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 4. GENIUS에서 FOOL로

by 미생팀장


그래, 그랬다. 내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고, ‘나’라는 탐구의 시작도 그때부터였다.

사실 일부러 이상하게 살려고 한 건 아니었다.


세 가지 유학의 길

한국에서 미국으로 유학을 오는 경로는 대략 세 가지다.


첫째, 같은 전공으로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 석사나 박사, 혹은 통합과정으로 오는 가장 일반적인 케이스다.

둘째, 한국에서 대학을 마치지 않고 편입하는 경우. 사람들은 내가 전과했다고 하면 편입이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다른 경우다.

셋째, 그럼 나는? Second Bachelor Degree. 미국 가서 처음 들었던 이 단어는 문자 그대로 ‘두 번째 학사 학위’를 뜻한다. 한국에서 이미 대학을 졸업하고 학사 학위를 가지고 와서, 다시 학부생으로 시작하는 경우. 다소 희귀한 케이스다.


한국에서 전공했던 교육학 과목들은 전공이 바뀌면서 교양과목으로 인정받았고, 덕분에 교양 이수학점이 넘쳐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반면 공대에 들어간 나는 선수과목을 이수해야 했다. 물리학, 미적분, 선형대수 같은 과목들. 그리고 이곳은 학부였다. 대학원처럼 연구만 하는 게 아니라, 한국에서 교양국어를 했던 것처럼 영어 작문도 필수였다.

최고 단계인 Expository Writing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최종본을 제출하기까지 20번 정도 수정하는 건 기본이었고, 지도교수의 빨간펜은 한 페이지도 살려주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그때 비로소 영어 글쓰기를 배웠다.



갑자기 천재가 된 사람

수학과 물리학 시간. 비록 문과 출신이지만, 한국의 ‘수학의 정석’으로 무장한 대한민국 학생이 미국 대학생들보다 못할 리 없지 않은가.


초반에는 고전했다. 용어 때문이었다. 빗변, 이등변삼각형, 지름, 반지름, 타원… 모든 용어가 영어로 날아다니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하지만 몇 달 후 용어에 익숙해지자, 내용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한국에서 대학 갈 정도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한 학기에 세 번 보는 큰 시험. 학생들 평균 점수는 45점, 38점, 43점.

내 점수는? 99점, 98점, 100점.


사람들은 나를 이렇게 불렀다.


“You are such a GENIUS, man!!!”


이해할 수 없었다.

미국 대학생들은 정말 공부할 사람만 진학한다고 들었고, 학구열이 높고 똑똑한 친구들이 많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의 모습은 달랐다. 근의 공식이 왜 그런지 묻고, a와 b의 위치를 헷갈려하고, 시험에는 공학용 계산기를 두드려대며, 컨닝페이퍼 한 장씩 들고 왔다.


더 놀라운 건, 한국 같았으면 혼났을 기초적인 질문들에 교수가 매우 진지하게 답변해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뒤에 앉아 이 광경을 보며 헛웃음만 나왔다.

시험을 앞두고는 교수가 컨닝페이퍼(Cheat Sheet) 제작 가이드까지 설명했다. 어느 공식을 넣고, 1장을 넘기지 말라고.


아시아, 특히 한중일이 수학을 잘하는 게 아니라, 이 친구들이 수학에 익숙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기본 공식조차 외우지 못하고 시험 전날 이게 a인지 b인지 묻는데, 어떻게 점수를 받을 수 있을까.


나중에 교수는 내 점수를 보고 제안했다.


“Hey Chang, what do you study?”

“Computer Science.”

“Why don’t you study with me?”


대학원에 와서 함께 수학 연구를 하자는 제안이었다.


주변이 사람을 만든다더니, 나는 이때부터 진짜 천재인 줄 알았다. 그런데 한쪽 마음 구석이 자꾸 불안했다.



공포의 강당

이제 첫 번째 전공과목인 ‘Introduction to Computer Science’ 강의실로 가보자.


오늘도 불안하다. 첫 전공 과목이자 공통 필수라 학생이 많다. 강당에는 대략 200여 명이 앉아 있다. 교수는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한국에서 자격증으로 나름 무장했지만, 전공과목은 쉽지 않다. 수학 시간의 내 모습이 나오지 않는다.

교수의 말을 거의 알아들을 수 없다. 왜일까? 내용이 어려워서? 아니, 더 심각한 문제다.


‘안 들린다. 영어가 안 들린다.’


중학교 때부터 10년간 공부했고, 가장 자신 있었던 과목이 영어였다. 그런데 안 들린다. 정말로, 전혀 들리지 않는다.


큰일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변수였다. 한국에서 토플 시험을 볼 때 600점을 넘겼다. 만점이 650점 수준인 페이퍼 테스트에서 600점이면, 토익으로 치면 900점은 가볍게 넘는 점수다. 그런 내가.


그런데 아무것도 안 들린다.



무너지는 순간

어느 월요일 아침이었다. 강당에 외톨이처럼 앉아 있는데, 수업 시작 5분 전 교수가 입장했다. 그런데 학생들이 모두 일어나 앞으로 우르르 나가 종이를 제출하고 있다.


이게 무슨 상황일까.

옆 사람에게 수줍게 물었다.


“Excuse me, what is this all about?”

“What thing?”

“People down there…”

“Assignment, man! You missed it, didn’t you?”


나는 assignment가 숙제인 줄 몰랐다. Homework만 숙제인 줄 알았다.

그 강당은 나를 계속 공포로 몰아갔다.


수학 시간에 ‘이런 기초적인 것을 질문하다니, 저러니까 점수가 안 나오지’라고 생각했던 미국 학생이 있었다. 그 친구도 컴퓨터공학 전공인 모양이었다. 강당 저편에서 손을 들고 질문하는 그를 여러 번 보게 됐다.


그런데 말이다.


그 친구의 질문이 매우 흥미롭고, 창의적이고, 통찰력 있었다.

멘붕이 왔다. 저 친구의 정체는 뭐지? 그리고 나는 뭐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저 친구들이 나를 가지고 노는 건가? 나는 트루먼 쇼의 트루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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