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세미티 국립공원 여행기
샌프란시스코에서 제일 바쁜 아침이었다. 오늘의 목적지는 Yosemite National Park(요세미티 국립공원)이었고, 우리 숙소에서는 편도로 4시간 정도 걸리는 곳이었다. 늦지 않게 가기 위해 아무리 늦어도 아침 7시 정도에는 출발하는 것이 목표였다. 새벽 5시쯤부터 지축을 울리는 I의 발소리에 잠이 깨어 나갈 준비를 시작했고, 이윽고 차를 빌리기 위해 숙소를 나서서 우버에 탔다.
이용했던 서비스는 'TURO'라는 차량 공유 서비스인데, 보통 잘 안 쓰는 세컨드 카를 가진 사람들이 차를 마냥 방치하기엔 아까우니, 이런 플랫폼에 그 차를 등록하여 소소한 용돈벌이 목적으로 쓰는 것 같았다. 차 주인의 집 근처에 도착하여 차주가 안내해준 대로 인근에서 차키를 찾아서 체크인을 했다. 차주와는 일절 마주칠 일이 없는 Contactless 서비스였다.
빌린 차는 2020년형 폭스바겐 티구안이었고, 미국에서 폭스바겐 CC를 몰던 나에게는 모든 것이 꽤나 익숙했다. 일행 중에 미국에서 차를 굴리는 사람이 나와 H 밖에 없어서, 1명은 갈 때 1명은 올 때 운전하기로 했다. I는 계속 조수석에 앉아서 DJ와 길안내를 전담했고, J는 자전거 여행에서 소진한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뒷자리에 앉기로 했다.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부터 1시간 정도 운전을 하니 황량한 들판이 펼쳐졌다. 워낙 건조한 곳이라서 그런지 파릇파릇한 풀보다는 갈색의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가는 길에 산을 끼고 오르는 굴곡이 심한 오르막길이 있었는데, 미국에서 그런 길은 처음 운전해보는지라 처음엔 감이 잘 안 잡혔다. 속도조절을 못해서 차가 커브길에서 튕기기라도 하는 순간 바로 옆에 보이는 낭떠러지로 직행하는 길이다 보니, 특히나 뒤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나의 위험천만한 운전에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고 한다.
3시간 정도 운전했을까? 요세미티 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했고, 안내부스에서는 내가 소지한 운전면허증과, 국립공원 연간 이용권(Annual pass)을 확인했다. Annual pass는 물론 일행이 십시일반하여 구입한 것이었지만, 뒷면에 사인한 사람과 운전면허증 소지자의 신분이 일치해야 입장이 가능했다. 확인이 끝나자, 직원이 공원 안내도를 건네주었다.
국립공원에 난 도로의 특징이라면, 왕복 2차로로 난 도로이면서, 중간중간에 오른쪽에 잠깐 차를 댈 수 있는 장소가 나온다. 이런 공간의 목적과 용도라면 캠핑카나 RV 차량같이 속도가 느린 차들이 뒤에 적체된 교통을 해소할 수 잠깐 길을 비켜주게 하는 것도 있지만, 정말로 멋진 풍경이 나왔을 때 잠깐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거나 시간을 보내다 갈 수 있게 해주는 용도도 있다. 가다 보면 유독 차 여러 대가 주차를 해놓고 있는 곳들이 있는데, 보통 그런 곳은 어김없이 훌륭한 뷰를 보여주는 곳들이라서 "뭔데, 뭔데", "뭐 보려고 저렇게 차들을 세워놓은 거야?" 하는 말을 중얼거리며 그들과 시선을 일치시켜보곤 한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El capitan(엘 캐피탄)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화강암 바위산이었다. 이 스페인어 이름의 뜻은 영어로 번역하면 'The Captain'이다. 본래 아메리칸 원주민들이 부르던 이 바위의 이름의 뜻을 그대로 해석해서 지은 명칭이라고 한다. 이 바위가 만들어내는 수직 절벽의 높이는 900m에 달한다고 한다. 1km에 살짝 못 미치는 그 낭떠러지가 웅장하게 서있는 모습이 자아내는 자연의 숭고함에 머리를 조아리게 될 뿐이었다.
엘 캐피탄은 세계에서 가장 등반하기 어려운 암벽으로 손꼽히고 있지만, 그 때문에 많은 암벽등반가들에게 도전과제로 남아있는 곳이라고 한다. 몇 번이고 이 웅장한 바위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차에서 굶주렸던 배를 채우기 위해 그늘진 곳으로 가서 I가 사두었던 샌드위치로 간단히 식사를 했다. 잠깐 앉아서 쉬던 곳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폭포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유량이 더욱 많았을 것 같은데, 가뭄 때문인지, 조금은 메말라 보였다.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Half dome(하프 돔)이었다. 90년대생이라면 학창 시절 유행하던 "교복 브랜드"인 'The north face(노스페이스)'를 다들 기억할 것이다. 마냥 저렴하지도 않은 가격에 부모님들의 등골을 휘게 만든다 하여 일명, '등골 브레이커'라고도 불렸던 것도 기억할 것이다. 그 시절에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입었던 것 같은데, 로고의 오른쪽에 그려진 저 사분원 모양의 무늬가 바로 Half dome을 북쪽에서 바라본, 'North face' 모습이다.
참고로, 브랜드 이름이 North face로 붙여진 이유는 보통 북반구의 산들에서는 공통적으로 북쪽면이 등반하기에 난이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고, 그런 악천후에서도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는 등산용품을 제공하겠다는 창업자의 모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아무튼, 이 로고가 비롯된 곳을 찾기 위해 요세미티를 안쪽으로 좀 더 운전을 해서 들어가니 기념품점과 간단할 먹을거리를 파는 Shelter 같은 곳이 있었고, 차를 세워놓고 그곳에서 간단히 둘러보다가 Half dome으로 향했다. 조금 걸어가다 보니 저 멀리 Half dome이 보였다. 특히 North face의 로고를 닮은 듯한 그 모습도 얼핏 나오는 듯했다.
Half dome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나있는 길을 따라서 트레킹을 시작했다. 가다 보니 우리를 어딘가로 안내하는 표지판이 나왔고, 우리는 많은 목적지 중에서 Mirror lake를 선택했다. 아무래도 덥고 건조한 날씨 때문에 호수를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트레킹을 계속하다 보니 곳곳에 동물 배설물이 보였다. 크기가 웬만한 초식동물이 만들어낸 사이즈가 아니어서 곰의 흔적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을 하면서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지만, 어느새 머릿속에서는 곰한테 습격당하는 장면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말이 공원이지 사실상 야생 속에 길만 내놓은 느낌이라 어디서 곰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번 여행을 기획한 I의 말에 따르면 공원 내에 모기가 많다고 해서 이 여름에도 긴바지를 챙겨 왔지만, 다행인지 아닌지 그 어느 곳에도 모기는 없었다. 아무래도 가뭄이 진행되던 때라 곳곳에 물이 많지 않아서 평소와는 달리 모기 씨가 말라버린 듯했다. 긴바지를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며 걷다 보니 어느새 들고 왔던 물 한 병을 모두 비우게 되었다. 워낙 건조하고 더운 날씨 탓에 들고 있던 물 조차도 금세 미지근해졌고, 코는 바짝 말라붙었다.
1시간 남짓 걸었을까? 목적지였던 Mirror lake에 도착했지만, 호수라고 부를만한 물은 좀처럼 찾기가 힘들었다. 겨우 발견한 것은 마르고 말라서 약간은 탁해져 버린 고인물의 웅덩이로 남은 호수(였던 것)이다. 원래는 더 넓은 호수 위에 거울에 비친듯한 요세미티의 아름다운 풍경 덕분에 Mirror lake라는 이름이 붙었다는데, 그런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는 없었다. 그나마 남아있던 호수에 가까이 다가가서 호수에 비친 바위들의 풍경을 찍어 보았다.
그래도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요세미티는 여전히 아름다웠고, 호수는 그저 거들뿐이었다. 모두들 트레킹의 종점에서 본 아름다운 풍경에 매료되어 한참을 바라보고, 사진도 찍고, 사진으로도 이 모습을 담지 못하는 것 같아 동영상까지 남겨두었다.
걸어온 길이 쉽지 않았던지라 돌아갈 길이 막막했지만, 다행히도 좋은 아스팔트 길을 찾아서 쉽게 돌아갈 수 있었다. 이렇게 쉬운 길이 있었는데 왜 그토록 힘든 길로 왔는지 살짝 허탈해지기도 했다. 어쨌든, 돌아갈 때라도 좋은 길을 찾았으니 천만다행이었다.
이렇게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짧고 굵게 둘러보고, 다시 주차장으로 향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는 H가 운전대를 잡았다. 돌아가는 길에도 계속해서 나타나는 멋진 자연경관에 선루프를 열고서 위를 올려다보며 공원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숙소에 돌아와서도 그 감흥은 좀처럼 가시질 않았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접한 미국의 국립공원이었다. 맨날 도시만 여행지로 찾는 나를 보며 미국에 오래 계신 지인께서 "미국은 도시보다는 자연이다, 도시는 보다 보면 다 똑같다"라는 말을 하셨던 기억이 났다. 그때는 들으면서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었고, 특히나 뉴욕을 여행하면서 역시 도시가 최고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자연이 주는 감흥은 인간이 만들어낸 피조물이 주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거대한 자연물들이 사방에서 나를 감싸고 있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세상에 던져진 한없이 작고 덧없는 존재라는 느낌이 들었다.
짧은 경험만을 바탕으로 "무엇이 더 멋지고 어떤 여행이 더 가치 있다"라는 식의 지극히 편협하고 주관적인 결론을 내리진 않겠다. 다만 도시밖에 여행해보지 않은 이들에게, 그리고 도시만을 고집하는 이들에게 미국에 왔으면 고생 좀 하더라도 National Park 하나쯤은 꼭 가보라고 권장하고 싶다. 어쩌면 앞으로의 여행지 선정에 있어서의 기준을 바꿔 놓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