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순간을 담는 투명한 동그라미들
유럽의 도시들을 방문할 때면, 종종 비눗방울을 목격하게 된다. 날씨 좋은 날엔 어김없이 누군가 광장에 나와 비눗방울을 분다. 그들은 마치 찰나의 조각을 빚어내는 예술가 같이 보이기도 한다. 누군가는 몸집이 큰 기구를 이용하여 구름같이 커다란 비눗방울을 만들기도 하고, 자동으로 방울들이 생성되는 기계를 이용하기도 한다. 간혹 그들 앞에 놓인 돈 바구니를 본 기억이 있는데, 진짜 동전을 넣는 사람들은 본 적은 없다. 가던 길을 멈추고, 그저 넋을 놓고 쳐다보는 사람들의 표정들이 떠오른다.
강가를 지나는데, 어디선가 새끼 비눗방울이 날아든다. 저 멀리 길거리에 크고 작은 비눗방울들이 떠다니는 곳에 사람들이 모여있다. 강변의 노을은 돌바닥을 오렌지빛으로 물들이고, 각자의 모양으로 떠다니는 비눗방울들과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뒤섞여 초현실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비눗방울들을 좇는 것은 아이들 뿐만이 아니다. 아이들 주변의 어른들도, 그곳을 지나던 개들도, 다 같이 같은 곳을 응시한다. 그들의 시선은 하나같이 허공에 떠오르는 그 투명한 방울들에 머문다.
어린 시절, 비눗방울을 불어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한 번도 불어보지 않은 사람은 있을지언정, 딱 한 번만 불어본 사람을 없을 테다. 그 중독성은 이루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후-하고 숨을 불어넣으면 플라스틱 구멍 사이로 보글보글 미세한 거품이 일며, 금세 미끌거리는 방울들을 생성해 낸다. 세상 작고 귀여운 투명한 공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며 이내 공중으로 떠오른다. 바닥에 채 닿기 전에 터져버리기 일쑤여도, 터지는 순간의 그 모습조차 눈길을 끈다.
비눗방울 예술가의 손에서 탄생한 단단한 방울들은 꽤 오랜 시간 바람을 타고 공중에 머물렀다. 우아한 모습으로 둥둥 떠오르는 그것들 속엔 온통 빛이 가득하다. 비누거품이 낳은 오색찬란한 빛들이 둥근 면을 타고 흐른다. 무심히 떠돌던 그것들은 유영하다가 어느 순간 톡 하고 터지며 자취를 감춘다. 계속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새로 만들어지는 비눗방울을 기다리며 자리를 지킨다. 아무리 잘 만들어진 비눗방울일지라도 (특별히 외부 압력을 가하지 않더라도) 바람을 만나거나, 언젠가 그것이 바닥에 닿으면, 금세 사라져 버릴 것이다. 금세 사라지기에 계속 보게 되는 것. 나는, 이곳의 사람들은 어쩌면 지금 벌어지는 이 찰나적인 풍경에서 어떤 숭고미를 찾는 건지도 모른다.
그 끝을 아는 모두가 그것의 소멸과 생성을 바라본다는 사실이 재밌다. 영원히 터지지 않는 비눗방울이 있다면, 오히려 이렇게 오래 머물지는 않았을 것이다. 역시 끝이 있기에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는 법이다. 사람들의 눈빛이 아련하기 그지없다. 저마다 그 투명한 방울들에 지난 기억들을 담는 것만 같다. 문득 내가 보내는 지금 이 시간들도, 그 시간들을 담는 기억이란 것도 어쩌면 비눗방울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기억은 금세 망각이라는 땅에 닿아 소멸되고, 어떤 것들은 저마다 제 자리에서 떠오르며 한없이 예쁜 무지갯빛을 발산하니까 말이다.
눈가에 흐릿하게 맺히는 상이 나의 눈물인지, 착시인지 헷갈릴 무렵,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기계음에 애먼 귀가 시려 번쩍 정신이 든다. 공연하러 나온 밴드가 앰프를 켜고 각자의 악기를 조율한다. 주말 저녁의 강변은 여러모로 노스탤직 하다는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나의 오늘도, 앞으로 맞이할 수많은 날들도 기억 저편으로 사그라들 것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매 순간 충실하게 느끼고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평범한 매일일지라도 찰나의 황홀감으로 가득 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내가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 글을 쓰고 주변을 들여다보며 기록한다는 것은 어쩌면 언제든 꺼내볼 수 있게 마음속 어딘가, 지나간 시간들을 투명한 동그라미에 담아두는 것과도 같을 것이다.
언젠가 나의 지금이, 지나온 시간의 단편들이, 광장에서 바람 타고 불현듯 날아드는 비눗방울처럼 나를 찾아올 때면, 다시금 그것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읊조리는 상상을 해본다.
“모든 것이 넘치게 좋았다. 톡 터질 비눗방울 같은, 꿈만 같던 나날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