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년 10월 26일 편지
낙엽은 땅 위에 버림받은 나그네 19
oo
낙엽은 땅 위에 버림받은 나그네
발길이 밟힐 때면 낙엽은 영혼처럼 흐느끼고
해질녘 낙엽 모습은 쓸쓸하구나
ㅇ 안— 녕
이번 편지 받고 좀 충격이라고나 할까?
지금까지의 편지와는 정말, 뜻밖의 또 다른 너를 발견하게 된 것 같애.
지난번 편지 너무 재미 있었어
그 편지를 재미있었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밉도록 말야,
그런데 이번 편지는 글에 무어라고 말을 해야 할까
이건 나와 친한 몇몇 아이들의 견해인데
-펜팔에 대하여- 주제로 한다면
윗 내용을 종합분석해 본 결과 “ 펜팔은 장난에 불과해”
특히 상대가 남자라면 남자 편에선...... 이라고 여러 친구들이 말을 한 적이 있어.
이 말을 듣고 의기소침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
물론 처음엔 나도 장난이었는지 몰라 (호기심에서 말야)
하여 너의 이번 편지를 받고 조금은 진지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내 생각이 오산일까?
그리고 너의 학교 미전에 초청은 정말 고마워
꼭 가고 싶어 특히 네가 심력을 다한 미전은 말야
나의 역사의 page로 장식할 이 커다란 영광을 ㅇ가 주었는데
갈 수 없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야.
하지만 11월 중순이면 29일은 학력고사를 보게 되고
12월에 학기말 고사가 있으니 매우 바쁜 생활을 하게 될 것 같애.
너는 더욱 그렇겠지만
그리고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는 아니 그럴 수가 없다는 이 말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구나.
하지만 내가 비록 멀리는 있지만 항상 기도할 께!
-너를 위해-
이건 내 느낌일 뿐이지만 읽어주렴
어쩜 너와 아주 친해질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 너와 나를 위하여 - 안 – 녕 -
79 10 26
hj 이가 --
PS 다음 주 월요일에 10월 말 고사가 있어.
편지는 시험이 끝나면 그때 할려고 했는데
0이는 굉장히 가을을 느끼는 것 같애 ( 사추기에 접어든 걸까?)
그리고 걱정해 주어서 고마워. 덕분에 감기는 다 나았어
굉장히 고생을 했지만 너도 조심하길
게으름이란 끝이 없는 것 ( 나의 개변(똥) 철학)
참, 나의 귀빠진 날은 음력 7월8일이야.
‘ 성격’ 글쎄 이것에 대해선 앞으로 차차 이야기하도록 할게
그리고 시간 나는 대로 편지하도록 노력할께
1979 10 26 밤 펜팔 여학생 ( HJ )의 편지
세상에나!
79년 10월 26일 편지다.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그날 밤
한 여학생이 한 펜팔 남학생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다.
79년 10월 26일 밤, 나는 독서실에서 밤새워 공부하고 있었다.
그날 밤 독서실은 추웠다. 나는 친구와 난롯불에 라면을 구워 먹었고, 맥스웰 커피에 에이스 크래커를 찍어 먹으며 고입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날 새벽 독서실에서 집에 왔을 때, 안방에 불이 환했다. 방문을 열자 아버지가 양말을 신으며 말하셨다.
“대통령이 죽었다!”
그 새벽 아버지의 차가운 한마디가 지금도 형광등 불빛 아래 굳어 있다.
아, 우리의 80년대는 얼마나 우울했던가......
지난 편지에 가족 소개를 하던 그 여학생. 펜팔이 맞았다.
남편이 여학생에게 보낸 편지는 이전과 달리 많이 심각했나 보다.
아마 진로에 대한 걱정이었을 거다.
이전 글 <b와 d 사이 c>에서 이미 말했으니 여기서는 생략한다.
“노력하는 한 인간은 방황한다.”
그 시절 나는 괴테의 글귀를 좋아했었다.
적어도 남편은 그 시절 방황을 했고
나도 그랬고
훗날 우리 자식들도 그랬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좀 더 나은 삶을 살아내기 위해.......
내가 원하는, 내맘에 드는 인간이 되기 위해 방황하는 거라고... 내게 그랬듯
힘들어 하는 내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위로해 주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었는가,
내가 원했던 모습으로 살고 있는가.
나는 내 능력보다 더 높은 이상을 원했기에 언제나 불만족스러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젠 더 이상 방황하지 않아서 좋은 나이’가 되었다는 것.
방황할 일이 없으니 ...
평온하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우리 모두 얼마나 힘들었나,
이 편지를 쓴 그녀도 지금 평온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