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라면 외롭지 않아

디태치먼트

by 끄적

디태치먼트

모든 관계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그리고 그 끝은 언제나 받아들이기 힘들고 영원히 오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이다. 관계가 깊을수록 끝은 더 아프게 느껴진다. 관계를 맺음에 있어 중요한 것은 시작이 아니라 끝을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Detachment[분리]의 반대말은 Attachment[애착]이다. 둘은 서로 반대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둘은 떨어질 수 없다. 모든 애착에는 분리가 있다. 또한 모든 분리에는 애착이 있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있는 한 이는 바뀌지 않는다. 사회라는 시스템 안에서 애착과 분리는 물리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일어난다. 장소의 이동에 의해 물리적으로 분리가 일어나기도 하고 마음의 이동에 의해 사회적으로 분리가 일어나기도 한다. 그리고 이동한 자신은 새로운 사람들과 애착을 형성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정상적일 때 이루어지는 일이다. 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애착을 형성하지 못한다면 이는 앞으로의 관계맺음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이 리뷰는 영화 <디태치먼트>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분리는 급작스럽게 찾아온다. 하물며 그것이 예정된 것이라 해도 혹은 예측 가능했던 것이라 해도 애착관계가 남아있는 한 분리는 무의식 속에서 인정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분리는 힘들고 아프다. 분리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너무나도 큰 분리를 겪는다면 자연스레 앞으로의 분리가 두려워지게 된다. 7살 때 어머니를 자살로 떠나보낸 영화의 주인공 '헨리'는 거대한 분리를 겪었다. 그리고 그는 분리가 두려워 더 이상의 관계맺기를 꺼린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는 기간제 교사이다. 끝이 분명하게 주어진 기간제 교사는 수없이 많은 학생을 만나고 수없이 많은 학생에게서 떠난다. '헨리'는 관계맺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헨리와 메리다

물리적인 공유가 애착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시간과 장소의 공유 이상이 필요하다

관계맺기가 두려운 것은 '헨리'뿐만이 아니다. 친구와 부모, 모두에게 분리된 '메리다'도 관계맺기가 어렵다. 그녀와 '헨리'의 차이점이라면 '메리다'는 분리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애착이 없는 것이 두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헨리'는 단순한 교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언뜻 보면 '메리다'는 '헨리'를 이성으로서 보지만 그건 이성으로서의 시선이 아니라 애착의 대상으로서의 시선이다.

그러나 '헨리'는 아직 자신이 준비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관계맺기가 두렵다. 또한 단순히 학생으로서 대해준 '메리다'의 애착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물리적으로 '헨리'와 '메리다'는 같은 장소에 있었고 같은 시간을 공유했다. 하지만 '헨리'에게 그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의미였고 둘 사이의 거리는 충분히 벌어져 있었다. '헨리'가 '메리다'를 거부했을 때 그것은 '헨리'에게는 시작하지도 않은 관계의 끝에 대한 선언이었지만 '메리다'에게는 깊은 애착의 종말에 대한 선고였다. 분리에 대한 인식은 그녀에게 상처를 주었고 애착의 끝인 분리의 두려움을 넘어 물리적인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주었다. 이제 그녀는 이 사회 어느 곳에도 맞지 않는다. 그 누구도 그녀와는 분리되어야 한다. '메리다'는 그렇게 자신만의 결론을 확신한다.

'헨리'가 그런 결말을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다. 그렇기 때문일까 그는 벌어진 일을 누구보다도 빠르게 인식하고 행동한다. 그날 그의 행동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메리다'에 대한 애착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움직인 것이었을까. 어찌되었건 그는 자신이 역겹다. 영화의 마지막에 그가 읊조리듯이 "그건 구역질나는 마음의 냉정함이었다."



헨리와 에리카

분리는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헨리'는 분리를 경험하는 것이 두렵다. 그럼에도 애착이 필요한 상대를 지나치기 어렵다. '헨리'는 길거리 소녀 '에리카'와 관계맺는 것이 두렵지만 그럼에도 지나칠 수 없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모를 '에리카'의 문제가 그는 너무 슬프다. '헨리'는 분리가 두렵지만 '에리카'는 애착이 어렵다. 무엇이 애착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녀는 너무 오래 전에 잊어버렸다. 그렇기에 '헨리'를 대하기 어렵고 고마움을 표현하기 힘들다.

'에리카'에게 있어 '헨리'는 메시아다. 끝없는 어둠으로 찬 의미없는 삶의 구원자이다. 자신을 걱정해주고 하나의 인격체로 대해주는,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이다. 하지만 '헨리'는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그녀의 애착을 받아들일 수 없다. 자신은 한참 부족하고 나약하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이다. 분리가 두려워 관계맺지 못하는 겁쟁이일 뿐이다. 그는 아직 그녀를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는 지속적으로 '에리카'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계속 자신의 집에서 지낼 수 없다고. 하지만 분리는 몇번이고 말해준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에리카'에게 있어 분리는 급작스러웠다. 몇번이고 통보받았지만 그건 다른 문제였다.

그러나 몇번이고 말했기 때문일까, '에리카'는 '메리다'와 달랐다. 그녀는 우울해지지도 않았고 인생을 포기하지도 않았으며 '헨리'를 잊지도 않았다. 그녀에게 분리는 하나의 기억으로 남았다. '헨리'에게 있어 그녀는 관계맺기에 있어 중요한 첫걸음이다.



헨리와 학교

때로는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고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헨리'는 다른 교사와 다르다. 그는 분리와 애착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이 문제임을 안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교사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교사가 나쁜 교사가 되는 건 아니다. 그들은 신이 아니다. 교사는 학생과 동일한 사람이다. 어느 하나 다를 것 없다. 영화는 이를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학생들의 문제는 교사에 있지 않다. 그건 교사가 바꿀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다. 그리고 교사 또한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이다.

'헨리'가 아무리 노력한들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는 어디까지나 기간제 교사이고 어디까지나 불완전한 사람일 뿐이다. 문제는 너무 크고 복잡해서 쉽게 풀어낼 수 없다. 어느 한 사람의 문제라고도 집어 말하기 힘들다. 분리와 애착의 문제는 그리고 분리로 기인한 문제는 이미 그의 손을 떠났다. '메리다'의 표현처럼 그는 빈 교실의 얼굴없는 남자에 지나지 않는다.



헨리와 관객

해결할 수 없음에도 바라보아야 할 문제들이 있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이 문제는 어려운 문제다. 누구의 책임인지도 모르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문제는 반드시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나 관계맺기가 그러하듯 단순히 영화에서 읊어준다고 문제에 애착이 생기는 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헨리'는 영화가 제대로 이야기하기 전에 이렇게 말한다. "여기 없어도 되는 사람들은 전부 나갈 수 없나요?" 마치 관객에게 이 문제에 관심이 없다면 나가라고 하는 듯이.




Comment

'귀찮다'는 변명 아래 사실은 관계맺기가 두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문제는 당면해야 한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사회의 일원이니까. 관계없는 사회는 차디찬 얼음과도 같이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과도 같이 삭막한 외로움일 뿐이다.

부모가 되기 전에 봐야 할 영화. 혹은 자신의 문제를 바라보기 위해 봐야 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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