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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cellaneous Sep 05. 2022

안녕, 샌프란시스코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 여행기

앞선 여행 일정 동안 잘 경험했지만, 이 도시는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고도 차이가 꽤 있는 편이다. 평평한 지역은 한없이 평평하지만, 도시 곳곳에 불규칙하게 솟아오른 언덕 때문인지, 길게 쭉 이어진 오르막길부터 오르락내리락하는 길까지 다양한 형태의 언덕들을 볼 수 있었다. 비록 다운타운이지만, 이러한 특성 덕분에 곳곳의 비탈길에 앞바퀴를 돌려놓은 채로 위태롭게 주차된 차들 옆으로 차오르는 숨을 누르며 걸어 다니곤 했다. 

구글 지도에서 샌프란시스코의 Terrain Layer를 적용한 모습, 곳곳에 보이는 색이 짙은 부분이 고도가 높은 곳이다.


샌프란시스코의 지도를 보거나, 높은 곳에서 쭉 내려다보면서 느낀 거지만, 골목골목이 하나같이 비슷하게 생겼고, 마치 바둑판을 보는 느낌이 든다. 다운타운으로 향하는 우버를 타면서 봤지만, 차의 등판능력을 시험하게 하는 가파른 오르막길과, 어딜 가도 비슷해 보이는 골목길과, 툭하면 튀어나오는 일방통행로의 조합은 샌프란시스코에서의 내비게이션 없는 운전을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다운타운에서 처음으로 간 곳은 Bob's donut, 역시 디저트 및 베이커리 전문가 H의 결심에 의거하여 향한 곳이었다. 험난한 도보여행을 준비하기 위해 다들 당부터 충전하고 가기로 했다.

Bob's donut에 도착하여 가게에 진열된 도넛들을 살펴보러 가는 H
맛없을 수가 없게 생긴 도넛들, 수제 도넛의 특유의 불규칙적인 모양들을 하고 있다.
계산대 너머로 보이는 주방에서는 도넛 장인께서 열심히 돈을 찍어내고 계신다
하나같이 도넛에 관한 그림이 들어간 액자들로 빼곡한 한쪽 벽


각자의 취향을 반영하여 4개의 도넛을 골라 담았다. 저 중에 내가 2개를 골랐는데, 오른쪽 아래에 있는 글레이즈드 도넛은 도넛 집의 공통이 되는 기본 메뉴를 통해 같은 레퍼런스로 내가 아는 도넛 집과 비교하기 위해 골랐고, 오른쪽 위에 있는 괴상한 도넛은 내가 좋아하는 베이컨이 위에 뿌려진 녀석이라 골랐다.

자고로 도넛은 못생길수록 맛있는 법이다


글레이즈드는 워낙에 평범해서 딱히 기억이 잘 나질 않는데, 캐러멜 글레이즈 위에 베이컨이 올라간 도넛은 꽤 괜찮았다. 단짠의 조합은 웬만해서는 실패하기 어려운 법이다. 단 걸 싫어하는 I는 몇 조각 먹더니 뒷골이 땅긴다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조금 더 걸어서 도착한 목적지는 Russian Hill(러시안 힐)이었다. 러시안 힐은 세계에서 제일 구불구불한 도로로 알려져 있으며, 총 8개의 코너로 이루어져 있다. 게다가 말 그대로 언덕이기 때문에 27도의 경사까지 갖추고 있다.

본래 이름은 Lombard Street인 이 도로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 불리는 테슬라의 자율주행 기술로도 완벽히 통과하지 못해서 한때 이슈가 된 적이 있다. 그러다가 2021년, 마침내 테슬라는 운전자의 중도 개입 없이도 야간에 이 악명 높은 도로에서 자율주행을 성공해냈다. 

러시안 힐의 위쪽 입구, 길이 매우 구불구불하다는 사인과 함께 기다란 승합차의 진입을 금지하는 안내가 쓰여있다.


러시안 힐의 양쪽 테두리에는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난간과 계단이 있었고, 중앙에만 구불구불한 차도가 나 있었다. 그 와중에 비좁은 길 한쪽 구석에는 차고와 임시주차장까지 마련되어 있다는 게 놀라웠다. 거주자나 관광객이 아니고서는 굳이 이 길을 택할 이유가 하등히 없어 보였다. 보는 사람도 스트레스받는 느낌이랄까?




다음으로 향한 곳은 Ghirardelli Square(기라델리 스퀘어)였다. 기라델리 초콜릿이라면 다들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나는 평소에 즐겨 마시는 싱글몰트 위스키에 페어링 하기 위해 기라델리 초콜릿을 사 먹은 기억은 나는데, 이렇게 큰 매장으로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기라델리'는 이름과 철자만 보면 유럽 대륙의 어느 나라에서 온 것 같지만,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한 기업이다(마치 하겐다즈를 보는 듯하다). 1852년에 도밍고 기라델리라는 이탈리아인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창업한 기라델리는, 1967년에 본사를 이전하였고, 자연스레 이곳 샌프란시스코에 남겨지게 된 공장이 오늘날의 '기라델리 스퀘어'로 변신한 것이라고 한다.

기라델리 스퀘어는 마치 인사동의 쌈지길을 닮아있다.


기라델리 스퀘어 안에는 당연히 시그니쳐 스토어라고 불릴 만큼 다양한 제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재미있었던 것은 상자가 완전히 닫힐 정도로만 초콜릿을 골라담으면 상자별로 정해진 가격에 다양한 초콜릿을 맛볼 수 있게 해주는 판매방식이었다. 뿐만 아니라 처음 보는 기라델리 초콜릿도 많았다. 맨날 고르는 종류만 고르다 보니 이렇게 다양한 컬렉션이 있는 줄은 몰랐다.

저 금색 통이 완전히 닫힐 정도로만 골라 담으면 한 통당 14달러 정도에 초콜릿을 사갈 수 있다.


기라델리 스퀘어 내부에는 초콜릿 가게뿐만 아니라 레스토랑과 주점들이 다양하게 입점해 있었다. 가게의 스타일은 다르지만, 형태나 컨셉은 서울 인사동의 쌈지길을 연상시키는 곳이었다. 둘러싸듯이 쌓아 올려진 건물 구조에 층마다 위치하고 있는 가게들이 비슷한 느낌을 자아냈다.

하늘에는 전구가 수놓아진 게 밤에 와도 예쁜 모습을 만들어낼 것 같다.




어느 정도 둘러보니 밥시간이 되었다. 점심메뉴로는 학수고대하던 In-N-Out Burger(인 앤 아웃 버거)를 먹으러 갔다. 미국의 남부지역인 텍사스에 거주하는 I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주변에서 인 앤 아웃 버거를 만나볼 수가 없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인디애나, H가 있는 일리노이, J가 있는 워싱턴 D.C 모두 인 앤 아웃 버거를 단 1개의 지점도 보유하고 있지 않은 곳이다.(심지어 가장 가까운 대도시인 시카고에도 없다!!) 드디어 미국 햄버거 3 대장(In-N-Out, Five guys, Shake shack)을 모두 먹어보게 되다니 감개무량할 따름이었다. 

미국 생활 1년 만에 처음 먹어본 인 앤 아웃 버거!!


인 앤 아웃 버거 내부의 모습, 메뉴 구성이 생각보다 매우 단순하다.

Double-Double이라는 이름의 햄버거 단품과, 메뉴판엔 나와있지 않은 Animal fries를 주문했다. Double-Double은 패티 2장과 치즈 2장이 들어있었고, 야채도 적당히 들어있었다.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하다는 게 큰 장점이었다. 샌프란시스코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6.15달러(2022년 7월 기준)라는 가격은 상당히 저렴한 축에 속한다. 이 가격에 양파, 상추, 토마토가 들어간 버거를 먹을 수 있다는 건 요즘 사악하게 치솟은 물가를 생각했을 때 가성비 있는 소비라고 생각한다. 

세금 포함 14달러, 샌프란시스코에서 이 정도면 상당히 가성비 좋은 한 끼다


맛은 사실 그렇게 특별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맥도날드와 버거킹의 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버거킹에 좀 더 많이 가까운). 가격을 제외하고 맛만 놓고 생각했을 때에 미국의 3대 버거 중에서는 가장 아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내 마음속 1위는 Five guys다. 


하지만 가격이 저렴하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맥도날드 먹을 바에는 돈 좀 더 얹어서 인 앤 아웃을 먹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에 드는 포인트 중 하나는 바로 저 노란색 할라피뇨 절임이었다. 지금도 생각만 하면 침샘이 폭발할 정도로 시큼하면서도 매콤한 맛인데, 전반적으로 매운맛이 부족한 미국 음식에서 '빛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겠다. 먹을 때마다 얼굴을 찡그리고 매움에 고통받으면서도 계속해서 손이 가는 게 마치 "Guilty pleasure"를 느끼는 것 같았다.

인 앤 아웃에서 처음 맛본 칠리 페퍼의 맛을 잊지 못해 얼마 전 장바구니에 냉큼 담았다


Animal Fries는 메뉴판에서 찾으려면 없는 히든 메뉴다. 감자튀김에 마요네즈 기반의 소스와 다진 양파와 치즈를 얹은 모습이다. 맛은 그럭저럭 괜찮았으나, 인 앤 아웃의 프라이 스타일이 바삭하게 튀기는 게 아니라 약간은 눅눅한 스타일인 게 좀 마음에 안 들었다. 주문할 때 'Well done'으로 해달라고 부탁하면 더 바싹 튀겨주니 참고하자.




다음 목적지인 Pier 39로 가면서 주변에 있는 가게도 둘러보며 다녔다. 지나다니다 한 가게에서는 와인을 캔에 담아서 팔고 있는 걸 보았다. Freakshow Carbernet Sauvignon라는 이름의 와인이었다. 웬만해선 가게에서 뭘 잘 안 사는 편인데, 이번엔 뭔가에 홀린 듯이 나도 모르게 카드를 긁고 있었다.

캔 와인이라니, 사이즈도 아담하고 라벨도 음료수 같아서 길거리 음주에 최적화되어있었다.


원칙적으로 길거리나 공공장소에서 음주를 할 수 없게 되어있는 미국에서 와인을 한 손으로 감싸 쥐고 홀짝홀짝할 수 있다는 게 소소한 행복이었다. 기대한 것보다 훌륭했던 와인의 풍미를 음미하며 새파랗게 물든 샌프란시스코 항구의 풍경을 보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Pier 39에 도착할 수 있었다. Pier 39 외에도 항구는 많이 있었지만, 이쪽은 유난히도 상권이 발달해 있었다. 항구라고 해서 수산물 시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온갖 기념품점과 레스토랑, 잡화점 등이 즐비해 있었다. 

위에서 바라본 Pier 39의 모습, 사진만 보면 여기가 항구인지 잘 모를 법도 하다.
H가 픽한 미니도넛 가게, 다들 도넛을 사기 위해 줄을 서있다.
항구 한쪽에 Sea Lion(바다사자) 들이 햇볕과 함께 관광객의 시선을 쬐며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


도무지 항구라고는 생각되지 않을정도로 다채로운 색깔의 간판과 매장,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있다.


H가 사 온 미니도넛을 집어먹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다. 항구가 이렇게나 아름답고 붐빌 일인가 싶을 정도로 잘 발달되어 있었다. 항구 한쪽에는 바다사자들이 데크 위에 올라와서 햇볕을 쬐며 자고 있었다. 수십 명의 관광객들이 몰려와서 동물원도 아닌 항구 한복판에 널브러진 바다사자들을 보느라 여념이 없었고, 바다사자들은 마치 그걸 의식하는 듯이 사람들이 많은 데크에 모여 있었다. 바다사자들처럼 아무 생각 없이 유유자적하는 삶은 어떨까 상상해보며 Pier 39를 나왔다.

Pier 39 입구에서 바닷바람에 나부끼고 있던 깃발들




Telegraph hill(텔레그래프 힐)에 위치한 Coit tower(코잇 타워)를 보러 이동했다. 이곳은 내가 학교를 다니며 친해진 샌프란시스코 출신 미국인 대학원생 Alexander에게 추천을 받은 장소들이었다. 당시에 펍에서 맥주 한잔을 하며 로컬로서 추천할만한 관광지를 물어봤는데, 본인 딴에는 한평생 살아온 곳이다 보니 볼게 썩 없을 거라고 멋쩍어하면서도 꼭 가보라고 한 곳들이었다. 

Telegraph hill 꼭대기에 세워진 Coit tower, 소정의 금액을 지불하면 꼭대기로 올라가 볼 수 있다. 별게 다 돈이다.


텔레그래프 힐은 바다 풍경과 육지 풍경을 동시에 볼 수 있다는 게 장점인 뷰포인트였다. 바다 쪽으로는  샌프란시스코 만을 잇는 기다란 Oakland bay bridge가 늘어져 있었고, 반대편으로는 바둑판 모양으로 늘어선 건물들의 행렬이 언덕길 아래로 도열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뒤쪽으로 Sanfrancisco Bay와 그 간극을 잇는 Oakland bay bridge가 보인다.
바둑판 모양으로 나눠진 구획과 표고차 덕분에 이런 뷰를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다.




언덕을 따라 쭉 내려가고 내려가다 보니, 샌프란시스코의 다운타운에 도착했다. 정말 전형적인 미국 다운타운의 모습을 하고 있다. 여태껏 미국에서 보기 힘든 오르막길과 항구, 그리고 외곽 지역만 다니다가 너무나도 전형적인 형태의 장소가 나타나니 오히려 어색할 정도였다. 

다운타운으로 내려가는 길
높은 빌딩들과 늘어선 차들, 전형적인 미국 다운타운의 모습을 하고 있다. 역시나 뒤에는 언덕이 보인다.
뉴욕의 Flat Iron 을 빼닮은 건물도 보였다.
건물 숲으로 인해 생긴 그늘 때문인지 상당히 쌀쌀하다. 다들 긴바지에 재킷 하나씩은 걸치고 다닌다.

하나 기억에 남는 점이라면 무지 추웠다는 것이다. 그래도 항구 쪽에서 햇빛을 쬐며 다닐 때는 잘 몰랐는데, 높은 빌딩들이 블록마다 그림자를 만든 데다가 바람까지 부니 쌀쌀함을 넘어서 한기가 느껴졌다. 길거리의 사람들도 가을철 옷차림으로 다니고 있었다.


머지않아 여행의 종착점인 Union Square(유니언 스퀘어)에 도착했다. 유니언 스퀘어의 한가운데에는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공을 세운 George Dewey 제독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Dewey Monument가 세워져 있었다.  

승리의 여신인 니케의 동상을 받치고 있는 Dewey monument가 유니언 스퀘어 한가운데 세워져 있다.
유니언 스퀘어 한쪽에 비둘기가 떼 지어 있었다.


주변에는 메이시스를 비롯해서 호텔, 백화점, 레스토랑 등등의 상업지구가 조성되어 있었고,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의 중심이라고 할만한 곳이었다. 뭔가 허름해 보이고 질서가 없어 보이기도 하는 샌프란시스코 거리를 보다가 나름 네모반듯하게 생긴 다운타운을 보니 사뭇 낯설어 보이기도 했다. 

유니온 스퀘어 앞에서 우버를 기다리며 샌프란시스코에게 작별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우버를 타고 왔는데 왠 테슬라 모델 3가 오는 게 아닌가? 주변에 테슬라 오너가 없던지라 나에게는 처음으로 경험하는 테슬라였다. 우버 기사는 한국인처럼 생긴 인상에 설마 했지만, 여기서 MBA 과정을 밟고 있는 몽골인 유학생이었다. 테슬라를 처음 타본다는 말을 듣고 테슬라의 미친 가속력과 각종 내장기능들을 보여주는 등 재밌는 체험을 시켜줬다. 


우버를 타고 집 앞까지 간 것은 처음이었는데, 숙소 근처 골목들이 생각보다 더 위험해 보였다. 건물 외벽마다 그려진 그래피티에, 여기저기 거리에 나앉은 홈리스들이 보였다. 이곳 로컬인 우버 기사는 이곳이 상당히 위험한 지역이라면서, 건물 바로 앞에서 우버를 타고 나가고 건물 바로 앞까지 우버를 타고 돌아올 것을 적극 권장했다. 


그는 농담으로 이것저것 테슬라의 기능들을 체험시켜준 것이 팁 5달러어치라는 말을 건넸지만, 우리는 테슬라 탑승 경험과 그의 친절함에 흡족했고, 그리고 같은 유학생 신분이라는 것에 동정심이 들어 진짜로 팁을 5달러 주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의 보낸 4일은 새로운 경험의 연속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보수적인 동네인 인디애나에서는 구경도 못해봤던 LGBTQ의 다양성 가치관을 상징하는 무지개색 깃발과 로고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고, 물가는 미국에서 한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수준이었고, 곳곳에는 전기차, 하이브리드 차와 노면전차가 다니며, 새파란 하늘과 낮게 뜬 안개의 흐름이 바다와 육지를 잇고 있었다.


글을 쓰는 이 시점에도 그 곳의 새파란 하늘과, 내 연약한 피부를 홀라당 태워버렸던 쨍한 햇살이 참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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