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아기 때 이미 무찔렀던 것들을 기억한다면.
‘슬하의 자식’이라는 말의 ‘슬하’는 무릎 아래라는 뜻인 거 아니? 어린아이들이 엄마 다리에 엉겨 붙는 모습인 거지. 지금 네가 바로 그래. 내 종아리를 붙잡고 겨우 일어서서, 엄마를 보려고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힌단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너는 아마, 엄마를 내려다보고 있겠지. 어느 웹사이트의 공식으로 계산하니, 성인이 된 네 키는 한 180 센티미터 정도 될 거래. 정말이니? 작고 통통하고 귀여운 우리 아기의 목소리가 굵어지고, 팔다리도 우락부락해진다니, 엄마는 왠지 벌써 섭섭하다.
너는 요즘 혼자 일어서서 아무것도 붙잡지 않고 30초 정도 버틸 수 있게 되었어. 그리고 갑자기 뒤집기를 시작했단다. 보통, 갓난아기들은 등을 바닥에 대고 누워만 있잖아. 그러다 크면서 뒤집고, 그다음에 기고, 앉고, 서고, 마지막으로 걷는데, 너는 뒤집기는 빼먹고 기고 앉고 서더니, 이제야 깜빡 잊었다는 듯이 뒤집기를 하는구나. 덕분에 엄마는 너에게서 더 눈을 떼지 못하게 됐어. 예전엔 눕혀만 놓으면 누운 자세 그대로 있었는데, 이제는 돌아서면 금세 기거나 서고 있으니 말이야. 너는 뒤집기로 가능해진 연속 동작에 얼마나 열중하는지, 먹고 자는 것 빼면 하루 종일 눕기에서 서기까지를 반복 연습한단다. 정말 대단한 집중력이야. 너를 만나기 전 난, 아기들은 하루 종일 그냥 먹고 자고 놀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구나. 아기들은 이 큰 세상을, 그리고 빠르게 자라는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매일매일 아주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어. 어른들은 대체 언제 그런 부지런함을 잃어버리는 건지.
앞에서 먹고 자는 것 빼면 계속 연습이라고 했는데, 정정한다. 잘 때조차 너는 연습이야. 꾸벅꾸벅 조는 너를 침대에 내려놓으면, 등이 닿기가 무섭게 너는 뒤집고 일어선단다. ‘앗, 연습하다가 잠깐 졸았네? 다시 시작해야지!’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야. 엄마는 조용히 너를 다시 안아 눕히고, 너는 발딱 일어서고, 오늘 우리는 이런 실랑이를 한참이나 했어. 내가 너를 몇 번이나 다시 눕혔는 줄 아니? 무려 아흔세 번! 아흔세 번 다시 눕혔단다.
네가 일어날 때마다 엄마는 “잘 시간이야.”라고 말하며 다시 침대에 눕혔는데, 쉰 번째쯤 되자 너는 조금 힘들어하는 듯하더구나. 꾸벅꾸벅 졸던 아기가 어쩜 이렇게 기운이 넘치는지. 엄마는 네가 이제 곧 포기하고 잠들 줄 알고 계속 눕혔지. 이른 번쯤 되자, 너는 화가 나는지 울기 시작했어. 그러면서도 또 오똑 일어나고, 오똑 일어나고. 겨우 10개월짜리 아기인 네 어디에 그런 고집과 끈기가 있었던 걸까?
아흔 번째가 되자, 엄마가 졌어. 네가 울며 계속 일어나는데, 더 이상 다시 눕힐 수가 없더라고. 엄마도 힘들었고. 시간도 평소에 자는 시간을 훨씬 넘겼어. 한 시간 반 정도나 실랑이를 한 거야. 결국 나는 너를 침대에서 꺼내어 네가 잠이 들 때까지 안고 달랬단다.
칠복아, 혹시 네가 지금 무언가에 녹다운돼 있다면, 그 무언가가 너무 힘들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눈을 감고 네가 아주 작다고 상상해봐. 키는 75센티미터에 몸무게는 10 킬로그램이라고 말이야. 그때의 너는 키는 두 배가 넘고 체중은 다섯 배가 넘는 거인을 상대로 끈질기게 싸워 결국 이기고 말았단다! 그 용기를 기억하렴. 네가 지금 맞선 문제는 키가 4미터에 체중이 400킬로그램인 거인보다 특이하지도, 크지도 않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