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톨이가 햄토리가 된 사연
그렇게 입양온 밤톨이는 강아지 특유의 똥꼬 발랄함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저희 부부의 혼을
쏙 빼놨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잠이 들기 전까지 아장아장 걷다가 뛰다가 플레이 바우를
했다가 혼자 자빠지고 손바닥 만한 강아지의 원맨쇼를 넋을 잃고 바라봤습니다.
하지만 특이하게 절대 짖는 법이 없었고 꼬리는 프로펠러 마냥 쉴 새 없이 흔들고 다녔기에
얘는 혹시 포메의 탈을 쓴 다른 품종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마저 들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데려온 지 2주가 지났을 무렵 와이프의 성화에 못 이겨 고양이도 추가로 입양을
하게 되는데...
둘째 입양기는 다음 편에서 다시 얘기하기로 하고 암튼 고양이 입양 후 보름이 더 지났을 무렵
인근 마트에서 장을 보고 집에 온 저희 부부는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티테이블에 먹다 남은 캔 커피가 어쩐 일인지 쓰러져 있었는데 그걸 밤톨이가 열심히 핥아먹고
있던 겁니다.
고카페인 커피를 강아지가 먹으면 위험하다는 얘기를 듣고 급히 병원을 가려했으나, 주말 저녁 9시에
진료를 하고 있는 병원이 동네에 없었고, 그나마 가까운 길동에 24시간 진료를 하는 병원이 있다는 것을
알고 급히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문제는 당직 수의사 선생님이 저희 얘기를 듣더니 저희보다 더 흥분해서 치사량을 먹었을 수도 있다
위세척을 해야 한다 수액을 맞춰야 한다는 둥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고 (아니 우리를 안심시켜 달라고
우리가 의사 안심시키게 생겼냐고)
피검사를 하기 위해 밤톨이를 데려갔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 설마 우리 밤톨이 말하는 건가? 밤톨이가 어려운 이름도 아니고 설마 그걸 헷갈릴까 싶어서
가만히 있었더니 진료실 문을 다급히 열고 뛰쳐나온 수의사 선생님이 미소를 띠면서 말합니다.
......? 우리 강아지 맞지? 밤톨이? 와이프와 저는 서로를 쳐다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진료실로 향했습니다. 나이도 젊은 양반이 밤톨이를 못 외워서 (............) 뭐 좋게 생각하면
얼마나 진심이었으면 그렇게 당황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밤톨이를 데리고 병원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도 치킨뼈 먹어서 개복수술을 하지를 않나, 산책하다 바닥에 떨어진 뭔가를 주워 먹고
피를 토하질 않나 먹을 거 많이 주는데도 뭔 그리 식탐이 많은지 알 수가 없습니다.
참고로 밤톨이는 새끼강아지 때 너무 커서 입양이 안 됐으나 사실 그게 다 큰 사이즈였다는 반전드라마의
주인공입니다. 현재 밤톨이의 무게는 2.9kg로 포메 중에서도 꽤 작은 편에 속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짖지 않고 (달봉이 때문에 입이 트이긴 했습니다만) 항상 웃는 얼굴에 여전히 사람보면 꼬리는 프로펠러처럼 돌아가고 애교도 많습니다.
아무튼 우리 집 장녀(?)이자 첫째로서 올해로 견생 5년 차에 접어든 밤톨이는 여전히 똥꼬 발랄하게
아니 똥토리(제가 부르는 애칭) 답게, 잘 살고 있습니다. 고카페인 커피부터 치킨뼈 개복수술까지,
그 작은 몸뚱이에 담긴 이야기 밀도는 웬만한 자서전 두께긴 합니다.
아이러니한 건, 강아지를 입양하자고 한 건 저였고, 고양이를 입양하자고 한 건 와이프였는데
지금은 와이프가 멍빠 저는 냥빠가 됐습니다. (......)
이런 게 바로 인생의 아이러니 아니겠습니까?
다음 편은 분량 맞추기 위해 쓰는(아주 진지한) 번외 3편, 헤라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