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발악과 헷쳐
오늘 살펴볼 장비는 바로 제2차세계대전 말기 사실상 파산상태에 빠진 독일군 기갑전력의 언발에 오줌누기 에디션이었던 소형 구축전차 Hetzer입니다.
헷쳐는 1944년 4월부터 종전시까지 총 2,800대가량이 생산되었는데 대규모 회전 한 번에 기갑차량 수천 대씩이 터져나가던 동부전선의 헬오브 지옥 상황을 생각했을 때 결코 많은 숫자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1943년 까지 얘기였고 1944년 말로 가면 독일군의 상황은 악화일로에 빠지게 됩니다.
당시 주력 중형전차였던 판터의 생산량이 월 2~300대 수준이었던데 반해 다른 건 다 빼고 소련의 T-34와 미국의 M4 셔먼만 해도 각각 월 1,200 대씩 쏟아져 나오고 있던 판이었고, 설상가상으로 연합군의 본격적인 본토 폭격으로 인해 그나마 안구에 습기 차던 생산량조차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던 참이었습니다.
이미 이때쯤 되면 만성적인 물자부족에 시달리고 있던 독일에게는 사실 gg 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으나 히총통께서 스탈린과의 캐삭빵을 선언하신 마당에 항복이란 있을 수 없었고, 희귀 금속은 고사하고 강철조차 충분하지 않았던 시점에서 계속 판터나 티거만 고집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독일군에게 있어서 어차피 쿠르스크 전투 이후로 기갑전력의 전략적 반격능력을 완전히 소진한 상태에서
신형 전차는 큰 의미가 없었고 고정포탑을 탑재한 구축전차라도 있으면 감지덕지한 판국이었죠.
맘 같아선 88mm 포를 탑재한 야크트 판터나 하다못해 Stug III라도 많이 만들고 싶었지만 자재 부족으로
그마저도 여의치 않자 이미 도태되어 2 선급 장비로 굴려지던 체코제 38(t) 경전차의 차대에 75mm 대전차포를 올려 만든 소형 구축전차가 바로 헷쳐 되시겠습니다.
헷처는 소형 구축전차라는 콘셉트에 걸맞게 상당히 아담한 사이즈를 자랑했는데 이는 어떻게든 최소한의 자원투입으로 최대 효과를 끌어내기 위한 목적과 피탄 피탄 면적을 최소화해서 생존율을 0.1%라도 끌어올려보겠다는 당시 독일군의 복잡한 속내가 투영된 결과였습니다.
외형상 헷쳐의 가장 큰 특징은 크게 3가지 정도인데 먼저 방어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60도에 달하는 전면 경사장갑 채택, 피탄면적 최소화와 자원절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2미터 남짓한 체고 그리고 작은 차체에 포를 욱여넣기 위해 채택된 비대칭 주포의 위치 정도를 꼽을 수 있습니다.
전면장갑은 60mm로 60도의 경사장갑을 통해 이론적으로는 120mm의 방호력을 낼 수 있었지만, 어차피 500m 내외에서 70% 대의 명중률을 갖고 있던 헷쳐에게 있어서 별로 의미는 없는 수치였습니다. 거기다 대전말기로 가면서 조악한 품질의 강판으로
이론상의 방호력을 기대하는 것은 욕심에 가까웠습니다. (측면 장갑은 20mm이라는 처참한 수준)
그 거리에서는 당시 연합국이 보유했던 어떤 중형전차의 주포도 막아낼 수 없었거든요. 따라서 헷쳐에게는 조그만 차체를 이용해 벽돌 사이나 수풀에 잘 숨어 있다가 연합군 전차가 나타나면 얼른 한발 쏘고 부리나케 내빼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어느 정도 실내에 여유공간이 있어 전차가 피격돼도 생존자가 존재할 수 있었던 다른 전차들과 달리 2미터 남짓한 차체에 4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는 걸로도 모자라 차내에 덕지덕지 붙여놓은 41발의 전차포탄으로 인해 한발 피격으로 전차가 유폭 되거나 승무원이 전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물론 대전차 스나이퍼와 비슷한 위치에 있던 구축전차 대부분의 교전형태가 히트앤런이긴 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우직하게 주포를 주고받으며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야크트 판터나 야크트 티거와는 달리 헷쳐에게 있어서 빗나간 한방은 바로 죽음의 동의어였습니다.
더욱이 대전 후반기에 들어서면 전면장갑이 100 ~ 200mm에 달하는 괴물 같은 전차들이 쏟아져 나오던 판국이라 겨우 75mm 포를 장비한 헷쳐가 한 방에 바로 적의 주력전차를 격파하기는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대전말기에 접어들면서 독일군은 숙련된 포수나 조종수도 씨가 말라가던 상황인지라 기갑사단도 아닌 일반 보병사단의 구축전차 대대에 배속된 헷처 승무원들의 숙련도가 높을 리가 만무했습니다. 결국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헷쳐는 주로 방어전에 투입된 구축전차임에도 불구하고 전투교환비가 1.5:1에 불과한 초라한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여담이지만 헷처가 자그마한 외모와 가성비 쩔 것 같은 스펙(?)으로 인해 엄청난 가성비 전차였던 것처럼 취급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가격과 인시(1대를 생산할 때 투입되는 노동량)를 고려했을 때 의외로 그렇게 가성비가 뛰어난 전차는 아니었습니다.
가격이나 인시나 판터의 1/2 수준이었는데 그 초라한 스펙을 생각했을 때 헷쳐 2대가 판터 1대의 전력이 될리는 만무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터 대신 헷쳐를 만든 이유는 결국 자원, 숙련공의 부족과 절단난 전차 생산설비 때문이었죠. 전쟁은 게임이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러한 관계로 티거, 판터처럼 연합군 전차를 수십 수백 대씩 격파하는 전과를 낼 수도 없었고 전사에 기록될만한 전과를 낸 적도 없습니다.
헷쳐는 효율의 상징처럼 회자되지만, 실상은 절망적 상황에서 독일군이 짜낸 마지막 땀방울 같은 전차였습니다.
자원 부족, 숙련공 실종, 폭격에 무너진 공장 속에서도 “무언가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집착이 낳은 결과물이었죠.
당시 독일군이 처했던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기는 했지만 가성비 좋은 만능 구축전차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헷쳐는 독일군 몰락기의 비극적 상징이자, 전쟁이 더 이상 기술이나 용기가 아니라 물자의 싸움이었음을 보여주는 산 증거로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