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다정함 속에서도 나는 혼자였다

<혼자>_ 사라 티즈데일

by 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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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랑을 받고도 나는 혼자다

주고받은 그 모든 것을 두고도—

당신의 그 지극한 다정함을 두고도

때로는 살아있음이 기쁘지 않다


나는 혼자다, 홀로 서 있다

지쳐버린 잿빛 세상의 높은 봉우리에

주변에는 눈보라가 매섭게 몰아치고

위로는 끝없는 허공이 펼쳐진 곳에


땅도 숨고 하늘도 숨어버린 곳에서

죽어서 더는 외롭지 않은 이들처럼

평온한 안식에 휩쓸리지 않도록

오로지 영혼의 자긍심만이 나를 지켜낸다


번역 최 인




Alone


I am alone, in spite of love,

In spite of all I take and give—

In spite of all your tenderness,

Sometimes I am not glad to live.


I am alone, as though I stood

On the highest peak of the tired gray world,

About me only swirling snow,

Above me, endless space unfurled;


With earth hidden and heaven hidden,

And only my own spirit's pride

To keep me from the peace of those

Who are not lonely, having d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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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 티즈데일(1884-1933)은 섬세한 감수성과 음악적인 시어로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과 사랑, 자연의 미묘한 변화를 노래한 20세기 미국의 서정 시인이다.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유복한 가정에서 늦둥이 막내딸로 태어났는데, 어릴 때는 몸이 약해서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고 집에서 창밖의 세상을 구경하며 혼자만의 세계를 쌓았다. 가족들은 사라를 "새디"라고 불렀는데, 9세까지는 홈스쿨링을 받았고 10세가 넘어서야 학교에 다닐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다행히 부유한 집안 덕에 상주 간호사에게 보살핌을 받았다고 한다.

1904년,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문학 모임을 만들어 <포터스 휠(The Potter's Wheel)>이라는 문학잡지를 창간했다. 물론 전문적인 잡지는 아니었으므로, 다 같이 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곤 했는데 아직까지도 자료가 남아있다.



image.png 아마추어 작가들이 직접 그림을 그려 만든 포터스 휠 잡지. 매우 잘 그렸다...


티즈데일은 1907년 첫 시집<두세에게 바치는 소네트와 시편들>을 발간하며 데뷔했다. 여기서 두세는 당대 최고의 이탈리아 연극배우였던 엘레오노라 두세를 말하는 것으로, 사라는 이 배우를 매우 동경하고 좋아하여 두세를 위한 시들을 썼다.

사라는 여러 남성들의 구애를 받았다. 특히 사라의 인생을 흔든 두 남자가 있었는데, 한 명은 당시 인기 시인이었던 베이첼 린지였다. 린지는 수백 통의 편지를 보내고 시를 낭송할 정도로 사라에게 열렬히 구애했다. 그러나 린지는 가난한 시인이었고, 자신이 사라를 만족시킬 만큼의 충분한 경제적 기반이나 안정적인 삶을 보장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결국 둘은 친구로 남게 된다. 사라는 자신의 열렬한 팬이자 성공한 사업가였던 언스트 필싱어와 결혼했다. 경제적 풍요와 안정을 보장받는, 당시로서는 행복해지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1915년에는 세 번째 시집 <바다로 가는 강>을 출판해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남편과 뉴욕으로 이주해 살았다.

1918년 시집 《사랑의 노래》로 시 부문 최초, 여성 시인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부유한 사업가의 아내이자 성공한 시인으로서 완벽한 삶을 살았을 것 같지만, 실상은 풍요 속의 빈곤이었다. 남편은 출장이 잦았고, 사라는 화려한 저택에서 항상 외로움에 젖어 지냈다. 위 시에서도 느껴지듯이, (당신의 그 지극한 다정함을 두고도/ 때로는 살아있음이 기쁘지 않다) 사라에게 결혼생활은 지독하게 고독했다.


image.png 베이첼 린지


결국 사라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1929년 남편에게 이혼을 신청한다. 아마 계속 곁에 있어주지 못하는 남편과 헤어지고 나면 조금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혼 후 사라는 더 깊은 우울에 빠졌다.


얼마 후 열렬히 구애하고 사랑했던 과거의 연인, 베이첼 린지가 음독자살을 한다. 린지가 가난과 절망 속에서 죽었다는 소식은 사라에게 깊은 좌절과 죄책감을 남겼던 것 같다. 슬픔에 젖어 사라의 몸은 점점 쇠약해졌고, 마음도 지쳐갔다.


1933년, 사라는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하고 따뜻한 물을 채운 욕조 안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평생을 따라다닌 외로움과 작별하는 순간이었다. 슬프게도, 그녀의 침대 곁에는 한때 자신을 사랑했던 린지를 그리워하는 내용의 시집이 놓여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렇게 사라는 짧은 생을 마감했다.


image.png 시집 <불꽃과 그림자>


위에서 소개한 시 <혼자(Alone)>는 사라의 네 번째 시집인 <불꽃과 그림자(Flame and shadow)>에 실린 시다. 이 시집은 티즈데일 작품 세계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꼽힌다. 이전 시집들은 낭만적이고 달콤한 경향이 짙었지만, 이 시집에선 고독, 허무, 죽음 같은 주제가 깊게 깔려 있다.

당시는 사라가 시인으로서 최고의 명성을 떨치던 때이자, 필싱어와 결혼한 지 6년 정도 되어 한창 외로워하던 시기다. 세상에서는 성공한 여성, 훌륭한 시인이라 칭송받았지만, 정작 사라는 '지쳐버린 잿빛 세상의 높은 봉우리에, 주변에는 눈보라가 매섭게 몰아치고 위로는 끝없는 허공이 펼쳐진 곳에' 고립되어 있다고 느꼈던 것 같다.

3연에서 죽음은 공포가 아니라 더는 외롭지 않아도 되는 '평온한 안식'으로 묘사된다. 땅도 하늘도 모두 숨어버린 극한의 고립 속에서, 사라는 차라리 저 죽은 이들이 누리는 안식에 몸을 맡기고자 하는 유혹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사라를 붙드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영혼의 자긍심'이다. 고통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으려는 마지막 자존심, 나를 마지막까지 붙들고 일으켜 세우는 프라이드(pride). 사라에게 그 자존심은 어떤 무게였을까. 죽음보다 달콤한 도피의 유혹 앞에서도 끝내 '나'로 남으려 했던 처절한 저항이자,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서늘한 품격. 사라는 고독을 마주하고 고통을 견디며 최선을 다해 싸워내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 또한 각자의 잿빛 세상에 서 있다. 눈보라가 치는 외로운 봉우리에서, 다들 혼자만의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견디기 힘든 고독이고, 누군가에게는 닳아버린 일상이며, 누군가에게는 끝없는 허공처럼 무서운 세상. 지금 당신의 봉우리에는 어떤 눈보라가 치고 있는가. 그 시린 바람 속에서도 당신을 기어이 일으켜 세우는, 당신의 자긍심은 무엇인가.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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