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시리즈를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원래 고양이 혐오자였습니다. 그래서 와이프가 고양이를
입양하자고 했을 때도 입양하기 싫어서 얕은꾀를 썼다가 된통 당해서 입양한 것이 바로 헤라였습니다.
하지만 고양이라면 학을 떼던 저도 헤라를 처음 봤을 때 거의 문화충격에 가까운 충격을 받았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예쁘고 귀여운 털뭉치가 있다니... 물론 예쁘고 귀여운 강아지들은 이미 많이 봤지만
뭔가 새초롬하면서도 어설픈 매력이 강아지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만지면 부서질 것 같고 귀여운데 어찌나 뚱땅대면서도 앙칼진지 아깽이를 본 지 5분 만에 왜 사람들이
고양이에 홀린다는 건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고양이를 입양한 기쁨도 잠시.. 입양 2일 차에 혈변을 보기 시작합니다. 기운도 없어 보이고 먹는 족족 혈변을 보기에 서둘러 동물병원으로 데려갔습니다. 진단결과는 파보바이러스 감염.
아직 너무 어린 아깽이고 증상이 심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합니다. 이 조그만 생명이 죽을 수도
있다니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이 아깽이는 바로 자연발생종이고 튼튼하기로 유명한 노르웨이 숲.
기골이 튼튼하고 성격이 너무 야무져서 왠지 잘 이겨낼 것 같았습니다.
활력도 좋고 먹이반응도 전혀 떨어지지 않고 병원에서 지어온 약을 며칠 먹이면서 관리한 결과 변이 차차
원래 색으로 돌아오더니 일주일차부터는 설사까지 멈추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병원에 데려갔더니
고비는 넘긴 것 같다고 합니다.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리고 행여나 하고 미루던 이름 지어주기에 돌입했습니다. 여러 가지 안이 있었지만 결국 여신 포스 미모에 우아함을 반영해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 이름인
'헤라'라고 지어주기로 합니다.
그리고 밤톨이와 합사를 시켜봅니다. 점진적인 합사, 마음의 준비 이런 거 다 모르겠고 그냥 잘 지내라 하고
격리 중이던 침실 문을 열어 2주 먼저 와 있던 밤톨이와 대면을 시켰는데 밤톨이가 덩치가 크다 보니
헤라를 무슨 인형처럼 다뤘습니다. 하지만 고양이는 고양이인지라 밤톨이한테 한 번을 안 집니다.
밤톨이가 레슬링을 걸어도, 올라타도 기가 죽지 않는 모습을 보며 이게 바로 노르웨이 숲의 위용임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그리고 물론 지금 밤톨이는 헤라의 피지컬에 냥펀치 한방 감)
다행히 둘 다 아가여서 그런지 합사는 성공적이었습니다. 낮에는 투닥투닥하고 놀다가도 한참을 놀고 나면
서로를 베개 삼아 낮잠을 자는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모릅니다.
밤톨이도 그렇지만 헤라도 성격이 정말 온순한 편인데 절대 화를 내지 않습니다. 발톱을 깎아도 가만히 있고
자고 있을 때 부비적거려도 가만히 있습니다. 물론 수속성은 아니라 목욕은 엄청 싫어해서
목욕을 시키면 발버둥을 치긴 치는데 사람의 맨살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발톱을 드러내지 않기에 오히려
셔츠를 벗고 목욕을 시키면 상처가 전혀 안 납니다. (근데 티셔츠 입고 씻기면 사방에 영광의 상처가..)
애교도 많고 응석도 잘 부리는데 워낙 은근은근하고 독립성이 강한 성격인지라 손은 잘 안 타려고 합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건 좋아하는데 안거나 뽀뽀를 하면 질색팔색을 하고 도망갑니다.
그래서 늘 제가 퇴근하고 집에 오면 뽀뽀하려고 사냥(?)하는 저와 필사의 도주를 감행하는 헤라의
긴박한 추격전이 일어나고는 합니다. (.........) 물론 헤라가 워낙 착해서 거실 두세 번 뛰고 나면
알아서 잡혀주긴 합니다.
그렇게 냥펀치도 한번 날릴 줄 모르고, 헤라는 하악질을 할 줄 모르는 거 아니냐며 아니 쟤 화는 낼 줄 아냐며
5년을 그렇게 살아왔으나, 달봉이와 합사를 시작한 지 3일 만에 헤라도 하악질을 할 줄 아는 고양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달봉쓰의 위엄)
시도 때도 없이 우다다를 시전 하며 헤라한테 박치기하고 냥펀치 날리고 올라타고 꼬리 물고 하루에도 몇 번이나 헤라한테 치대니 헤라는 하악질도 하고 으르렁도 하고 냥펀지도 하고 공중 리바운드도 하고
거의 고양이 어질리티를 하며 달봉이 육아를 했었더랬습니다.
처음엔 헤라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아 달봉이의 파양까지도 고려했지만 다행히 1년 반 정도 같이 지내면서 이제 둘 다 어느 정도 적응이 됐는지 달봉이도 이제 선은 안 넘고 헤라의 하악질도 많이 줄었습니다.
(안 하지는 않습니다 (......))
헤라가 워낙 온순한데다가 하는짓도 얌전하고 우아하기만 해서 달봉이나 토리 같은 사고는 친 적이 없습니다.
거실에서 달봉이 우다다 토리 장난감 놀이하면 언제나 캣타워에서 물끄러미 바라 보고 있다가
달봉이가 잠들면 근처에서 그루밍도 해주고 토리랑 꼭 붙어서 낮잠도 자고, 저희집 둘째지만 사실상
맏언니 포지션을 맡고 있는게 바로 헤라 입니다. (토리야 철 좀 들자...)
냥줍으로 시작한 이 긴 이야기가 어느새 고양이 두 마리, 강아지 한 마리와 함께하는 저희 가족의 평범한
일상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달봉이는 여전히 제 무릎에서 골골소리를 내며 저녁잠을 자고 있고
헤라는 조용히 캣타워 위에서 세상을 관조하며, 밤톨이는 엄마한테 에너자이너 애교를 부리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매일 달봉이에게 “하지 마라~ 야! 안돼~”를 외치며 하루를 시작하죠.
하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달봉이와의 만남이 예상보다 훨씬 큰 행복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털은 날리고, 가끔 상처도 나고, 통장도 얇아졌지만 마음만큼은 매일 매일 더 두툼해지고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털뭉치 3형제의 똥꼬발랄한 일상다반사 였습니다.
시즌1은 여기서 마무리 하도록 하고 시즌2 사연도 많이 많이 만들어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긴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