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난지도 15년. 어디 가서 이민 이력으로 쉽게 꿇리지 않는(?) 햇수가 됐다. 처음 학생으로 왔던 해부터 세면 20년에 가까워진다. 일생의 반, 성인기의 대부분을 해외에서 지낸 것이다. 이 20년 교민 생활 중 획기적인 변화가 있다면? 역시 스마트폰이라고 하겠다. 어디서든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스마트폰. 물론 인터넷 자체가 획기적으로 한국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뉴스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해 주긴 했지만, 그 인터넷을 이용해 한국의 지인들과 언제든 문자와 통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스마트폰이라니! 진실로 혁명적인, 아니 강산이 뒤집힐? 어쨌든 어마무시엄청난 변화였다.
왜냐하면 내가 처음 왔던 2004년만 해도 이쪽은 종종 인터넷을 전화선으로 썼는데, 싸*월드나 다* 같은 포털 사이트는 너무 느려서 접속이 잘 안 됐다... 한국에 있는 사람들과 연락하려면 컴퓨터로 네이트온이나 MSN 메신저를 사용했는데... 화상 채팅? 그건 영화에나 나오는 거죠. 음성 채팅도 없었고요. 전화는 유선 전화를 통해... 또는 요금이 저렴한 선불 전화 카드를 구입했는데, 이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사용하는 거냐면...
1. 001 (이젠 이것도 모르시는 분들 계시겠지) 같은 번호로 걸면 매우 비싸기 때문에 2. 슈퍼마켓 같은 데서 카드를 구입 3. 콜센터로 전화하면 영어는 1번 중국어는 2번... 이런 안내가 나옴 3. 언어를 고르고 구입한 전화 카드의 고유 번호 입력 후 한국 번호 입력 4. 통화 종료 후 카드에 얼마 어치 남았는지 알려줌. 5. 금액이 끝나면 새 카드 구입.
이렇게 생김. 내가 주로 썼던 건 빨간색이라 모아서 벽에 하트 모양 만듬.
그런데 내가 처음 살던 동네는 시골이라서 오후 4시면 버스가 끊겨... 전화 카드에 돈이 떨어진다고 금방금방 사러 나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한국에 있는 사람 목소리를 듣는 건 아끼고 아껴야 하는, 특별한 일이었다. 상대편도 마찬가지로 전화 한 번 하면 전화세 폭탄을 맞는 수가 왕왕 있었으니, 한국에서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하던 친구들과 자연히 대화가 줄어들었다.
그러다가 몇 년 후, 070 전화란 게 생겼다. 대충 ㅋㅋㅇ톡 음성 통화 전용 전화기 같은 건데, 스마트 폰 없던 시절, 집 전화 같이 생긴 기기를 집 인터넷에 연결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더 이상 국제전화비가 들지 않아! 친구들과 막 다시 전화를 할 수 있다! 근데..... 전화가 안 오더라고... 츄흑. 이민 생활 몇 년 간, 친구들은 이제 언제든 나한테 연락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나도 그때 깨달았다. 아... 친구들 맘 속에서 나란 존재의 단축 번호가 사라졌구나.
<이윽고 슬픈 외국어>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외국에 오래 나가 있는 것은 사회적 소멸의 유사 체험이라고 말했는데, 대충 맞는 말이다. 내가 없어도 한국은, 그리고 친구들이나 가족들은 이제 크게 곤란하지 않다. 그들은 내 빈자리를 메꿨다. 내가 그만두고 온 직장은 당연히 사람을 구했고, 친구들은 작은 일론 잘 연락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이민 후 10년쯤이 지난 언젠가는 가족들이 가족 카톡방에서 대답이 없길래 전화를 해 봤더니, 가족 중 두 명이 사고를 당해 머리 몇 방을 꿰매는 수술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일주일이나 아무 말도 안해준 것이다. 처음엔 정신없어서, 그다음엔 걱정할까 봐. 혹시나 하고 전화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아니, 우리가 남인가요.
얼마 전 교민 오픈챗방에 어느 분이 고민을 토로했다. 내가 결혼할 땐 꼭 너에게 사회를 맡길게, 하고 약속했던 친구한테 갑자기 청첩장이 왔다고. 사회는 다른 친구가 하기로 했다며. 놀라서 전화했더니 그 친구는 너무 아무렇지 않게 그냥 그러기로 했다고 해서 상처받았다고. 제일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열일 제치고 친구 결혼식에 비행기 타고 갈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이거 힘든 일이다), 배신당한 느낌이라고.
백배 천배 공감 가는 일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지. 좋은 친구가 못 됐던 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좋은 친구가별 거 있나. 힘들 때 불러내서 고기 사 주고, 좋은 일 있으면 같이 축하하고, 퇴근하고 맥주 한 잔 같이 하는 게 좋은 친구지. 그걸 못 해 준 것도 우리고, 떠나 오기로 결정한 것도 우리. 그러니 배신자를 굳이 따지자면... 그건 사실 우리인 것이다... 그들과 우리는 이렇게 멀리 떨어져, 이젠 함께 했던 시간보다 함께 하지 못한 시간이 더 길다. 태어날 때부터 함께 했던 가족조차도 그렇다. 인생의 반 이상을 해외에서 지낸다는 건 그런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 서로를 기억하고, 마음에 담고 있는 게 어딘가... 그들이 나의 빈자리를 잘 메꿨다면, 안심하고 축하할 일이다.
스마트폰은, 통신 기술은 우리의 거리를 많이 좁혀 줬다. 조카의 생일 선물을 한국에서 주문해 부칠 수도 있고, 친구들에게도 어디서든 부담 없이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내 아이와 우리 엄마가 화상 통화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데도 아직 부족하다. 마주 보고 같은 공기를 마시고 싶고, 손 잡고 안아 주고 싶다. 그래서 더욱 마음을 쓰게 된다. 얼마 전에, 친한 친구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학교 때부터 친구였지만 어머님을 뵌 건 부고 메시지 속 영정 사진이 처음이었다. 친구를 많이 닮은 사진 속의 어머님은 참 곱고 너무 젊으셨다. 그 빈소에 가 있어야 하는데, 가서 친구의 무너진 마음을 받쳐 주고, 육개장도 날라줘야 하는데. 이젠 비행기표를 사더라도 한달음에 갈 수가 없다. 말로도, 돈으로도 다 할 수 없는 마음을 화환으로 보냈다. 화환이라도 거기서 친구를 지켜봐 줬으면 하는 마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