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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거진 미러 Jun 26. 2024

Vol.26 <버드나무 아래서, 유이우>

기록보관소

사서 김시아입니다.


주변 사람들과 책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시집은 어렵다는 말을 종종 듣고는 합니다.

시를 어떻게 감상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도 따라오죠.


이에 대해 유이우 시인은 말합니다.

취향에 맞는지 맞지 않는지의 차이일 뿐, 어려운 게 아니라고요.

시를 정의하는 대신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각자의 답을 갖게 된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사람이 시 사이에 끼어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유이우 시인.

그에게 있어 시는 어떤 의미일까요?


<버드나무 아래서, 유이우>를 통해 그의 세계를 살필 수 있습니다.


-


땅 깊숙이 뿌리를 박아 넣은, 고요하고 우직한 나무를 동경했다. 그렇게 그늘진 땅만 바라보다 흩날리는 풀잎들은 놓쳐버렸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깊이 뿌리내릴수록 자유롭게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흐르는 대로 두고 손가락이 멈추면 시를 끝낸다. 자신만의 리듬을 언어로 연주하고 난 후엔 ‘캬’ 하며 상쾌하게 펜을 내려놓는다. 종이 한 장에 여과 없이 자신의 세계를 눌러 담는, 시인 유이우를 만났다. 



부드러운 거리

유이우


미소짓는 마음만 둥근 거라던

사랑하는 골목이


강박을 약간

치우면서


원하는 그 느낌으로 살기 위하여

되돌아와서는


얼마간의 새로운 세계들을 


계속 등 뒤로 보내는 거야


시집 <내가 정말이라면>을 내고 4년이 흘렀습니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나요? 

- 시집을 내고 일 년쯤 뒤에 살고 싶었던 망원동에서 자취를 시작했어요. 그 후로 망원에서 재미있는 친구들을 많이 만났고 이 동네의 자유로움에 푹 빠지게 됐죠. 지금은 시를 쓰면서 도서관 사서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10년 가까이 써왔던 시를 하나로 엮은 시집으로 알고 있어요. 어떤 계기로 시를 쓰게 되었나요?

- 처음에는 문화원에서 시 수업을 들었어요. 시인이 되고 싶어서는 아니었고 그냥 그 세계가 궁금했어요. 그런데 두 번째 수업에서 갑자기 시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거의 홀린 듯 빨려 들어간 거죠.오래전을 되짚어 보면 고등학교 때부터 무언가 쓰고 싶었던 것 같아요. 고등 학교 졸업식 날에는 종이에 뭔가를 끄적여 꼬깃꼬깃 접은 다음에 책상 서랍 깊숙이 끼워 두고 오기도 했어요.(웃음) 내 마지막 책상에 놓고 온 종이가 누군가에게 발견되었을지 휴지통에 버려졌을진 모르겠지만요. 


이 시집이 모두의 처음이 담긴 첫 시집이라고 들었어요. 표지에 있는 문양으로 타투도 남겼다고요.

- 시집이 나오기 전부터 상징적인 무엇인가를 몸에 새기고 싶었어요. 책을 내면서 특별하고 의미 있는 일을 벌여봐도 재미있을 것 같더라고요. 마침 표지를 부탁드렸던 분이 타투이스트셨거든요. 그래서 팔에 책 표지의 문양을 그대로 남겼죠. 


받침 하나 없는 필명이 굉장히 동그랗고 말랑하게 느껴져요. 필명 유이우는 어떻게 지어졌고 무슨 의미가 담겨 있는지 궁금해요.

- 투고할 때마다 다른 이름을 썼어요. 유이우라는 이름으로 출품했을 때 등단하게 되어서 운명처럼 받아들였죠. 우유를 좋아해서 그. 단어를 거꾸로 한. 다음에, 중간에 어울리는 모양과 음의 ‘이’를 끼워 넣어 유이우가 되었어요. 그런데 등단 후에 왠지 의미를 담으면 좋을 것 같아서 한자를 더했고요. 제가 날아다니는 형상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깃 우(羽)로 골랐습니다. 



흔들개비

유이우


초등생의 감각


사방으로 즐거움


나는 서러운 기류를 타고

죽은 비행기


자동문 열리듯

쏟아지는 공기 속에서

파격이 저물어


나는 그냥 양철공

쓸모없는 금철 쇠붙이


실수한 것 같았지만

그것을 자꾸 출발해야 할 때


나는 초등학생

나는 땅

숨을 수도 없고


나는 자라지 않는


<흔들개비>라는 시를 특히 좋아한다고 말씀하셨어요. 

- 어른과 아이의 중간 자아로 쓴 <흔들개비>는 요즘 제 고민을 담고 있어요. 전 어른이 되는 게 싫은데, 그렇다고 마냥 아이처럼 살  없잖아요. 그러다가 ‘아, 코난 같은 애도 있을 수 있지!’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아이처럼, 때로는 어른처럼. 아이의 마음을 잃지 말고 어른도 되지 말자고 다짐했죠. 그래서 도서관에서 저와 함께할 ‘어린이 해방군’도 모집하고 그랬어요. 


어린이 해방군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은데요. 

- 어린이가 어린이답게 존재하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었어요. 5월 3주 동안 어린이 해방 주간을 만들어서 어린이 해방군을 모집했죠. 어른에게서 해방되고 올바른 어린이가 되는 방법에 대해 열띤 회의를 했어요. 제가 일하는 곳이 음악이 나오는 도서관이라 해방군들과 함께 하는 내내 행진곡도 틀어 놓았습니다.(웃음) 


시인님의 시는 굉장히 독특하고 낯설지만 따뜻합니다. 전혀 다른 결의 시어가 예상치 못하게 튀어나오고, 세상이 날것으로 진열된 것 같기도 해요.

- 날것의 느낌이 나는 이유는 스스로를 가공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아요. 가식과 워낙 거리가 먼 성격이라 그게 글에 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듯합니다. 


이러한 시를 쓸 때의 루틴이 있나요? 

- 방식이라고 할 것이 없는 게 제 방식이에요. 어떤 걸 써야겠다 생각하지 않고 그냥 앉아서 쓰기 시작해요. 한 번도 제목이나 주제를 정해두고 쓴 적이 없어요. 이 시가 가고자 하는 방향은 마지막 줄을 끝맺고 찬찬히 둘러보면서 알게 돼요. 시가 알아서 그에 맞는 시어들을 가져오거든요. 저조차도 무엇을 쓸지 모르는 채 손끝이 가는 대로 내버려 두죠. 


그렇게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글이 완성되는 거군요.

- 정해진 방식은 없지만 저만의 기준이 있다면 통제하지 않는 것 하나뿐이에요. 그래서인지 활자 안에서 완전히 자유롭다는 느낌을 받아요.


그 자유로움이 묻어나는 것인지 유독 여백이 두드러지는 시가 많습니다. 빈 곳을 많이 남겨두는 이유가 따로 있나요?

- 그냥 제 손이 여백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손이 가고 싶은 대로 두다 보니 툭툭 내던져진 시어들 사이에 여백이 만들어지고, 리듬이 자연스럽게 생겨나요.



시인의 말

버드나무를 좋아한다. 그렇지만 나는 아무리 손을 뻗어도 그 흔들림을 다 만져볼 수가 없다. 만지는 것은 그에게 실례가 될 것이다. 손이 닿으면 나무는 멈추게 된다. 시가 시에게 가도록 사람이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가 시에게 가도록 사람이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시인의 말에 남겼어요. 이 문장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 사람이 시 사이에 끼어들어 정의하지 않았으면 해요. 저작자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인간이 시를 좀 내버려 뒀으면 좋겠어요. 문장을 따라가며 갖게 되는 각자의 답이 있고 그 답은 다 다르거든요. 누군가는 시가 어렵다고 말하곤 하잖아요. 그건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그저 취향에 맞냐 안 맞냐의 차이예요. 어려운 게 아니라 나에게 맞지 않는 시인 거죠. 


<비행>에는 “나무가 비키지 않으면 세상이 나무를 돌아간다”라는 구절이 있죠. 시인님을 바라보다 보면 우뚝 선 나무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세상과 시를 바라보는 방식이 굉장히 확고하다는 느낌도 받고요. 시를 대할 때 꼭 지키고자 하는 것이 있나요? 

- 예전에 아는 분이 저한테 비슷한 말을 했어요. ‘어린 왕자’처럼 자기만의 별에 혼자 서 있는 것 같다고요. 혼자이니까 자유로워진 게 아닐까 생각해요. 그 반대인가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시가 그 시인의 세계 속에서 자유롭게 존재하는가를 먼저 감각하게 돼요. 억지로 써진 글들은 한두 줄만 봐도 알아채거든요. 


시에 관해 하나 더 질문하고 싶어요. 다른 작품들과 다르게 <오래전의 기린>만 연작시 형식이에요. 이 시의 기린이 유독 본인 같다고 하셨는데, 기린에는 시인님의 어떤 면이 담겨 있는 걸까요? 

- 처음엔 저인 걸 몰랐어요. 그런데 시집을 묶어갈 때쯤 한 친구가 읽어보더니 “이 기린 너무 너 같다.”라고 하더라고요. 깨닫고 나니 소름이 끼쳤어요. 그런데 이유를 되묻지는 않았어요. 그냥 정말로 그 기린이 저였거든요. 연작 시가 총 4편인데, 제 삶에서 3편 중반까지는 진행되었고 세 번째 시의 후반과 네 번째 이야기가 남았어요. 마지막에 기린은 자신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달려가다 결국 사라져 버리거든요. 그렇다면 나는 이제 어디로 가는 걸까 조금 무섭기도 해요.


나도 모르게 내가 오롯이 담긴다는 건 신기하면서 묘하기도 하네요. 그렇게 현재의 자신과 순간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면 시에 비치는 나와 내 주변 풍경도 달라질 것 같은데요.

- 예전에 쓴 글을 보면 지금보다 훨씬 예민했다는 게 느껴져요. 어렸을 때를 생각하면 편안한 의자에 앉아 있어도 불안했던 것 같아요. 제 시 속에도 “사방으로 허파”라는 표현이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달라요. 날카로웠던 부분은 많이 뭉툭해졌고 예전보다 날것의 문장이 많이 줄었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무뎌진 거죠. 


무엇이 유이우 시인님을 쓰게 하나요? 

- 바쁘게 사느라 펜을 놓을 때가 있었는데 모든 게 잘되어 가고 있어도 어쩐지 기쁘지 않았어요. 계속 마음이 허한데 왜 그런가 하고 생각해 보니까 시를 쓴 지 한참 지난 거예요. 그러니까 시인은 쓰지 않으면 잘 살아가지 못하는 종이 아닐까 싶어요. 어떻게 보면 쓰는 건 소리 내서 우는 행위 같아요.슬퍼서 운다는 건 아니고 어떤 동물의 소리 같은 거죠. 늑대가 울듯이요. 


시를 쓰는 행위가 쉼의 그늘과도 같은 의미인 거네요. 

- 제 속에 있던 것들이 어느 날 시에 나타나면 기분이 좋아져요. 시를 써야 살 수 있고, 그렇게 살아서 시를 쓰는 거죠. 


시의 여백에 자신을 끼워 넣어 위로를 얻거나 그 여백을 그늘 삼아 쉬어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앞으로 유이우님의 시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닿기를 바라나요?

- 시가 닿고 싶은 곳으로 가길 바라요. 그건 제 선택권이 없습니다. 쓰는 방식이란 건 끝까지 없을 것 같아요. 나답게 살아가다 보면 나다운 시가 계속 나올 거로 생각하거든요. 스스로 솔직하지 못하다면 삐뚤어지겠죠. 내 가 온전히 유이우로 존재한다면 시는 언제나 그대로이지 않을까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유이우를 나무로 표현한다면 무슨 나무일까요? 그리고 어떤 그늘이 그 밑으로 펼쳐질까요. 

- 자기 별에 혼자 서 있는 나무요. 가끔 우주의 다른 별이 제 뒤쪽으로 지나가고요. 조금 외롭지만 다른 별이 지나가면 반갑게 인사할 수 있는 그런 나무요. 그 밑으로는 ‘날아다니는 그늘’이 날아다닐 거예요. 나무는 그대로 서 있어도 그늘은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있을 것 같거든요. 저는 그 그늘 속에 들어오고 나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지 않을까요? 


나다움에는 여러 가지가 개입되어 있을지 모른다. 나와 타인의 시선이 적당히 버무려져 만들어진 걸 수도 있겠다. 우리는 상황에 따라 투명도를 조절해 자신을 꺼내 놓는다. 불투명하게 서로를 마주하는 세상에서 더욱 귀해진 투명한 사람.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어떤 순간에도 자신이 되기 위해 애쓰는 그의 노력이 고스란히 시에 담겼다. 


단단한 나무 같은 그의 그늘엔 무엇이 들어와 머물게 될까 생각해 본다. 유이우의 흔들리지 않는 흩날림을 응원하면서. 



Editor 박진희

Photographer 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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