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첫 1년을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그렇지 않았겠는가… 어떻게 건넌 현해탄이란 말인가.
공항에서의 내 결심은 비장했다. 많은 이들이 반대하던 길이었기에, 그래서 더욱 오기가 생겼기에, 하지만 마음 한 켠에서는 두려움이 너무 컸기에, 그렇지만 내가 옳다는 것을 멋지게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에…
졸업까지 All ‘A’로 깔 것이다!!!
그랬었다. 난 한국의 고3처럼 공부했다. ‘악으로, 깡으로’의 거의 마지막 세대. ‘학생운동’의 마지막 세대인 나는 바로 그 악과 깡이 있었다.
미국 현지에서 교과서 저자인 교수에게 직접 수업을 들으면서도 교보문고에 번역되어 있는 번역서를 미국으로 다시 공수해 왔다. 책을 양쪽으로 놓고 공부했다. 도통 알아들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강의를 만회하기 위해서 울며 겨자먹기를 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어리석고 헛웃음만 나오는 일이다. 나는 그렇게 성실히 해 왔기 때문에 결국에는 먹힐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공부는 혼자 하는 것이니까!!!’
Eventually it will WORK!!!
그런데 이미 잘 하고 있는 수학 등의 과목은 좋은데, 정신 못 차리고 있는 첫 번째 전공과목(Introduction to Computer Science, CS111)에는 여전히 답이 나오지 않는다. 거기다 수업에서 아예 팀을 꾸려주고 Team Project도 주어졌다.
팀 프로젝트는 수업에서 배운 특정한 알고리즘을 구현하는 것이다. 코딩이라고 해 두자. 어떠한 언어를 써도 무방하다. C든 Java든 상관없다. 하지만 대학에서 그런 언어를 가르쳐 주지는 않는다.
코딩을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정답이 없다.
정답이 없는 것은 나 같은 ‘학력고사 세대’에겐 쥐약이다. 성문종합영어, 수학의 정석으로 길들여진 나 같은 사람은 정답만이 있다. 다른 사고의 확장, 가능성, 오픈, 수용…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정답은 하나다. 이게 지금까지는 확실히 ‘Working’ 했는데 이번에는 도통 먹지를 않는다.
그런데 그 수학과목에서 기초적인 질문을 하던 미국 친구는 이걸 너무 잘 한다. 또한 그 친구들은 고만고만한 친구들이 모여서 공부한다. 도서관에 가 보면 항상 대여섯씩 모여 앉아 계속 떠든다. 계속 물어보고 대답하고 대화를 했다가 debate를 했다가…
‘저래 가지고 공부가 될까…정리가 될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난 미국의 대학에서 한국의 고3 스타일로 공부했다. 팀을 이루어 공부하는 team mate도 없었고, 아는 것만 더 잘 알고 모르는 것은 창의적으로 문제해결이 잘 되지 않고, 지식은 확장되지 않으며, 대화와 타협보다는 편향되고…
그렇게 난 수학과목에서 A를 받았지만, 가장 중요한 첫 전공과목에서 어이없게 낙제(F)를 했다.
그 1년은 너무 힘들었다. 대인기피증에 우울감까지 찾아왔다. 미국은 대학에 들어오기는 쉽고 나가기는 어렵다더니 과연 헐렁하지는 않았다.
무력감, 우울감으로 인해 대부분의 외로운 유학생들처럼 한국에서는 보지도 않던 ‘강호동의 천생연분’ 따위의 프로그램을 한국 비디오 가게 가서 돈 주고 빌려와서 킥킥대거나, 한국인 대학원생들과 어울려 한국사람들끼리 늦게까지 소주잔을 기울이곤 했다.
대학원생들 역시 학부생들과 달리 본인의 lab에서 거의 하루 종일 쳐 박혀 research 하는 정도이라 미국 문화에 스며들기는 여전히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미국에서 대학 다니며 그들끼리 모여서 영어 공부를 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다.
아… 그 겨울 함박눈이 내리던 그 날이 기억이 난다.
난 진한 아메리카노 커피를 한 잔 들고 창밖의 눈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아… 지금 뭐하는 play인가… 뭐가 문제지?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지?’
마음이 심란하다. 친한 친구 하나 불러서 bar에 가서 맥주나 한 잔 하고 싶다. 누구한테 연락하지?
음…
그리고 나는 두 가지를 깨닫게 된다.
‘마음 터 놓고 이야기할 미국 친구가 한 명도 없네…
그리고
이 놈이 영어는 지지리도 하나도 안 늘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