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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핀 Oct 10. 2021

사실 우리는 서로의 품이 그리울지도

<혼자 사는 사람들>(2021)


개인주의로 대변되는 요즘의 우리 사회에서는 혼자서도 무언가를 잘한다는 것이 미덕이 되곤 한다. 그만큼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자신이 맡은 몫을 충실히 해낼  있다는 뜻이니까. 혼자서 무언가를 잘하는 사람들을 위해 대화하지 않고 조용히 먹어야 하는 쌀국수 가게가 생기고, 옆사람의 말소리를 대신할 유튜브 콘텐츠들이 생기고, 사무실에는 서로의 눈을 마주치기 힘들 정도로 높은 파티션 생겨난다.


주인공 진아는 '요즘 사람'들이 다 그렇듯, 혼자가 편한 사람이다.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공감하는 것을 성가신 일로 여긴다. 이런 특성은 콜센터 상담사인 그녀가 늘 최고의 실적을 내게 한다. 고객과의 대화에 감정을 섞지 않고, 실수 없이 이성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그녀는 자신이 타인에게 무관심한 덕에 혼자서 무엇이든 잘 해내고 있다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관계에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서툴 뿐이라는 것을, 그래서 자신의 평화로운 일상을 지키기 위해 애써 사람들과의 관계를 회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진아의 모습은 온통 모순 투성이다.


그녀는 젊은 시절 가족들을 버렸지만, 건강이 악화된 후 가정으로 돌아온 아버지를 증오한다. 하지만 아버지 앞에서 자신의 분노를 드러내지는 않는다.


또, 더 이상 아버지와 얽히고 싶지 않아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산을 상속받는 것을 포기하면서도, 막상 아버지와의 관계를 끊어내지 못한다. 오히려 아버지의 전화를 항상 받고, 아버지의 집에 홈캠을 설치해 지켜보는 등 아버지에게 집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던 중, 인사조차 하지 않고 지냈던 옆집 남자가 포르노에 깔려 고독사 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진아는 왜 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냐는 이웃들의 질타로 인해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고, 그의 환영까지 보게 된다.



이런 과거의 관계의 통증과 잔여감은 그녀가 새로운 관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한다. 그래서 그녀는 새로운 관계의 형성을 막기 위해, TV와 핸드폰에 자신의 눈과 귀를 가둬버린다.


그러던 중 진아는 자신과 다른, 그래서 '혼자 사는 삶'에 균열을 일으키는 두 명의 사람을 만나게 된다.



첫 번째는 회사에 신입 상담사로 들어온 수진이다. 수진은 Ai처럼 전화를 받고 일을 처리하는 진아와 달리, 상담 중에도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고, 상대방의 감정에 공감한다. 욕설을 하며 갑질을 하는 진상고객에게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며 끝까지 사과하지 않는다. 또 사람들이 함께 부대끼며 같은 곳을 바라보았던 2002년 한일 월드컵이 그리워 시간여행을 하고 싶다는 고객의 외로움에 공감하며 자신도 함께 데려가 달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 수진을 보며 진아는 자신이 스스로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음을 반성한다.



두 번째는 옆집에 새로 이사 온 성훈이다. 성훈은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이사 하자마자 사람들을 모아 그 집에서 죽었던 남자의 제사를  준비한다. 죽은 남자를 보내는 것이 자신이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준비라 여기면서. 이날 우연히 제사에 참석한 진아는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는 제대로 된 마무리가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이를 계기로 진아는 감정노동을 버티지 못해 회사를 그만둔 수진과의 관계를 마무리하기로 결심하고, 먼저 전화를

건다.


"나는 수진 씨한테 제대로 된  작별인사가 하고 싶어요."


늘 고객들과 공감 없는 통화만을 했던 진아가 처음으로 하는 감정 섞인 통화이고, 그래서 서투르다. 하지만 그녀는 수진과  통화하기 위해 TV를 껐다. 이제는 서투르다는 이유로 타인과의 관계를 외면하지 않겠다는 다짐일 거다. 수진과의 작별인사를 통해 진아는 사람들과의 관계와 그에 대한 자신의 감정 앞에 당당히 설 용기를 얻는다.



진아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자신과 어머니의 사진이 버려졌던 자리를  찾아가 한참을 서있는다. 그리고선 긴 주저함 끝에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앞으로의 삶을 위해 어머니에 대한 감정들을 비워내고, 함께했던 시간들에 작별인사를 고한 것이다. 그리고선 아버지에게 전화해 솔직하게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고 아버지가 쓰고 있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핸드폰 번호를 '아버지'로 저장한다.


이렇게 과거의 인연과 그에 얽힌 자신의 감정 앞에 당당히 마주하고 작별 인사를 고했기에 진아는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성훈이 죽은 남자의 영혼과 작별인사를 해 아파트에서 새로운 삶의 출발을 할 수 있게 되었듯이.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과연 우리는 정말로 혼자가 편한 것이 맞는지.


이리저리 치이는 과정을 거쳐 누군가의 위에 올라야만 '성공'을 거머쥘 수 있는 경쟁사회에서 우리는 인연을 시작하고 끝내는 것에, 그리고 타인에 대한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에 너무 서툴러졌다.


 우리는 이런 서투름을 외면하기 위해, 혼자가 편한 것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은 누군가와 함께하는 시간을 그리워하면서.


고민 없이 서로를 끌어안고 온기를 느끼던 2002년이 그리워 시간여행을 하고 싶다던 이처럼 말이다.


영화를 보고 나니, 어젯밤 편의점에서 아무 생각 없이 집어온 '혼밥 도시락'의 맛이 문득 씁쓸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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