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가게를 두 번 이상 습격할 정도의 기이함에 대하여
막 부부가 된 커플과 이야기를 나누다 부부 생활의 피로감에 대해 짧은 시간 강렬한 공감을 나눴다. 우리야 장거리 연애 기간이 길었고 문화 차이도 있다지만, 그 커플은 한국인이고, 학생 커플로 내내 붙어 다니다 결혼했는데도 상황이 비슷했다. 글이 더 진행되기 전에 먼저 밝히자면, 아쉽게도 밤일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싱글일 땐, 갓 부부가 된 친구들이 왜 그렇게 바쁜 척을 하는지 얄미웠다. 그들에겐 날 위해 내 줄 시간이 더 이상 없는 듯했다. 아니, 남자 친구였을 때랑 뭐 그리 많이 달라졌다고. 설마, 결혼하니 밤이 그렇게나 기다려지나? 어차피 맨날 보는 남편, 뭐 그리 좋다고.
그런데 결혼을 하자 기이한 시간 부족 현상과 피로감이 몰려왔다. 그 기이성과 심각성은 분명 한밤중에 빵가게를 두 번쯤은 습격할 정도였다. 같이 살면 데이트할 시간을 따로 빼지 않아도 되니 여유로운 생활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도 특별한 이유 없이 항상 시간에 쫓겼다. 게다가 이 피로감이라니.
나름의 분석 결과, 결혼은 활동량이 1+1=2 또는 1이 되는 행위라기보다는 1+1=3 이상이 되는 행위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아이가 아직일 때의 이야기다. (아기가 있으면 1+1+1=336쯤이 된다.) 특히 처음 독립한 경우라면 세금, 집 관리 등 독립한 자의 의무가 생기고, 다음으론 부부 단위로 참석 내지는 신경 써야 하는 일이 많아진다. 상대편의 가족, 상대편의 친구, 상대편의 스케줄 등등. 다시 말해, 내 스케줄+데이트뿐이었던 싱글의 시간표가 내 스케줄+상대편의 스케줄이 되는 것이다. 여자의 경우에는 이상하게도 가사 일이 어영부영 업무 분장에 추가된다.
거기다 쉬는 날이 생겨도 편하지가 않다. 누가 말했다. 결혼이란 ‘여자 친구가 집에 놀러 와서 재미있게 놀았는데, 도대체 집에 갈 생각을 안 하는 것’ 이제 게임도 하고, TV도 보고, 속옷 바람으로 편하게 뒹굴거려야 하는데 왜 안 가는 거야. 그렇다. 벌써 방귀도 텄고, 맨 얼굴에 아침 첫 입냄새까지 이미 다 안다고 해도, 처음 36시간 이상을 연속으로 같이 보내게 되면 정말 피곤해진다. 왠지 계속 말을 걸어줘야 할 것 같고, 왠지 계속 뭔가를 함께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
결혼을 하면 침대가 하나다. 그리고 그 침대는 공동의 방에 있다. 가족들과 살 때는 다 같이 밥을 먹고 때가 되면 내 방에 들어오면 됐는데, 이젠 내 방이 없고, 우리 방만 있다. 심지어 침대도 나눠 써야 한다. 남편이 차지한 침대 면적이 그와 나의 표면적을 고려한 정당한 지분이라 해도, 그 공간이 내 공간보다 많은 것은 물론 나나 남편 모두 침대에 대자로 누울 수는 없다. 또 나는 모로 눕는 버릇이 있어서 밤새 자연스럽게 방향을 바꿔가며 자는데, ‘자연스럽게’ 남편에게 등을 돌리고 눕자니 왠지 미안하다. <결혼 생활 대백과>에도 나오지 않을 듯한 정체불명의 미안함이다. 그가 척하고 내 몸에 다리를 올려놓을 때는 어떻고. 남편은 키가 커서, 내 골반쯤에 그의 허벅지가 위치하게 되는데, 2분 정도 지나면 허리가 아프다. 그렇다고 밀어내자니 왠지 미안해서 좀 참다가, ‘저기, 미안한데…’라고 말을 꺼내려하면 본인은 편히 잠들어 있다. 아아. 화가 나려 한다. 게다가 이 놈의 다리는 무거워서 내 힘으론 움직이지도 않는다! 신혼의 아침은 달리 피곤한 게 아니다.
또 이불을 번데기처럼 돌돌 말고 자는 사람들이 있다. 내 남편도 그렇다. 밤에 추워서 깨 보면 영락없다. 내 몫의 이불은 새로 꺼낸 화장지 끝 정도 남아있다. 그 이불을 조금이라도 덮어 보겠다고 이불을 당기면, 역시 무거워서 움직이지가 않는다! 힘껏, 힘껏 당겨도 괴수(그러니까, 남편 말이에요.)는 움직이지 않고, (아아. 화가 나려 한다.) 할 수 없이 그쪽 등짝에 내 등을 붙이고 그 화장지 끝을 대충 팔 위에 지붕처럼 덮고 다시 잠든다. 괴수의 등은 따뜻하다.
그러다가 상대편이 외출을 해서 집에 혼자 남으면 내 집에 혼자 있는 그 느낌이 참으로 각별하다. 상대편이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먹고, (남편이 멜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평소엔 항상 사기를 망설인다.) 상대편이 좋아하지 않는 영화를 보고 (우리의 경우엔 자막이 없는 한국 영화나 텔레비전), 침대보를 새 걸로 바꾼 후 가운데에 대자로 누워 뒹굴거린다. (남편이 땀으로 적시지 않으니 아침까지 보송보송하다.) 복장을 대략 간소화할 수도 있다. (그 전에 문은 꼭꼭 잠그지만) 약간쯤은, 잃어버린 나의 일부가 회복된 듯한 느낌이 든다.
2000년대를 살아가는 기혼자들이 잃어버리는 나만의 것이 또 하나 있다면, 바로 나만의 컴퓨터다. 음악이나 영화를 같이 본다는 이유로 슬쩍, 내 컴퓨터가 고장 나서 백업으로 슬쩍, 니 컴퓨터가 가까운데 있으니 슬쩍, 이 컴퓨터에는 저 프로그램이 안 깔리니까 슬쩍, 하며 점점 내 컴퓨터에 상대방의 파일과 프로그램이 늘어간다. 아는 부부는 클라우드를 통해 상당히 전문화된 음악과 영화 공유 시스템을 갖추고 있던데, 우리도 시작은 외장하드 등을 통해 그렇게 했으나 컴퓨터 몇 대가 고장 나는 동안 뒤죽박죽이 되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친구의 비공개 홈페이지나 자주 가던 블로그 주소를 하나 둘 잃어버리고, 결국은 포털 사이트의 헤드라인만 체크하게 됐다. 내 플레이 리스트도 없어져서 듣고 싶은 노래가 생기면 단발적으로 유튜브에서 듣는다. SNS와 이메일은 로그인 후 로그아웃 한다. 어쩐지 가출한 십대 같다.
버지니아 울프는 혼자만의 공간의 중요성에 대해 썼다. 관계성에서 벗어나, 자아와 주변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 창작에는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꼭 창작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사람과 돈에 치일수록, 내 냄새만 나는 그곳이 절실해진다. 요즘은 그런 역할을 어느 정도 컴퓨터와 인터넷이 하고 있는 듯하다. 마치 인터넷 핫 스팟을 설정하듯이, 내 컴퓨터를 켜면 내 공간이 펼쳐진다. 내 즐겨찾기와 내 음악, 내 파일이 있는 공간.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아바타가 있는 공간일 수도 있겠다. 시간이 안 맞는 친구들의 근황을 살펴볼 수도 있고, 언제든지 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다. 내 집에서조차 엄마로, 아내로 사는 한 인간의 자아가 여기에서 잠시 백업된다. 지표 없는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선장이 쓰는 항해 일지는 아마 자신의 연속성을 확인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나와 남편 사이에는 되도록이면 상대편의 컴퓨터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규칙이 생기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결혼의 갈등이라고 하면, 독립적인 개인 둘이 겹쳐지기 위해 벌어지는 갈등만을 생각하는데, 합쳐진 개인 둘이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벌이는 갈등도 있다. 앞 문장의 방점은 결합에, 뒷 문장의 방점은 독립에 있다. 이상하다. 분명 원해서 결합했는데 독립하고 싶어 하다니.
결혼 8년 차의 침대, 이제 망설이지 않고 힘껏 발을 사용하여 상대를 움직인다. 상대가 깨면, ‘미안. 너무 무거워서.’ ‘하지만 편했는데. 투덜투덜.’ 이라며 각자의 잠에 빠져 든다. 섬과 같은 각자의 베개에 머리를 묻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