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게 두려워 죽음을 반긴다

쇼생크 탈출

by 끄적

쇼생크 탈출

위 사진의 할아버지는 주인공이 아니다. 저 할아버지는 우리다. 목적을 잃고 수단에 빠져 시간의 흐름을 받아들이기 무서워하는, 그런 겁쟁이. 내가 본 모든 한국 사람은 두 가지 중 하나였다. 변화에 묻히거나 변화에 쫓기거나.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변화하지 않으려면 더욱 변화해야 한다.

rsz_tree-roots-cross-section-aaron-escobar-cc20.jpeg 모든 뿌리가 바위를 부수는 것은 아니다.

<쇼생크 탈출>은 다양한 주제를 담고있다. 그러나 그 모든 주제는 '탈출'이란 씨앗에서 출발한 뿌리들로 '감옥'이란 바위를 부수는 부수적인 역할을 할 뿐이다. 허나 그 중심은 '탈출'이란 행동이 아니다. 핵심은 '어디서' 탈출하는가다.



이 리뷰는 영화 <쇼생크 탈출>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출아 - 시작은 선택할 수 없다.

원치 않은 채 태어난 인생이나 원치 않은 채 받은 종신형이나 뭐가 다른가?

태어나는 것은 나의 선택이 아니다. 철저히 외부의 선택에 맡겨져 태어날 뿐이다. '앤디'는 바람난 아내와 정부를 살해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그는 무죄를 주장하지만 재판의 결과는 그가 선택할 수 없다. 그가 실제로 죽였던 죽이지 않았던 그가 교도소에 들어갔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안주 - 고난과도 같은 상황에도 즐거움은 있다.

maxresdefault.jpeg 지금 내 상황에서 맥주 한 병 마실 수 있는 거면 성공한 거 아닌가?

아무리 힘든 삶도 소소한 행복은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이 당신이 정말 원한 것인가? 그저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은 아닌가? '앤디'는 교도소 안에서 충분히 행복하다. 교도소 내의 위치도 나쁘지 않고 은행원이라는 이전 직업을 활용해 교도소장에게 여러 혜택을 받고 있으며 노동 중간중간 맥주를 마실 수 있을 정도로 죄수치고 풍요롭다. 그 순간만큼은 '앤디'는 자유롭다. 정말 그런가?



자각 - 나는 누구인가.

20160715162443.jpeg 당신은 변화의 파도에 맞추어 배를 띄울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앤디'는 아내의 죽음을 목격한 듯한 '토미'를 만난다. '앤디'는 '토미'를 증인으로 하여 다시 재판을 받기 위해 교도소장에게 말하지만 교도소장은 거짓 누명을 씌워 '토미'를 탈옥 혐의로 살해한다. '앤디'는 깨닫는다. 새로운 세계로 나가려면 스스로 알을 깨야한다. 나는 누구인가. 성실한 수감자인가. 아니면 억울한 수감자인가. 자신을 진정으로 구원할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다.



용혈 - 버티지 못한다면 터질 수 밖에.

Shawshank-brooks-hang.jpg 브룩스는 자신이 만든 감옥을 나가기 위해 자신을 죽였다.

썸네일의 할아버지를 기억하는가? '브룩스'는 50년간 복역한 죄수이다. 그는 출소가 두렵다. 어찌나 두려운지 감옥에 계속 있기 위해 재소자의 목에 칼을 겨눈다. 그래도 변화는 피할 수 없다. 출소한 그는 세상에 융화될 수 없다. 그는 변화를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겁이 많고 시도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다. 그에게 집은 감옥이다. 변화를 피한 자신 스스로가 자신을 가둔 것이다. 당신은 어떤가? '브룩스'와 크게 다른가? 변화가 두려워 스스로 감옥을 만들고 재소자가 되어있진 않은가? '앤디'가 그토록 원하던 탈출을 '브룩스'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얻었지만 타인에 의해 주어진 자유는 탈출이 아니라 추방일 뿐이다.



암약 - 변화는 조용히. 그러나 과격히.

a7c18cec9220d4a3a7b36a0312ea54b4.jpeg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해내지 못했다는 사실은 간단한 일조차 엄청나게 힘든 초인적인 일로 바꾸어버린다.

묵묵히, 16년만에 '앤디'는 자신을 가둔 세계를 탈출한다. 그는 자신이 주도하는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 떠났다. 그러나 교도소장, 교도관, 심지어는 그와 가장 친한 재소자까지, 탈출의 기미를 전혀 알지 못했다. 그들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앤디'의 결과물일 뿐이다. 구멍은 '앤디'에게는 16년간의 노력으로 이룩한 것이지만 그들에게는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다. 구멍이 성경보다도 작은 망치 하나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그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 '앤디'의 과정을 겪어보지 않았기에 그들은 상상할 수 없고 시도할 수 없다. 꾸준한 노력을 바탕으로 한 '앤디'의 탈출은 재소자들에게 용기가 아닌 좌절을 안길 뿐이다.



분골 - No pain, No gain.

부수거나, 부수어지거나.

바닷가재는 수명이 굉장히 긴 탓에 수명의 상한선이 알려져 있지 않다. 바닷가재는 죽을 때까지 탈피를 거듭하며 성장하고 나이를 먹을수록 힘도 세지고 껍데기도 더 단단해진다. 그럼에도 바닷가재가 죽는 이유는 껍데기가 더욱 단단해졌기 때문이다. 매년 10~15%의 바닷가재가 탈피 도중 지쳐 죽는다. 탈피를 포기한 바닷가재는 외피가 낡고 망가지면서 각종 오염으로 인한 질병으로 죽는다. 너무나도 단단하기에 껍데기는 바닷가재를 보호하다 못해 가두어버렸다.

구멍의 완성으로 '앤디'의 탈출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그는 이후 오물을 운반하는 수백미터의 하수구를 기어가서야 탈출할 수 있었다. 변화는 고통을 수반한다. 고통 없는 변화는 없다.



쇄신 - Redemption.

15pQ-XuXAHMBw1JyMMpYgNQ.jpg 다시 태어날 준비가 되었는가.

'레드'는 앞선 두 번의 가석방 심사에서 떨어졌다. 면접관이 원하는 모든 말을 했지만 그에게 돌아온 건 부적합 판정 뿐이었다. 세 번째 심사에서 그는 더 이상 면접관을 위해 입을 놀리지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말들을 쏟아내고는 부적합 판정을 기다리지만 그는 드디어 가석방 심사를 통과한다. 끓는 물은 수증기로 인해 앞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한번 끓고 식은 물은 맑기만 하다. 과한 갈망은 때론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 식어버린 갈망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투명하게 비춘다. 그것은 자신이 선택한 세상, 자신에 의한 세상을 마주하는 구원, Redemption이다.



출아 - 자신이 선택한 시작.

shawshank-end1.png 알을 깨고 껍질을 벗은 구원의 끝에서.

누가 그랬는가?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고. 자신이 어디서 도망치는지, 뭘 원하는지 모르는데 낙원이 어떻게 존재하겠는가. 당신을 구원으로 이끌 변화를 위해선 자기 자신을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목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희망. 당신은 변화할 용기가 있는가?



Comment

<쇼생크 탈출>의 영어 제목은 <Shawshank Redemption>이다. 번역이 조금 아쉽다.

잔잔하면서도 역동적이고 화나면서도 즐겁고 슬프면서도 기쁜, 언제나 어울리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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