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등불

잡히지 않기에 비로소 영원히 빛나는 것들

by 최 인
GB_SgufWoAAmP9M.jpg

삶의 등불


언제나 우리는 한 줄기 빛을 따라가지

언제나 빛은 멀어지고, 우리는 어둠을 더듬어

그 영광을 향해 손을 뻗고, 우리가 지나치는

대지는 우리 시야 너머로 모습을 감추지

어스레하고 신비로이, 한밤 속 깊이 접힌 채

그래도 상관없어,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오로지 그 빛, 빛뿐! 가만히 걸려 있으니

온 힘을 다하기만 하면 우리 것이 될 터

어리석긴! 달아나는 빛은 결코 잡을 수 없지

잡히는 순간 타오르던 불빛은 꺼져버릴 터

빛의 가치는 언제나 조금 멀리 있는 듯 보이는

그 거리에 있는 것. 갈피 잃고 헤맬지라도,

언제나 빛은 앞길을 비추고, 우리는 어느덧

알지 못한 채 길 위로 이끌려 가지, 꿈결처럼


최 인 번역



The Lamp Of Life


Always we are following a light,

Always the light recedes; with groping hands

We stretch toward this glory, while the lands

We journey through are hidden from our sight

Dim and mysterious, folded deep in night,

We care not, all our utmost need demands

Is but the light, the light! So still it stands

Surely our own if we exert our might.

Fool! Never can'st thou grasp this fleeting gleam,

Its glowing flame would die if it were caught,

Its value is that it doth always seem

But just a little farther on. Distraught,

But lighted ever onward, we are brought

Upon our way unknowing, in a dream.





image.png


늦은 나이에 피어난 꽃, 에이미 로웰(1874~1925)


로웰 가문은 미국 보스턴에서 손꼽히는 명문가였다. 첫째 오빠는 유명한 천문학자, 둘째 오빠는 하버드 대학교 총장이자 법학자였고, 사촌인 제임스 러셀 로웰도 유명한 시인이었다. 학구적이고 부유한 집안 분위기에서 자라난 명문가의 막내딸 에이미 로웰은 가문 도서관에서 다양한 책을 탐독하며 오래도록 문학적 소양을 쌓았다. 하지만 시대가 시대인 만큼, 여성이 대학에 가는 일은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에이미도 대학에 다니지는 못했다. 그녀는 이 부족함을 열렬한 독서와 강박적인 책 수집으로 채운다.

에이미는 유명한 사교계 인사였고, 많은 여행을 다녔다. (부러운 삶...) 서른 무렵에는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배우 엘레오노라 두세(Eleonora Duse)의 공연을 보고 크게 영감을 받아 시를 쓰기 시작했으며, 그때부터 10년 가까이 혼자 습작하며 자신만의 시 세계를 갈고닦았다. 30대 후반에서야 본격 시인으로 데뷔했는데, 첫 시집이 나오자마자 영국으로 건너가 당대 최고의 시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당시 여자로는 드물게 시가를 피우고 남성 시인들과도 당당하게 논쟁하며 '보스턴의 여장부'로 불렸다.


image.png 에이다 러셀과 에이미 로웰


당시 미국 상류층 여성들 사이에는 경제적으로 독립된 두 여성이 한 집에 살며 깊은 유대감을 나누는 관계를 '보스턴 결혼'이라고 불렀다. 결혼이라는 제도에서 벗어나 마음 맞는 친구와 지적, 정서적 동반자로 평생을 살았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지금보다 150년 앞선 비혼 트렌드다. 물론 친구 사이에서 우정으로 함께 동거하는 경우도 많았겠지만, 지금처럼 동성애를 당당히 밝힐 수 없었던 시대에 사랑을 감출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도 했다.

에이미 로웰은 에이다 드와이어 러셀이라는 여성을 만나 첫눈에 반했고, 두 사람은 '보스턴 결혼'하여 함께 살고 여행하며 오랜 시간을 보냈다. 에이미는 러셀에게 바치는 사랑 시를 수도 없이 썼고, 러셀 또한 에이미의 편집자이자 비평가 역할을 하며 에이미의 모든 집필 과정을 함께 했다. 에이미는 51세라는 이른 나이에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러셀은 에이미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의 곁을 지켰다. 러셀은 에이미 로웰의 유고 작품을 정리해 세상에 냈고(이때 낸 시집 <What's O'Clock>이 퓰리처상을 받기도 했다), 평생 연인을 기리며 살다가 1948년에 세상을 떠났다.



위에서 소개한 에이미 로웰의 시 <삶의 등불>은 우리가 쫓는 목표보다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우리는 무언가를 간절히 손에 쥐고자 한다. 누군가는 완벽한 사랑을, 누군가는 성취를, 누군가는 부나 명예를. 이 시의 전반부는 그런 '빛'을 향해 맹목적으로 손을 뻗고 달려가는 우리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어둠을 더듬어 손을 뻗고, 발밑의 대지가 어둠 속에 사라지는 줄도 모르고 오로지 저 멀리 걸려 있는 빛을 필사적으로 잡고자 하는.

그러나 9행에서 로웰은 "어리석긴!(Fool!)"이라고 외치며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애처로운 인간들을 향한 탄식이자 안타까움의 소리다. 빛의 진짜 가치는 그것을 손에 쥘 때가 아니라, '조금 멀리 있는 듯' 적당한 거리가 있을 때 진가를 발휘한다. 달아나는 빛은 결코 잡을 수 없으며, 잡히는 순간 그 찬란하던 불꽃은 꺼져버린다. 어떤 것은 소유하려고 하면 대신 그 대상의 신비로움과 생명력을 잃게 되는 법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 빛을 잡지 못해 '갈피 잃고 헤맬지라도', 사실 그 빛은 여전히 앞길을 비추며 우리를 인도한다. 우리는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 채', 꿈결 같은 곳으로 이끌려 간다. 우리가 잡지 못한 그 빛이 사실은 우리를 계속 걷게 만드는 유일한 등불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우리의 방황은 꿈결 같은 여정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image.png


에이미 로웰은 자유시의 선구자였지만, 이 시에서는 소네트라는 정형적인 형식을 택했다. 소네트는 우리나라로 비유하자면 '시조 형식' 같은 것인데, 14줄과 정형화된 구조(A-B-B-A 구조)가 특징이다.

이 시도 'Light(A)-hands(B)-lands(B)-sight(A)' 'Night(A)-stands(B)-demands(B)-might(A)' 로 각운 형식을 철저히 따르고 있으며, 한 줄을 대략 10개의 음절로 맞춰 글의 음악적 리듬을 살리고 있다. 한국어 번역도 최대한 각 줄의 음절을 맞춰 네모 가득하게 구성했다. 한편 9행에서는 Fool!이라고 외치면서 시의 분위기가 확 바뀐다. 이 부분은 소네트의 '볼타(Volta)'라는 장치로, 형식과 이야기를 확 바꾸거나 반전을 주는 극적인 지점이다. 이 시에서는 삶의 진실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하다.

읽다 보면 문장이 이상하게 툭툭 끊겨 있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이는 음절 규칙과 각운을 맞추기 위해 시인이 의도한 바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빛을 향해 절박하게 달려가는 사람의 거친 호흡처럼 들리기도 한다. 소리 내어 읽어보면 시를 훨씬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원본을 보면 L과 F로 시작하는 단어를 섬세하게 골라 (Lamp, Life, Light, Lands ... Fool, Fleeting, Flame, Farther...) 부드러운 느낌이나 불꽃의 느낌을 많이 얹었는데, 이런 부분을 한국어로는 다 표현할 수 없어 아쉽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를 간절히 더듬고, 잡고자 손을 뻗어 애쓰고 있는 모든 분들께 이 시가 작은 위안이 되길. 꼭 무언가를 손에 쥐지 못했다고 해도 괜찮다. 우리가 쫓던 빛은 여전히 우리 앞길을 비추고 우리는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으니, 우리 모두의 인생에도 잡히지 않아 더 아름다운 삶의 등불이 하나씩 걸려있기를 소망한다.

금요일 연재
이전 01화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멈추어 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