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멈추어 서서

사랑받는 미국의 국민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인생

by 최 인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멈추어 서서


이 숲이 누구의 숲인지 짐작한다

그러나 그의 집은 마을에 있으니

내가 이곳에 멈추어 선 줄은 모르겠지

눈 소복이 덮이는 숲을 지켜보는 줄도


내 작은 말은 분명 이상하게 여길 테지

농가 하나 없는 곳에 멈춰 선 우리를

숲과 꽁꽁 얼어붙은 호수 사이에

한 해 중 가장 어둑어둑한 저녁에


말은 굴레의 방울을 뎅그렁 흔든다

길을 잘못 든 게 아니냐고 묻는 듯

들리는 소리라곤 오직 휘이잉 소리

부드러운 바람과 솜털 같은 눈송이 소리


아름답고, 어둡고, 깊디깊은 숲

하지만 내게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잠들기 전에 가야 할 길이 참으로 멀다

잠들기 전에 가야 할 길이 참으로 멀다


번역 최 인



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


Whose woods these are I think I know.

His house is in the village though;

He will not see me stopping here

To watch his woods fill up with snow.


My little horse must think it queer

To stop without a farmhouse near

Between the woods and frozen lake

The darkest evening of the year.


He gives his harness bells a shake

To ask if there is some mistake.

The only other sound's the sweep

Of easy wind and downy flake.


The woods are lovely, dark and deep.

But I have promises to k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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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상 가장 사랑받았던 국민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

그러나 프로스트의 인생은 외로웠고, 슬픔으로 가득했다. 그가 11살이었을 때 그의 아버지는 결핵으로 사망했고, 5년 후에는 어머니까지 암으로 여의었다.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아내 엘리너에게 반해 끈질긴 구애 끝에 결혼에 성공하고, 여섯 자녀를 두었으나 딸 둘을 제외한 나머지 네 아이들도 먼저 보내야 했다. 아내 엘리너도 암과 심장병으로 고생하다 프로스트가 성공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먼저 떠났다.

프로스트의 여동생 지니 또한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이후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정신 질환은 프로스트 가족의 유전병으로 보이는데, 프로스트와 어머니 모두 우울증을 앓았고, 그의 딸도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주변 사람들이 끊임없이 떠나는 상황에서, 프로스트는 그 시간들을 어찌 홀로 견뎌냈을지. 그는 인생이 나를 사방에서 때리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거대한 상실 속에 살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는 것. 다음날 아침 눈을 뜨고, 사랑하는 사람들 없이도 또 하루를 살아내는 것. 그래서 프로스트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긴다. "It goes on."


NewHampshire_Image1_RobertFrost_Credit_Courtesy_Tracy_Lee_Carroll.jpg 뉴잉글랜드 주에 있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농장

프로스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자란 도시 소년이었고, 하버드에 입학할 정도로 수재였지만 병 때문에 졸업하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결혼한 프로스트 부부를 위해 뉴잉글랜드 주에 농장을 사주었고, 프로스트는 9년간 농장 일을 하며 글을 썼다. 프로스트의 시에 나오는 숲, 호수, 눈 같은 자연적 소재들은 프로스트가 매일 마주하던 시골의 일상이다.


그러나 당시 미국 문단은 화려하고 어려운 시를 좋아했고, 프로스트의 담백하고 일상적인 문체는 별로 인기가 없었다. 1912년 프로스트는 결단을 내리고, 농장을 팔아 온 가족을 데리고 영국행 배를 탄다. 당시 영국은 새로운 문학적 시도를 환영하는 분위기였기에, 그는 영국에서 첫 시집 <소년의 의지(A Boy's Will)>을 먼저 출간하고 두 시집을 연이어 대박 내게 된다. 프로스트가 영국에서 극찬을 받기 시작하자, 미국 문단은 당황하여 뒤늦게 난리가 난다. 결국 영국으로 떠난 뒤 무명이었던 프로스트는 영국이 인정한 위대한 미국 시인이라는 타이틀로 화려하게 미국에 복귀하게 된다.


그는 미국 시인 중 유일하게 퓰리처상을 4번이나 수상했으며,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자작시를 낭독하는 등 미국 사람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프로스트가 활동하던 시기는 세계 대전과 대공황으로 미국인들에게 삶의 위로가 필요하던 때였다. 다른 시인들이 절망과 허무를 노래할 때, 프로스트는 '인생은 비극적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가야 할 길이 있다.'라고 사람들의 등을 밀어주는 시를 썼다. 미국인들에게는 '그래, 힘들어도 또 내일을 살아내야지' 하는 묵묵한 응원이 되었으리라.


유독 살아내기가 버거운 오늘날, '잠들기 전에 가야 할 길이 참으로 먼' 요즘에도,

지켜야 할 약속을 지켜내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는 모든 이들에게 이 시가 위로가 되기를.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