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 for Favour

싫어하는 것을 꼭 하고 마는 인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가.

by 해니

요즘 아이는 골라 먹기를 배웠다. 고기랑 밥이랑 채소 중에 고기만 골라 먹고 쏙 없어진다. 모르는 척 밥과 채소를 입에 넣어보지만 바로 혀를 쑥 내밀어 버린다. 아아 얄미워. 말을 알아듣는 나이만 돼 봐라. 굶겨 버릴 테다.


나는 편식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싫다는 표현은 약간 두리뭉실하고, 정확히 말하면 아니꼽다. 이 느낌의 가장 처음을 떠올리면, 방금 본 동영상처럼 플레이되는 기억이 있다. 엄마는 동생을 무릎에 앉히고 사정하다시피 밥을 먹이고 있었다. 한 숟가락의 밥이 축구공이 됐다가 비행기가 됐다가 우주선이 됐다가 다시 밥그릇으로 돌아가기를 몇 번, 고작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 나이었던(것으로 짐작되는) 나는 엄마에게 “굶겨!”라고 밥상을 뒤엎을 기세로 화를 냈던가 그럴 생각만 했던가….


나는 좋아하는 것을 마지막에 먹는 타입이다. 그러다 보니 좋아하지 않는 버터크림 케이크를 우물우물 먹고 있으면, 갑자기 누군가가 나타나 아껴둔 장식 딸기를 가로채가는 것 같은 일이 생긴다. 학교나 사회생활에서도 그랬다. 싫어하는 과목이 있어도 일단 궁둥이는 붙이고 있고, 누가 맘에 안 드는 행동을 해도 일단 참고 본다. 하고 싶은 게 있어도 일단 상황이 될 때까지 기다린다. 그런데 맘에 안 드는 행동을 한 인간은 역시 그런 놈이었고,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상황은 좀체 오지 않는다. 대체 진짜 내 인생은 언제 시작되는 거지? 그냥 딸기부터 먹었어야 했다. 왠지 그럴 수 없었을 뿐이다. 사실, 나는 편식하는 사람들을 질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에겐 내게 없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왜 나는 딸기부터 먹어버릴 수 없었는가? 다른 인간은 몰라도 나라는 인간의 동기는 두려움이다. 원인은 ‘좋은 약은 입에 쓴 법’, ‘언젠가는 쓸모가 있을지도 모른다’, ‘참는 자가 이긴다.’ 이런 세뇌 교육이 아닐까? 인생과 성공의 비밀은 꼭 내가 싫어하는 것들에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만 하고 있다 보면 인생과 성공은 나에게서 점점 멀어져 가버릴 것만 같은….


그런데 같은 세뇌 교육을 받으며 자란 친구 중에도 취향이 확고한 친구들은 항상 있었다. 고등학교 때, 이틀 걸러 한 번쯤은 3교시에 조퇴하는 친구와 짝이 된 적이 있다. 조퇴 이유는 당연히 다 거짓말이고, 조퇴 후엔 연희동인가에서 죽친다고 들었는데, 그때 그곳에는 양군 기획이 있었다. 양군 기획이란,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후 양현석이 세운, 그렇다. 현 YG 엔터테인먼트의 옛날 이름이다. 서태지와 아이들 팬이었던 그 친구는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후 양군 기획을 서포트하기 위해 지누션 등의 ‘빠순이’를 자처하며 양군 기획 건물 앞에서 몇 시간이고 죽치고 있었다. 당시엔 빠순이란 말도 없었고, 이런 아이들은 그냥 툭하면 학교 조퇴하는 문제아로 생각됐다.


어느 날 나는 쉬는 시간에 내 숙제를 빛의 속도로 베끼고 있던 친구에게 물었다. “네가 그렇게 거의 매일 가서 몇 시간이나 기다려도, 그 사람들은 너의 존재도 모르잖아. 솔직히 시간 낭비 아냐?” 친구는 진지하게 말했다. “너는 몰라. 그렇게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이 없으니까.” 순간 아무 생각 없다고 생각했던 그 친구가 아주 멋있어 보였다. 지금도 멋있다고 생각한다. 서른 중반이 된 지금까지도 나는 누군가를 그렇게 좋아해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일류대 갈 것도 아니었는데 한 번 조퇴하고 친구 따라 그곳에 한 번 가봤더라면, 내 인생은 조금쯤 멋있어졌을까?


아니. 나는 그곳에 갈 수 없었을 것이다. 지누션이나 서태지나 H.O.T. 를 그 친구만큼 좋아했더라도 말이다. 누가 아이돌 따위를 좋아하냐고 비웃을까 봐, ‘그런 아이’로 낙인찍힐까 봐, 설명할 수 없는 나만의 진실을 그대로 긍정할 수가 없어서.


변명하자면 나도 사정이 있었다. 당시 집안 상황이 매우 불편했는데, 그것은 나에게는 너무나 창피하고 큰 일이어서 아무에게나 말할 수 없었다. 어릴 때부터 글쓰기가 좋았지만, 남들 보여줄 수 있는 글에 쓸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내 마음은 그 상황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 무력감에 완전히 감염돼있었다. 그것이 부끄러워서 나는 ‘보통 아이’를 연기했다. 십 대들은 자기들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 생각하는 나머지 자신의 불행을 떠벌리며 불행 경쟁을 하곤 하는데, 고만고만한 그 경쟁에서 내 상황을 까발려 가며 이기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나에겐 항상 비밀이 있었고, 비밀이라는 것은 안에서 썩어가며 인성을 병들게 한다. 그런 인성에겐 나에게만 보이는 어떤 진실을 기꺼이 드러내고, 찬양하고, 증명할 그런 여유가 없다. 당연한 듯 문과에서 취업이 쉽다는 영문과로 진학했고, 취업도 했지만, 나는 좋아한다는 고백을 해 보지도 못한 사랑의 실패자랄까, 그런 채로 야근을 하고, 술을 마시고, 그저 그런 인간이 되어있을 뿐이었다. 언어를 지배하는 창조자가 아니라, 남의 언어로 만들어진 집에서 끊임없이 불안해 하는 바이링구얼. 짐 캐리가 말했듯이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해도 실패할 수 있”다.


유고집이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집이라는 수많은 예술가에게 나는 공감한다. 그들은 자신의 깊은 곳을 남에게 보여주기가 너무 두려웠다. 긍정해 본 적이 없어 부끄러웠다. 그런데도 어쩔 수 없이 조심조심 써 왔던 작품들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무심히 넘겨지고, 때로는 섣부른 판단을 당할까 두려운 나머지, 그들은 평생 비밀을 지켰다. 이런 두려움을 이겨내는 사람들은 용기가 있다가 못해, 가끔은 미워질 정도로 무정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누구의 사정이나 비판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을 만큼, 견고한 자기애를 가진 사람들 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자기애는 어쩌면, 남 신경 쓰지 않고 좋아하는 것만을 배가 터지도록 먹어 본 아이가 가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부모는, 아이를 키우며 어린 시절의 상처를 복기한다. 잊고 있었던 것도 생각나고, 또 그때 그 기억이 지금 시점에서 다시 생각되기도 한다. 하나의 사람일 뿐인 부모는, 자기가 아는 아픔만은 피해 가도록 아이를 키울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반찬도 골라 먹고 자기가 할 말은 하고 마는 고집쟁이를 키울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안에 들어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이라면, 대체로 후회 없는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