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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술관옆산책로 May 12. 2024

보화각 1938: 간송미술관 재개관전 + 최순우 옛집

예전 기록을 찾아보니 22년 4월 30일. 딱 2년 만의 방문이다. 보화각이 80여년의 여정을 일단락하며 <<보화수보>>라는 이름으로 보수전 마지막 전시를 했을 때 방문했던 것이 엇그제 같은데 말이다.


간송의 보화각이 2년여의 보수를 마치고 재개관했다. 인터파크를 통해 오픈날 12시로 예약을 잡고 다녀왔다. 가격은 무료  


[예매사이트는 아래]

https://tickets.interpark.com/goods/24006039


보화각 1938
간송미술관 재개관전
24.5.1 ~ 6.16


보화각의 내부는 촬영이 금지되었는데 전시는 보화각이 1934년 처음 북단장의 모습에서 1938년 보화각으로 탄생하기까지 우리나라 1세대 건축가 박길룡선생의 설계도, 청사진 등을 비롯해 간송의 미공개 컬렉션을 선보였다.


사진을 찍을 수 없어 기억에 의존하자면 그 중 노수현화가의 <추협고촌>이 피마준기법으로 웅장하게 펼쳐쳐 있던 것, 김용진 외 11인의 <축수서화>가 마음에 남았다.


또한 간송 전형필이 미술품을 사고 팔 때 남겼던 일기대장이 공개되었는데 이를 바라보고 있으니 단순한 거래장부 이상의 감동이 있다.  


노수현 <추협고촌> / 소스 중앙일보
김용진 외 11인 <축수서화>  / 소스 연합뉴스
간송의 <일기대장>  / 소스 중앙일보


무엇보다 다양한 서체에 능했던 위창 오세창선생의 보화각 현판과 인장에 단연 최고였다는 말만 들었지 정말 그렇게 다양한 필체의 인장은 처음 보았는데 그런 선생의 글씨들이 굉장했다  


보화각 입구에 지금도 자랑스럽게 붙어 있는 <보화각> 현판이 위창선생의 것으로 글씨가 실로 단정한데 힘있고 동글한데 남성적이었다. 추사나 다산의 글씨와는 또 다르다.


오세창 <보화각> / 리플렛에 있던 사진을 촬영


이십 여개의 서로 다른 인장이 나에겐 그야말로  압권이었는데 작은 인장 안에 반듯반듯하게 때론 힘있게 들어앉은 글자들이 빼어나다. 사진을 찍을 수 없고 기사들에도 그 인장들 사진이 없어 블로그에 남길 수 없음이 너무 아쉽다.


새 단장을 한 보화각 외경


외관은 이렇게 재단장이 되었다. 처음엔 어디가 달라진건지.. 싶었는데 2년전 사진을 찾아보니 많이 낡아 있긴 하더라


2022년 4월 <<보화수보>> 때의 보화각. 여기저기 많이 낡았다.
2022년 4월 모든 전시품을 들어내고 빈 공간을 드러냈을 때의 보화각


2년 전 모든 전시품을 들어내 텅 빈 보화각의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빈 전시실을 일반인이 볼 기회가 거의 없는데 무수한 작품들을 품고 내주고 품고 내주고를 반복하다 마침내 모든 것을 비우고 태고의 모습을 드러낸 장엄미 마저 느껴졌었다.


이제 이 보화각에 간송의 귀중한 문화유산들이 때마다 사람들 앞에 나설 것이니 어찌 기쁘지 아니할까


보화각엔 난들이 무척, 너어무 많았다. 보화각의 재개관을 축하하는 이들이 그 만큼 많다는 것인데 보는 내가 다 흐뭇.


최근 난에 관심이 가 집에 난을 한 뿌리 들이고 애지중지 하는 중인데 이렇게 많은 난을 한꺼번에 보니 미술전시를 보러 와서는 다른 목적도 누린 양 신났다.


2년전 마당 한켠을 지키던 고목은 와이어에 몸을 의탁할 지언정 오늘도 저리 당당하게 사람들을 맞는다.


전시는 30~40분이면 충분하다. 간송이 보유한 어마무시한 미술품을 기대했다면 다소 실망 할 수도 있는 일.


그런데 개관전에 온 사람들은 실망한 표정이 없다. 다른 전시보다 좀 더 조용하고 사박하게 걷는 중이다. 아마 간송이 우리 문화재에 쏟은 애정과 통찰에 대한 예우가 아닐까..


볼 것은 적을 지언정 느낄 것은 많은 전시.


2년전 빈 보화각을 찾은 그 사람들도 비슷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나오니 햇살이 너무 좋다. 성북동에서 바로 빠져 나가기가 아쉬워 5분거리에 있는 최순우옛집에 갔다. 국립박물관장을 지내시면서 우리 미술품, 문화재에 대한 빛나는 식견을 보여주신 분이 생의 마지막에 기거했던 집이다.

주인의 취향과 성격을 보여주듯 단정하고 고즈넉했다. 'ㅁ'자 집을 지었으나 'ㄴ'자 2개를 위 아래로 설계해 모서리에 통로를 두고 사람도 자연도 드나들게 했다는 집이다. 소박한 우물과 여러 물받이개, 우리 나라에 잘 맞는 각종 나무와 식물들이 중정과 후원을 꾸몄다.


실내는 직원에게 요청하면 들어갈 수 있는데 이 직원분은 집과 관장님에 대하여 아주 담백한 설명까지 해주셨다.


앉은뱅이 책상으로 이렇게 얄상하고 단정한 것은 처음봤다


집안 곳곳에 관장님이 교류했던 작가들이 흔적이 작품들(모사품들)로 보인다


창문 위쪽으로 얹어 놓은 예쁜 백자 꽃병


대들보들이 그대로 들어난 마루


방안의 가구들이 너무 이뻤다. 여러 층과 크기의 사방탁자들, 쪼꼬미 앉은뱅이 책상, 문갑과 병풍이 그랬고, 당시 많은 교류를 했다는 김환기선생과  박수근선생의 작품이 진품은 당연히 아니나 벽에 걸렸다. 윤명로선생과 또 다른 선생들의 작은 백자들도 집안 가구, 창살, 외부 정원과 어우러져 자연미 그대로를 뽐낸다.  


성북동은 문화재적으로 미술사적으로 동네 자체가 가지고 있는 힘이 있다. 아마 삼청동권역을 제외하고는 서울에서 가장 빼어날 것이다.


가장 좋은 계절 5월에 이곳 보화각과 최순우옛집에서의 시간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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