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y mountin national park 여행기
콜로라도 여행도 후반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목적지는 Rocky mountain national park(로키 마운틴 국립공원)이었다. 콜로라도에 간다면 반드시 가봐야 할 여행지 중 하나고, 보통 사람들이 콜로라도로 여행을 간다 하면 스키나 보드를 타러 가거나 로키 마운틴 국림공원을 가는 게 대부분이다.
우리는 전날 결혼식이 열렸던 Colorado springs(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여정을 시작했고, 시간은 대략 2시간 30분 정도가 걸렸다.
로키 마운틴 국립공원에 가기 위해서는 Time ticket을 구매해야 한다. 보통의 국립공원은 이런 게 없었는데, 이번에 간 아치스 국립공원과 이곳 로키 마운틴은 희한하게도 Time ticket이 없으면 입장이 불가능했다. 다행히도 출발 전날에 원하는 시간대로 티켓을 구매했다.
얼마 가지 않아서 Estes Park라는 곳이 나왔고, 여기서부터 국립공원의 느낌이 물씬 나기 시작했다. 잠깐 내려서 사진을 찍고 조금 더 운전해서 가니, 마치 스위스의 인터라켄을 떠올리게 하는 도로를 지났고, 이어서 구불구불 이어진 산길을 통과하니 국립공원의 입구가 나왔다.
타임티켓을 좀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우리의 목적지는 Bear lake로부터 시작하는 Trail을 걷는 것이었다. 이 호수의 둘레길을 따라서 걸으며 구경을 하다가 다른 호수로 이어지는 산길을 걸어 올라가는 코스이다.
아쉬운 게 하나 있었다면, 하늘이 맑지 않았다는 것이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이 울상을 짓는 하늘이 호수의 아름다움을 반감시키고 있었다. 그래도 당장 비가 쏟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다행이라 여기며 산길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갈 수 있는 루트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많은 루트 중에서 우리는 일기예보와 일정을 고려하여 적당한 루트로 결정했고, Bear lake > Nymph Lake > Dream Lake > Emerald Lake로 이어지는 코스였다. 거리만 보면 1.8마일로 얼마 안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0.5마일을 걸어서 도착한 Nymph lake는 호수라기보단 늪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수생식물이 다른 어느 호수보다 많이 자라 있어서, 어디서부터가 물가인지 좀 헷갈리는 곳이었다. 그다지 대단한 건 없어서 잠깐 사진만 찍고 이동했다.
다음 목적지인 Dream lake로 향하는 길에서는 덩치 큰 Elk를 발견했다. 그런 큰 동물들을 동물원에서 보는 것과 울타리 없는 자연 한복판에서 조우하는 것은 상당히 다른 느낌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둘의 상호작용이 생길 수가 있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자리 잡으니 미묘한 긴장감이 돌면서도 신비로웠다.
마침내 Dream lake에 도착했다. Nymph lake 보다는 훨씬 넓고 길쭉했다. 저 너머에 산 중턱에 낀 구름을 보고 있노라니 마치 신선이 된 것 같기도 했다.
딱 마음에 드는 스팟이 있었는데, 웬 커플 하나가 10분 넘게 자리를 잡고 죽을 치고 있었다. 적당히 찍다가 결과물 좀 체크할 겸 비켜줄 줄 알았는데, 남자가 사진을 못 찍는 건지, 여자의 기대치가 높은 건지 거듭 그 자리에서 사진만 찍고 있었다. 결국 우린 다른 자리에서 그 커플이 안 나오게 사진을 건지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Emerald Lake로 가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머리가 축축한 채로 덜덜덜 떨면서 내려오는 게 보였다. 몇몇은 위험천만하게 뛰어다니기도 했다. 처음에는 윗동네부터 비가 오고 있어서 그런 건가 싶었는데, Emerald lake에 도착하고 나니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었다. 바로 이 호수에서 수영을 하다가 나온 것이었다.
다른 호수와는 다르게 여기는 꽤나 수심이 깊어 보였고 물도 맑아 보였다. 여름이라면 아마 최적의 물놀이 장소가 아닐까 싶었다. 역시나 한쪽에는 2명의 남성이 바위 위에서 다이빙을 하고 있었다. 날이 워낙 쌀쌀한 데다가, 여벌 옷도 챙겨 오질 않아서 다이빙은 안 하겠다고 다짐했으나, 그 아름다운 풍경을 오감을 이용해서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희번덕 스쳤다. 그리고 행동에 옮겼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
사실 머리부터 입수하는 다이빙은 못했다. 바지가 벗겨질 것도 같고, 괜히 이 산골짜기까지 여행 와서 다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물은 상당히 차가웠다. 나를 비롯해서 다이빙을 한 모든 이들이 입수하고 물에서 나오기까지 "으어어어어 추워"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수영을 하고,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한 세 번 정도 다이빙을 하고, 급하게 챙겨 온 겉옷을 입었다. 한기가 뼛속까지 스며들어서 어느새 나는 이를 부딪히며 떨고 있었다. 앞서 마주한 등산객들이 왜 그렇게 위험하게도 산을 뛰어서 내려왔는지 잘 알 것 같았다.
산을 내려오는 중에도 곳곳에 사진 스팟이 많았다. 저 멀리 날씨가 갠 곳도 보이고, 올라올 땐 못 봤던 풍경들도 보였기 때문이다. 내려올 때 보이는 장관들을 보며 문득 이 시가 떠올랐다.
그 꽃
-고은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우리는 너무 추워서 빠르게 산을 내려왔고, 사진을 찍기 위해 멈출 때를 빼고는 계속 빠른 걸음으로 하산했다. 그리고 차에 도착하자마자 좌석 히터(일명 '엉따')를 풀가동하고 몸을 마저 녹였다.
이것만 보고 가기엔 아쉬워서, 로키 마운틴 국립공원의 꼭대기인 Trail ridge 쪽으로 이동했다. 계속해서 굽이치는 도로를 오르고 올랐다. 중간중간엔 차들이 잠깐 정차하고 사람들이 나와서 뭔가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칠면조 무리, 다람쥐, 사슴 등등 다양한 야생동물들이 이 자연을 배회하고 있었다. 쌍안경이나 대포 렌즈를 들고서 이들을 멀리서 포착하려는 사람들도 종종 보였다.
여태 가본 서부의 국립공원들은 전부 사막에 위치한 것들이라 멋진 자연경관 속에서도 야생동물을 포착하기는 쉽지 않았는데, 로키마운틴에서는 툭툭 튀어나오는 야생동물을 볼 수 있다는게 다른 국립공원에 비해 도드라지는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고도가 계속해서 높아져만 갔고, 주변엔 안개인지 구름인지 모를 것들이 뿌옇게 퍼져 있었다. 외부 기온은 빠르게 떨어져 갔으며, 어느새 한여름에 8도까지 기온이 내려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아까부터 추웠던 탓에, 차문을 열기가 망설여졌으나, 어금니 꽉 깨물고 차에서 내렸다.
주변을 보니 풀들이 낮게 낮게 자라 있었다. 높은 나무도 드물었고 마치 한라산을 올라갔을 때 본 고랭지의 자연환경을 보는 것 같았다. 옆의 안내문을 읽어보니 실제로 'Alpine Tundra Ecosystem'이라며 이곳의 식생을 소개하고 있었다. 사시사철 추운 곳인가 보다. 이 식생이 분포하는 고도가 11,000피트에서 11,500피트 사이라고 하니 대략 해발고도 3300미터 정도 되겠다.
오래 있지는 못하고 너무 추워서 10분 만에 다시 차로 돌아왔다. 돌아갈 때 운전할 것도 생각해보니, 추운데 있다 따뜻한데 있으면 극도로 피곤해질 것 같아서 이쯤에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내려가는 길은 전부 급한 내리막길이라 열심히 엔진 브레이크를 쓰면서 내려갔다.
내려가자마자 평점이 좋은 쌀국수 가게에 들어갔고, 뜨뜻한 국물로 속을 덥혀주니 이제야 좀 살 것 같았다.
쌀국수 가게에 들어갈때쯤부터 비가 퍼붓기 시작하더니, 콜로라도 스프링스로 돌아갈 때까지 장대비가 쏟아졌다. 시야도 좋지 않아서 아슬아슬한 고속도로에서 덩치큰 트럭이랑 신경전좀 벌이다 보니 어느새 도착해 있었다.
로키마운틴 국립공원은 여태 다닌 '주황 빛깔' 국립공원이 아닌, '초록 빛깔' 국립공원 이었다. 광활한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동시에 이곳의 주인들인 야생동물과 울창한 수풀은 다른 국립공원에서 느끼지 못한 '생동감'을 선사해 주었다. 캠핑카만 있었다면 하루정도 묵으면서 산림욕을 하며 잠시나마 자연인이 되는것도 참 좋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