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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혁재 Jan 04. 2017

1. 독한 녀석들 (실행)

Done is better than perfect.

2012년 초 LG전자에서 안드로이드 개발자로 근무하던 시절, 업무 특성상 하루에 배터리를 4~5개씩 심지어 10개 이상 쓰는 날도 있을 만큼의 스마트폰 헤비유저였다. 충전에 대한 불편함이 그 누구보다 컸고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방법을 자연스레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민의 끝에 나온 첫 번째 아이디어는
"배터리를 2개 같이 쓰면 2배로 사용할 수 있을까? 였다.

그럼 우선 만들어서 써보자 하고 간단하게 혼자 시제품을 만들어 몇 주를 써봤는데 잘? 동작하고 정식으로 제 품화한다면 꽤 쓸만한 액세서리가 될 거라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 멀쩡한? 케이스 자르고 구멍 내고 지점토로 만들어서 몇 주 실제로 사용했던 일명:더 블 케이스 DIY 시제품 >


해당 아이디어를 회사에 제출했지만 아쉽게도 상품화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무슨 오기가 발동했는지 모르겠다. 
동생에게 아이디어를 말했고 실제로 제작을 해서 부업 삼아해보면 어떨까? 하고 제작업체, 금형업체 등등을 발로 뛰면서 알아봤지만 투입되는 비용과 시간, 리스크가 너무 커 포기를 하게 된다.

스마트폰의 충전 문제를 해결하면 분명히 사업 기회가 있을 거란 확신은 들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힌 그렇게 어느 정도? 의 실행을 처음 시도했던 우리의 첫 프로젝트였던 일명 "더블 케이스"는 고이 사라졌다.
( 참고로 해당 케이스가 실제로 몇 개월 뒤에 스마트폰 액세서리 회사에서 출시가 되었지만 망했다...)

다시 몇 달이 지난 2012년도 가을 어느 날이었다.
부사수 녀석이 개발 테스트를 위해 열심히 수십 개의 배터리 충전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방전 테스트를 하기 위해 고의로 방전을 하고 다시 배터리를 끼우고 막노동성? 테스트의 빠른 진행을 위한 용도 겸 선배들이 충전의 귀차니즘을 해소하는 그런 용도였다.

배터리를 무작위로 바꿔서 쓰던 그 순간 아! 이거다 머리를 한대 맞은 기분이었다.

"배터리를 같이 쓰게 만들고 귀찮은 충전 문제는 서비스로 대체하면 어떨까?"

충전의 문제를 하드웨어가 아닌 서비스로 풀어보자는 배터리 공유 서비스 "만땅"의 시작이었다.
동생의 첫 피드백은 반대였다. 배터리가 아무리 소모품이지만 자기 물건을 아끼는 한국인 특성상 과연 바꿔서 쓸까라는 거였다. 일리가 있는 의견이었고, 그럼 어떻게 확인을 할까?라는 궁금증을 확인하기 위해 설문조사를 시작하기로 한다. 설문 내용은 단순했다. 배터리를 같이 쓰는 서비스에 대한 인식과 있으면 쓰겠냐라는 질문 등으로 구성된 짤막한 설문지였다.

초반에는 지인들에게 후반에는 다시 한번 확인을 위해 유료 설문 서비스까지 수백 명을 설문조사 결과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꽤? 긍정적인 답변 비율이 나왔다. 다시 동생과 이런저런 비용과 계산, 리스크 감수 등을 고려했고 합의점을 찾았고 우리가 내린 결론은


어찌 보면 용감하고 
어찌 보면 단순했고
어쩌 보면 무식했다.
우리는 몇 달 뒤인 2012년 겨울에 이 사실을 길거리에서 몸으로 뼈져리게 느끼게 된다.

위험 감수를 위해 작은 회사에 다니는 동생이 자진해서 먼저 퇴사를 감행했고 실행으로 옮기기로 시작했다. 약 두 달간으로 예상했던 기간과 세 달로, 예상 자금보다 수천만 원의 추가 자금을 소진하며,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만땅의 준비가 시작되었다.
동생의 신혼집은? 각종 기자재와 서비스 준비 용품으로 넘쳐났고 주말이면 기자재를 조금이라도 싸게 구입하기 위해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힘들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즐겁고 설레었던 시간을 보냈다.

< 있는 돈 없는 돈 탈탈 털어서 사들이기 시작한 만땅 기자재들>



준비를 하면서 몇 가지를 룰로 정했다. 

1. 비용은 최대한 아끼자.
서비스를 하고 충전을 할 장소가 필요했지만 홍대의 무시무시한 임대료라는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왔다. 절박하고 아끼자고 노력해서 길이 보였을까? 
서비스를 길거리에서 하기로 결정한다. 
바로 노점상이었다. (무모할 정도로 겁이 없었다.)
가설은 그럴듯 했다. 홍대의 문화 특성상 수많은 노점이 있고 우리는 다른 서비스와 겹치지도 않으니 텃새도 작을 거라 생각했고 창업을 하는데 있어서 이 정도? 쪽팔림은 감수할 자신이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장소! 
그럼 밤에만 쓸 수 있는 곳을 찾자. 
해서 나온 아이디어는 부동산 사무실이었다.
밤에는 부동산 사무실을 안 쓰니깐... 우리가 조금 돈을 드린다면?
합리적이고 생각이고 먹힐꺼라 예상했다. 결론은 우리쪽만을 생각한 자기합리화 오류였다.
홍대 메인 상권과 가까운 부동산을 무작정 쳐들어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절대 안된다.
시꺼먼? 남자가 그것도 두 놈씩이나 쳐들어와서 밤에 사무실을 빌려 달라고 하니? 황당할 테고
뭐 할 거냐고 그나마 물어보는 사장님도 계셨는데 배터리를 바꿔주는 서비스를 한다고 하니
미친놈 취급을 당하기도 하고.... 

그렇게 몇 주 발을 동동 구르며 있던 어느 날 동생에게서 희소식이 전해져 온다. 

한 부동산 사장님으로부터 소정의 임대료를 받고 밤에 사무실을 빌리는 조건을 허락을 받아 냈다는 것이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열심히 스마트폰으로 자료 화면까지 보여주면서 나를 잘? 활용했다. "젊은 형제들이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도전하기 위해서 사무실을 구하는데 돈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저는 멀쩡한 회사 다녔었고 심지어 형은 대기업에 TV까지 나온 사람인데 사기 치거나 절대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라고..."

< 방송덕을? 처음으로 봤다. 짝 출연 당시.... 몇 회차 인지 질문 사절...>


2. 마케팅 예산은 아끼지 말고 서비스를 알릴 수 있다면 뭐든 한다. 
깔끔하게 보이기 위해서 유니폼을 제작했고, 지인이고 인맥이고 학연 지연을 총동원해서 예산안에서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기 시작했다보드 동호회의 디자이너 누나에게 서비스 로고를 부탁하고 나레이터 모델을 하던 친구와 그 친구의 후배들에게 행사 진행과 사은품? 을 나눠주게 부탁했다. 
(남자가 타깃이었고 여자가 이쁜 얼굴로 웃으면서 주는데 무조건 받을 거라는 예상이었다.)
그리고, 후배들을 협박해서 알바로 불러들였다. 물론 무보수로 

(미안하다. 사랑한다.)
홍대에서는 용서가 될 것 같은 B급 카피를 담은 콘돔 사은품도 수천 개 준비했다. 
(콘돔을 싸게 수천 개 구하러 다녔던 동생의 일화는 아직도 슬픈 전설이다.)

콘돔에 쓴 카피는 이랬다. 

"만땅 채우세요." (참고로 해당 사은품은 대박 홍보 효과로 먹혀들었다.)

심지어 이목을 끌기 위해 사람이 직접 들어가야만 하는 150만원이나 하는 대형? 인형을 2개씩이나 주문 제작도 했다. 사람이 들어가야 하는 인형인데 무서운 형들? 두 명에 의해 친척 동생들은 인형 탈 알바의 희생양이 되었다. 인형이 너무 사람처럼 움직이고 신기한 나머지... (당연하지. 사람이 들어가 있는데) 발로 차 보는 취객들로 인해 첫날부터 맞아서 다치는 사고도 겪게 된다.

< 이 안에 사람 있다. 서비스 초기 제작했던 만땅 서비스 캐릭터 "쿠니" >


3. 우리가 목표로 한 매출이 3개월 내에 나오지 않는다면 과감하게 포기한다. 
어디서 배운 건 있어서? 우리끼리 계산한 Man-month 2.5명 투입시 목표 매출은 500만 원 이였다. 
1회 교체다 1500원의 가격으로 다소 무리한 숫자라 여겨졌지만 이 정도? 성장세가 있어야 사업화가 가능하리라 생각했던 거 같다. 

D-Day : 2012년도 12월 24일 
약 3개월의 준비기간을 거쳐 홍대 길거리로 가족에 지인에 심지어 제수씨까지 약 10명이 인원이 온갖 사은품과 캐릭터 인형 그리고 "배터리 통"을 들고 홍대 길거리로 나선다. 

비록 노점상이었지만 우리의 각오는 비장했다. 
(솔직히 지금 생각해보면 우린 제정신이 아닌 돌아이들이었다. )

< 만땅 서비스 첫날 >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첫날은 2개의 배터리를 교체하는 성적을 낸다.
첫날은 심지어 서비스를 알리자는 취지에서의 무료 행사였고 받은 2개의 배터리는 불량이었다. 

처참했지만 눈앞에 펼쳐진 현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10명이 투입된 무료 행사가 끝나고는 2.5명을 투입할 예정인데 앞으로의 결과는 불 보듯 뻔해 보였다. 

2012년 겨울은 그렇게 잔인하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몰랐었다. 더 큰 악재를...

- 날씨와의 사투 
나는 직장에 근무하던 터라 주말반으로 금토일, 동생과 친척동생은 풀타임으로 일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같이 약속을 했다. "3개월은 죽었다 깨나도 무조건 버티자" 
문제를 찾아가며 개선을 했지만 해결할 수 없는 건 바로 날씨였다. 영하 20도 칼바람은 정말 살인적인 고통이였다.하지만 춥거나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버텼다. 

<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항상 같은 자리를 지켰다. >


< 영하 20도로 가장 추웠던 어느 날, 부대표 >


< 형들이 가장 싫었을 친척 동생 1 >


내복을 겹겹이 입고 겨울 점퍼를 몇 개씩 둘러 입었고, 교대로 편의점에 들어가서 몸을 녹였다.
따뜻한 음료를 사다 주는 친구들의 응원에 감사하며 버티고 또 버텼다. 주말만 하는 나도 이런데 매일 하는 동생 두 녀석이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 하지만 무뚝뚝한 성격상 고맙다는 표현 한번 하질 못했다. 

우리는 멘탈을 가다듬고 하나둘씩 개선을 해나가기 시작한다.
-노점상 분들의 텃새를 막아내고 형동생으로 친해졌다. 나중에 들은 사실인데 처음에는 잠깐하고 그만 둘 줄 알고 텃새를 부렸었는데 매일 같이 그 추위를 버티며 하는걸 보니 노점상분들 사이에서 저 친구들은 독해서 건들면 안 된다는 소문이 돌았었다고 한다.
-서비스 멘트를 만들어서 소리를 지르고, 소리를 지르다가 부족하다 싶어 확성기를 샀다.
-배터리 신뢰를 심어 주기 위해 진공 포장과 소독기를 준비했다.
-한 장소에서 지속적으로 노출하고 오래 있는 것이 효과적이라 것을 알게 되어 평일은 12시간, 주말은 14시간씩 길거리에서 서서 노점상을 강행했다. 
-고객 재구매를 위해 쿠폰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홍보를 위해 배달 서비스를 추가했고 배달시 해당 점포의 모든 테이블에 전단지를 뿌려댔다.
-오래 서 있기 위해 짐수레를 개조해서 카트를 만들었고, 쓰다 보니 잘 안 보여서 LED를 달았다.
-멀리서도 보이라고 깃발을 달기 시작했다.
-1500원에 시작한 서비스 가격을 올려가면서 테스트하기 시작했다.
-배터리 불량률을 줄이기 위해 검사하는 룰을 만들기 시작하고 프로세스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첫날 2개였던 교체 고객은 한 달 만에 일일 기준 100개을 돌파한다.

우리 하루에 배터리 100개를 교체할 수 있을까? 그날 회식하자.
첫날 농담 삼아서 약속했던 첫 회식...

100개를 교체했던 그날 새벽 6시 동생들과 함께 마셨던 소주 한 잔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빠르게 다시 2달 반의 시간이 흘렀다.
목표로 했던 유료 사용자 약 3000명, 월 매출 500만 원이라는 성과를 내게 된다.

약 3개월의 추운 겨울을 홍대 길거리에서 보내며, 우리는 몰라보게 독해져 있었고, 안되면 될 때까지 도전하는 끈기와 말뿐만이 아닌 "실행"의  진짜 의미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고생은 곧 끝날 거란 희망도 가져보게 된다.

하지만...              


이론과 실전은 너무나도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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