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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류 May 27. 2023

날마다 여행 중입니다.

부부..... 세요?

"두 분, 부부....세요?"

대뜸 그녀가 돌직구로 물었다.

여고동창이라는 그녀들의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 여덟 개가 우리를 향하고 있었다.

나는 안다

사실은 그녀들이  "두 분 부부 아니시죠?"라고 묻고 싶었을 것이라는 것을...

"아.. 그게 왜 궁금한가요?"

"사실은..... 저희들이 내기를 했거든요..."

"아, 그렇군요. 음... 저희는 그냥 연인이에요"

정확히 육 년 전 오월의 일이다.




오월의 찬란한 봄볕에 새부리같이 연약한 연두색 새싹을 틔우는 자작나무가 보고 싶어서,

비틀즈 노래한 노르웨이 숲의 부지런한 야생화들이 보고 싶어서,

그 울창한 노르웨이 숲에 어쩌면 살고 있을지도 모를 숲의 정령들이 보고 싶어서

떠났던 노르웨이 여행에서였다.

오월임에도 노르웨이의 숲은 아직 두꺼운 솜이불을 덮고 잠들어 있었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눈장화를 신은 늘씬한 자작나무는 손가락 한 마디 가지 밖으로 내놓지 않은 채 수면 중이었다.

거친 바람이 가지를 건들 때마다 화들짝 놀라

쫘르르 쫘르르 얕은 코를 골면서...




그 여행은 동행 없이 오롯이 남편과 둘이서 간 패키지여행이었다.

팀은 18명으로 대부분이 부부로 보이는 사람들로 구성되었고,

물론 어쨌든 우리도 부부로 보이는 사람들이다.

일행 중 유일하게 여성 4인조가 있었는데 카페에서 대뜸 우리에게 부부냐고 물어본 당돌한(?) 그녀들이다.


우리 부부는 연애 때부터 서로 이름을 부르던 호칭을 지금여전히 사용하고 있고,

스킨십을 좋아하는 남편 덕분에 어디서든 둘이서 손을 잡고 다닌다.

그런 부모를 둔 우리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엄마 아빠가 손을 내주지 않으니 둘이서 손을 잡고 다녀야만 했다.

부부들이 통상적으로 쓰는 여보라든가, 누구 엄마. 이빠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고 **씨라고 부르며 둘이 손을 꼭 잡고 다니니

여러 사람들로부터 불륜인가 하는 의심쩍은 시선을 받는 경우가 빈번하게 있었다.


아주 오래전 우리 부부가 자주 가는 단골식당이 있었다.

서로 가까운 곳에 사무실이 있다 보니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둘이 만나 점심을 먹는데

어느 날 모처럼 초등학생인 두 아이를 데리고 간 적이 있다.


늘 먹던 메뉴를 시켰는데 우리 밥상에 주문 메뉴에 없는 굴비구이와 아이들이 좋아하는 돈가스가 올라왔다.

메뉴가 잘못 온 거 같다는 내 말에 주인아주머니께서 내 손을 꼭 잡으며 대뜸 고맙다고 하신다.

의아해하는 내 눈길에 환하게 웃으시며

"나는 여태껏 두 사람이 불륜이라 생각했는데

오늘 아이들이랑 함께 온 걸 보고 불륜이 아니고 부부인 게 고마워서 애들 먹으라고 해준 거야..."

그동안 그런 내색 드러내지 않고 이 몹쓸 불륜 인간들에게 맛난 밥상을 차려 주시느라 속으로는 얼마나 고단하셨을까.

그랬었다.

어디 그 분만 그리 생각했을까...


그런 부부가 동행 없이 오롯이 둘이서 떠난 여행이었으니 그보다 더했으면 더했으리라.


그 무렵 우리나라 사람들의 여행 옷차림은

누군가 법으로 정해놓은 것처럼 한결같았다.

그때 한창이던 아웃도어 열풍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생활복, 외출복, 레저복 자리를 차지했고,

그것은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비싼 고어텍스 쟈켓에 울긋불긋한 셔츠와 몸에 착달라붙는 스판바지로 완전 착장을 하고 히말리아 산맥을 정복하러 나서는 사람들 같았다.

어디서든 옷차림만으로도 내 동포임을 확인할 수 있던 때였다.


그런 사람들 틈에서  우리 부부의 옷차림은 좀 유별났을 것이다.

고단한 트레킹이 예정된 일정이 아니라면 나는 보통은 걷기에 부담 없는 원피스나 실루엣이 적당히 드러나는

니트에 적당히 여유가 있고 구김에서 자유로운 플레어스커트를 로 입는다.

거기에 보온용으로 심플한 쟈켓과 카디건을 준비하고 가끔은 스카프와 머플러를 이용해 어설픈 멋을 부린다.

남편 또한 그와 비슷하다 보니 일행들의 눈길에 쉽게 잡히고,

거기에 부부답지 않는 애정행각(?)까지 보태졌으니 그녀들이 그리 생각할만했다.


그녀들에게 내가 물었다.

누가 이길 것 같냐고...

그녀가 되묻는다.

연인이 어떤 의미냐고...

연인이란 사전적인 의미대로 서로 사랑하는 관계라고 내가 말한다.


그녀들은

한 친구는 재혼한 신혼부부다.

한 친구는 불륜이다.

그리고 두 친구는 어쨌든 부부는 아니다라며 내기를 했고,

마침 저녁을 먹고 들어가는 길에 카페에 앉아있는 우리 부부를 보고 용기 내어 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들의 질문에 내가 연인이라고 했으니..

그녀들은 누가 이겼다고 생각했을까.


내가 말했다.

내가 생각하는  연인의 정의는 사회가 인정하는  부부라는 통념적인 관계망에 갇혀있지 않다.

재혼 부부일 수도 있고, 불륜일 수도 있고,

부부가 아닌 관계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우리는 연인이고 부부다.

남매를 낳고 그냥저냥 나름 잘 살고 있는...

그러니 당신들의 내기에는 승자가 없을 것 같다.


한 친구가 말한다

"가족끼리 그러면 안 돼요!"

또 한 친구가 말한다

"옷도 그렇게 입으면 안 돼요!"

모두가 박장대소를 하며 웃었다.

내가 유죄구나.

내 몸이 왜소해서 그대들이 입는 아웃도어가 내겐 도통 어울리지 않아서라는 말은 꾹 참았다.


어쨌든,

그렇게 우리는 일행들에게 아주 도덕적인,

의로운 관계를 인정받았다.

그리고 그녀들과의 관계는 지리적인 먼 거리와 상관없이 계속되고 있다.

가끔은 그녀들이 내게로 외서 머물다 가고,

또 가끔은 내가 그녀들에게로 가서 온갖 수다를 떨고 오기도 한다.


오월 초 아직 슬로베니아에 머물고 있는 새벽녘에

'꼰대 꼰대' 소리를 지르며 핸드폰이 부르르 몸을 떨어서 들여다보니 그녀들 중 한 명이다.

"언니, 여행 중이세요?"


덧니: '꼰대'는 내 카톡의 알림음이다.

절대 꼰대는 되지 말라는 스스로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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