로 인생을 거는 심정으로 한땀 한땀 바늘을 쥐었을 작가의 마음도 전시 공간을 한가득 채웠다.
그 마음이 들리고 느껴진다.
8개 중 3개 작품만 참고로 올려두고
자수전은 1층에서 시작해 2층으로 올라 마지막 방에 다다르면 감정이 최고조에 오르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1층의 활옷과 일상병풍만으로도 이미 기대수준을 뛰어넘어 놀라웠는데 순서대로 방을 이동하면서는 작품의 다양성, 소재, 규모감, 완성도, 사용처 등이 계속 발전하고 진화해 이 끝이 어디까지일까 내내 기대가 되었다.
대단한 작품들 사이에 1970년대 여고생들이 자수를 하고 있는 흑백사진에서 잠시 마음을 고르고 쉼을 가졌다. 이 여학생들의 여린 손끝에서 이 위대한 작품들이 탄생했겠지, 실로 고맙고 귀한 손들이다.
전시 초입엔 김종학 선생의 <백화만발, 1998> 회화작품이 있었다. 자수전의 시작으로 참 적절한 선택이다. 이후부터 있을 대단한 자수작품들로 나를 즈려밟고 가라는 아름다운 배려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