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다시 가까워지기
어렸을 때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엄마, 아빠는 주말이면 내 손을 잡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엄마, 아빠가 매주 도서관에 데려가서 책이 좋아진 건지, 내가 책을 좋아해서 엄마, 아빠가 도서관에 계속 데려간 건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 인과관계가 어찌 됐든 간에 엄마가 '책 좀 그만 읽어라'라고 하셨을 정도로 좋아했던 것만큼은 기억이 난다.
글 읽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글 쓰는 것도 좋아했다. 중고등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백일장에서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장원 상을 받아올 만큼 나는 글쓰기에 제법 소질이 있는 학생이었다. 글을 쓰는 것이 재밌고, 사람들이 읽어주는 것이 좋았다. 그때의 내가 생각한 최고로 멋진 직업은 작가였다. 무슨 글을 쓸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도 없으면서 내 생활기록부 장래 희망 칸에는 작가가 자리하고 있었다.
작은할아버지는 시집과 수필집을 여러 권 낸 문인이셨다. 뭘 쓸진 모르겠어도 훗날 뭔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나에게 작은할아버지는 친척 중 가장 멋있는 어른이었다. 나는 작은할아버지의 시집을 읽으며 감탄했고, 수필집을 읽으며 가까워진 기분을 느꼈다. 이런 멋진 글을 쓴 작은할아버지는 훌륭한 어른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며 작은할아버지에게 실망하는 일이 종종 생겼다. 내가 작은할아버지를 너무 우상화했기 때문이다. 책에서 보고 느낀 작은할아버지의 모습과 실제 모습을 비교하며, 상상했던 모습과 다르면 실망했다. 어리고 미성숙했던 나는 글과 작가를 지나치게 동일시했고 한 발짝 떨어져서 보는 법을 몰랐다. 내 상상 속의 인물을 작은할아버지라고 믿으며 모든 면에서 성숙한 본보기가 되어줄 것이라 기대했다. 사람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줄 몰랐던 나는 쉽게 사람을 평면적으로 판단하곤 했다.
커가면서 나는 독서와 글쓰기 모두와 멀어졌다. 어느 순간부터 글 쓰는 것이 즐거움이 아닌 부담으로 다가왔다. 무언가 쓰기 겁이 났다. 못 쓴 글일까 봐. 또 글 속의 나는 실제 나의 모습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일 때가 많았다. 글쓰기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잘 다듬어 정제된 형태로 보여주는 것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지만 어쩐지 내가 포장되는 기분이 불편했다. 역설적으로 나를 지나치게 드러내는 행위기도 했다. 불가능에 가까운 진실성을 추구하면서, 남들이 내 글을 읽는 것이 내 심연으로 파고드는 것 같아 부끄럽게 느껴졌다. 이런 감정들로부터 회피하기 위해 나는 순수하게 좋아서 쓰는 글을 그만두었다.
오랫동안 내 마음속엔 이유 모를 불안감이 자리를 잡았다. 꼭 해야 하는 일을 외면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함의 원인을 명확히 규정할 순 없었지만 해답을 찾고 싶었다. 결국 생각해 낸 결론은 '나는 뭐라도 써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글쓰기는 내 마음속에 있는 화두를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차분히 들여다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스스로를 돌보는 치유의 시간이기도 했다. 당장의 부정적인 감정을 회피하자고 나는 진짜 중요한 것을 잊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글 속의 나와 실제 나의 모습에 차이가 좀 있을지라도 그건 모두 나의 단면이다. 지금의 나는 더 이상 어릴 적 작은할아버지를 바라봤을 때와 같은 우를 범하지 않는다. 나는 도식이 단선적인 이야기가 싫다. 착한 사람은 사랑도 착하게, 정치도 착하게, 세상도 착하게 사는 그런 얘기. 내 안에 나는 너무 많으니까. 나는 착한 여자친구지만 못된 딸일 수도 있을 것이고, 괜찮은 선배면서 동시에 별로인 후배일 때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나는 톨스토이도 아니고, 도스토옙스키도 아니다. 얼마든지 못 써도 된다. 이런 생각으로 브런치를 시작했다. 올해 나의 버킷리스트를 적을 때, 1번으로 작성했던 항목이 브런치 채널 개설하기였다. 내 마음속에서 정리되지 못한 채 방치되었던 화두를 차근차근 풀어나갈 수 있는 공간을 스스로 만들어 주자는 마음이었다. 내 SNS 채널 중 가장 나다울 수 있는 공간이자, 멀어졌던 글쓰기와 다시 가까워질 계기. 앞으로 이 소중한 공간에 나의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여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