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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술관옆산책로 Jul 15. 2024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ACC를 다녀와서

친구가 광주로 직장을 옮기면서 한번 내려와, 했던 걸 다녀왔다. 일을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에너지가 넘치는 친구가 광주로 간 것만 알고 어느 직장으로 이동한건지 묻지도 않다 떠나는 날 즈음 "그래서 어디로 오라고?" 했더니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소위 ACC (Asia Culture Center)로 오랜다. ACC라면 건축, 문화계에선 서울 왠만한 문화공간 가뿐히 뛰어 넘는 현시점 탑티어인 곳이다. 


지방살이 한 2년쯤 하고 올라오려니 했는데 아예 광주로 이사해 터를 잡아버린 친구는 도착날 바로 재즈공연, 다음날 이른 오후에 ACC투어를 잡아놓고, 나머지 시간엔 먹고 마시자~ 했다. 


광주에 대단히 잘 지어진 - 건축학적으로도 역사적, 문화적으로도 - 풍문으로 들은 ACC에 예상치 못하게 다녀오곤 '지방에 이런 문화공간이 있어 참 좋구나, 우리 나라 참 많이 (아직도 멀었지만) (균형) 발전했구나' 심히 올드한 발전 타령도 했다. 



KTX 광주송정역에서 문화전당역까지 지하철이 바로 연결된다. 원하는 시간대의 KTX표가 매진이라 좀 늦은 걸 사게 되는 바람에 공연에 20분쯤 늦었는데 야외공연이라 중간입장이 엄격하진 않았다. 친구가 A급 자리 - 무대 앞 그라운드 영역, 캠핑의자는 주최사가 깔아 놓았고 개인이 음식물을 가져와 소풍처럼 펼쳐 놓고 먹고 마시며 공연을 볼 수 있는 구역 -  를 잡고 피자와 치킨은 배달, 맥주는 아이스박스에 쟁여 딱 세팅을 해 놓았다. 


매주 캠핑을 다니는 친구의 포스에  흐미~ 행복한거~


ACC의 야외 공연 모습, 대형 무대 시스템에 캠핑용 좌석이 깔려 있다
식음이 자유로운게 최대의 장점


이날 공연은 재즈특집이었는데 도착하자 귀는 호강이고, 입은 즐겁고, 대화는 소중했다. 내 옆에 6살, 8살 정도 되는 아이둘과 엄마가 공연을 보고 있었는데 애들은 음악을 들으며 간식을 먹으며 바닥에 엎드려 그림을 그리며 자유롭다가 갑자기 "엄마 나 이 곡 좋은거 같애"하며 무릎다리를 하고는 진지하게 음악을  듣는다.


어머, 이쁜 거~~


자연스레 문화컨텐츠를 접하며 이래 큰 아이들이 예술적 감수성도 풍부한 어른이 되는 모습이 그려지며 내 마음이 뜬금없이 흐뭇해진다.


성장을 하고 지정석에 정자세로 앉아 2시간 내내 앞을 바라보는 공연(도 물론 좋아한다, 없어 못본다)이 아니라 이렇게 야외에서 바람을 맞으며 먹고 마시고 얘기하고 그렇게 즐기는 문화컨텐츠인 것이 너무 좋았다. 


친구들이 가장 좋아했던 김오키 공연
윤석철트리오 + 이진아의 공연
비가 후두둑 쏟아지는데도 별 이탈없이 마지막 앵콜을 외치는 관객들


이날 저녁 여러 재즈 공연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김오키와 윤석철+이진아의 재즈 공연. 김오키의 공연은 자유 분방함 속에 진지함과 소울이 풍만했고, 윤석철+이진아의 공연은 경쾌하고 재미졌다. 안테나 사람들 답다. 






1박2일 동안 첫날은 도착하자 마자 재즈공연을 봤고, 새벽녘까지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다 다음날 느지막히 일어나 본격적으로 건축물 탐방을 했다. 친구가 공식 ACC투어 신청을 해두어 전문 사무관에게 건축물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많이들 알다시피 ACC가 터를 잡은 이곳은 광주 518 민주항쟁 때 마지막 항거지인 전남도청사에 위치해 있다. 광주라는 도시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는 이 곳은 역사적 의미로 인해 개발은 불가, 유지보수 하는 정도로 명맥을 이어가다 주변이 계속 노후화 되고 사람들의 발길도 지속적으로 줄어들자 전남도청사 주변의 역사성은 간직하되 사람들이 계속 찾는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시와 시민의 염원으로 탄생했다. 


공모를 할 때 광주시 입장에서는 큰 돈 쓰는 것이므로 도시의 랜드마크가 될 정도로 우뚝 솟은 그 무엇을 기대했을 수 있다. 그런데 ACC는 지상에서 보면 거의 녹지 공원이고, 지하로 내려가서부터 1층이 시작된다. 초행에 언뜻 높은 그 무엇을 상상하고 ACC를 왔다가 그런 건물이 없어 도대체 ACC가 어딘거야.. 헤맸다는 사람들도 많다. 


지상 대부분이 녹지이니 주변도심과 기가 막히게 어울린다. 녹지를 즐기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층으로 내려가면 그제서야 넓은 야외마당과 야외공연장이 있고, 실내로 들어가면 실내공연장, 도서관, 각종 미술전시장, 어린이프로그램존 등 다채로운 공연, 전시, 이벤트가 상시로 돌아갈 수 있도록 대단히 과학적이고 효율적으로 디자인 되어 있다. 



사람이 주인공이 되고, 이벤트가 주인공이 되는 건물은 갈 때마다 새롭고 즐거운 공간으로 기억되며 시간이 지나면 지역 공동체와 융합될 수 있는 훌륭한 공간이다. 그런 점에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훌륭한 건물이다.
- 유현준 교수 - 



유현준교수가 이 건축물의 의미를 더 보탤 것 없이 정확하게 설명했다. 


유현준교수가 ACC에 대해 바이블 같은 유툽동영상을 찍었는데 (ACC가 펀딩을 한 것으로 알고 있음) 하단에 URL을 얹어 놓았다. ACC에 대해 모르고 봤어도 상당한 재미가 있었는데 알고 나니 더욱 감탄하게 해준 동영상이다.  


이곳이 ACC인건 이 표지판으로 간신히 구별된다. 이곳에 우뚝 솟은 건물따윈 없다


다양한 야외 이벤트가 가능한 중정 공간, 방문한 날은 지역 벼룩시장이 있었다 (우천으로 취소되었지만). 대형 투명 LED도 옛 전남도청사의 후면을 가리지 않도록 설치되었다. 


대형 야외 행사를 하기에 넓직하니 좋고, 경사가 완만해 무대프로그램을 하기에도 자연스럽게 관객석이 형성될 시야각이 나온다. 


자유롭게 앉아 쉬기 좋은 공간들 


건축물이 건축물 자체만 고집할 때는 주변과 어우러지지도 않고 건축 후 사용성에서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데, ACC는 건축물 자체의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사용성에서도 최고다. 


ACC는 건축가 우규승이 설계공모에 당선되 지어졌는데 나는 ACC를 보면서 우규승 건축가가 국내 건축가이기 때문에 광주의 의미를 이토록 진정성있고 아름답게 다 담아낸 최고의 건축물을 만들어 냈구나, 생각했다.


유현준교수도 짚었지만 동대문의 DDP는 자하하디드라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는 플리츠커상 수상자가 설계했다. 건축물 자체로는 너무 아름답다. 도심 한복판에 유선형으로 도드라지게 아름다운 DDP는 외형으로 보면 기가 막히다. 그런데 뭔가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다. 직선의 도심속에 유독 튀는 곡선이 대비되어 아름답다기 보다 대조되어 조금 불편하다. DDP는 주인공이고 주변건물은 허름한 배경같다. 그런 퓨처리스틱한 디자인은 빌바오 구겐하임뮤지엄처럼 도심과의 이격을 많이 두어야 어울린다. 


참고자료: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게다가 이벤트 기획자로서 DDP에서 행사를 하려다 보면 어딘지 조금씩 불편했다. 무대디자인을 뽑으려니 조금씩 폭이 모자라거나 천장에 뭐를 달려니 뭐가 좀 불편하거나 행사전 관객들이 대기할 공간이 마땅치 않거나 그런식이었다. 도면상의 공간은 넓은데 DEAD SPACE가 많아 효율성이 떨어진달까...


칵테일파티 같은 것을 하기에 좋은 공간, 커텐을 열어 통으로도 각각으로 나눠도 쓸 수 있다. 대나무숲 디자인과 높은 천고로 야외 느낌이 나는데 천장이 있어 날씨영향도 덜 받는다
이 유리창을 통해 지하 공간에 빛이 전달된다.
지상에서 전달되는 빛으로 내부가 부드러운 간접조명을 갖는다
유리외벽에 철재차양막을 덛대 빛을 들여오거나 차단한다.
작가들에게 대여해주는 스튜디오


그런데 행사를 많이 하는 사람 입장에서 ACC를 바라보면 그야 말로 천국이다. 


통으로 쓰거나, 이래저래 잘라서 쓰기에 좋은 다양한 공간이 있고, 공간 형태도 직각이든 원형이든 2층구조든 다 할 수 있겠더라. 로비나 포이어 공간이 충분해 행사전엔 준비공간으로 행사 오픈 후엔 대기동선으로 쓰기에도 좋다. 사람들이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기도 VIP행사를 EXCLUSIVE하게 하기에도 좋았고. 


아름답기로도 더할나위 없다. 주변과 어우러지게 고층건축물이 없는 낮은 구조, 지상 녹지 공간, 지하의 친환경을 감안한 창틀, 각종 조각품, 이동동선의 편리함을 포기하지 않은 아름다움, 전남도청사의 뒷면에 메쉬천 또는 투명 LED를 넣어 전남도청사의 외형도 놓치지 않고자 하는 사람들의 바램 반영 등등이 미적 타협없이 효율적으로 구현되었다.  


이 모든 사용성을 감안해 초기부터 디자인을 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곳에 지금 이곳을 사용하고 있는 광주시민의 에너지가 대단하여 앞으로도 건축가들의 꿈인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찾는 공간'이 될 것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여러 디지털 기기를 방해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둔 1인 공간

내가 너무 사랑한 도서관 공간

개인공간이 보장되면서 각종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기에 편리한 가구들로 구성되었다. 


어린이 프로그램들이 다양하게 돌아가서 부모와 어린이들이 상시로 이곳에 와 여러 문화예술 컨텐츠를 즐기기에 좋다. 


넉넉하게 차를 마시기에도 아주 좋았던 카페 '진정성' 



지상으로 올라오면 바로 518의 현장인 전남도청사 앞 광장. 진압군의 총탄자국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비극의 현장이다. 


ACC를 지어내는 안목으로 앞 광장도 잘 복원하겠다고 하니 완공되면 꼭 다시 와 볼 곳이다. 






방문한 날은 비가 많이 와 구석구석 더 잘 들여다 볼 수 없었는데 앞광장이 완공된 날 좋은 때 다시 오면 이곳에 더욱 활발히 모여있을 광주시민들의 에너지때문에 더더욱 행복해질 공간임이 틀림없다.  


이렇게 훌륭한 건축물을 만들어낸 우규승건축가를 기억에 세기고, 더하여 공모과정에서 이런 디자인에 손을 들어준 광주시민의 탁월함에도 큰 박수를 보낸다. 한번 지어지면 수십년을 이어질 건축물에 개개인과 시의 욕심을 넣어 높게, 크게, 화려하게를 외칠 수 있었는데 그런 일차원적인 욕구를 배제하고 이리도 역사적이고, 아름답고, 기능적이고, 어우러지는 디자인을 선택한 혜안에 진정 감탄했다. 


[추천 YouTube]

ACC 건축물에 대한 설명과 해석은 이 동영상이 최고다. 유현준 교수의 유려한 설명으로 보는 시간이 순삭되니 ACC에 대해 궁금하다면 주저함 없이 CLICK!

https://youtu.be/47QKRaNqj3M?si=pEPO6vk7o1g0_bi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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