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며칠 전부터 기다리던 운동회가 오늘 이었다. 학부모로서 처음 참여하는 운동회라 그런지 아침부터 아이들보다 내가 더 설레었다.
코시국에 입학한 첫째에게는 초등생활 통틀어서처음이자 마지막인 운동회. 이유인 즉, 학교에서 예술제와 운동회를 격년으로 치르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에입학할 때부터 딱 터진 코로나 탓에 등교한 지 한 달도 안돼 온라인 수업이 계속됐고, 격리와 거리두기 등으로 각종 행사들은거의 3년 동안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나마작년부터 조금씩 정상화 됐고, 코로나 19의 엔데믹 선언으로오늘의 운동회를 맞을 수 있었다고 본다.참으로 감개무량하다.
'라떼는 말이야~~'
운동회 하면 모름지기 전교생이 모여 청팀과 백팀으로 나뉘어 열띤 응원하고 서로경쟁하는 것이었다. 치러지는 각종 경기의승부를 보는 재미는 물론이고, 학년마다 (최소 한 달은) 연습한 춤과 공연을 보는 즐거움도 쏠쏠했다. 나의 시절엔 저학년 땐 꼭두각시 춤과 부채춤, 고학년땐 마스게임이 국룰이었다.
게다가 맹렬하게 던진오재미가 터트린 바구니에서는 '즐거운 점심시간' , '신나는 가을 운동회' 따위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꽃가루와 함께 촤르르 떨어졌었다. 뻔히 알면서도 그 박 터트리기 게임이 얼마나 재밌던지. 그 어떤경기들보다 더 승부욕에넘쳤던 기억이 난다. (사실 운동 신경이 거의 '무'에 가까웠기에 손목에 동그란 등수 도장을 찍는 건 엄두도 못 냈다...)
만국기가 펄럭이는 운동장. 화창한 날씨. 운동장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펼친 돗자리 위에서 먹던 김밥은 얼마나 맛있었던가.
나의 옛 추억에 젖어 들어 아이들 운동회에 거는기대가 컸나 보다. 학교생활 알림장이 올라오는 앱, 하이클래스에 업데이트된 운동회 일정을 보니...?
두 학년씩 묶어 각 90분씩 진행하고, 점심은 급식이다. 이 간결한 운동회 일정은 코로나 여파인 걸까? 아니면 요즘 트렌드인 걸까? 내가 너무 '라떼'의 추억에 빠져 트렌드를 못 따라갔나 보다. 여하튼 학부모로 맞은 첫 운동회는 일정표부터 참 낯설고심플했다.
무언가 대단한 것을 기대한 건 아니었는데, 마음 한구석이 덜 찬 느낌이었다. 마치 맛있는 코스 요리를 먹는 중에 한 코스 스킵한 것 같은 기분? 배는 충분히 부르지만 뭔가 살포시 허전한 딱 고정도였다.무엇 때문일까?
운동회를 끝내고, 집에서 사진을 살펴보다가 문득 그 답을 찾았다. 오늘 운동회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사실. 나는 그 현장을 담아내는 사진사일 뿐이었다. 당연한 소릴 하고 있어? 하시겠지만 내 추억에 심취해 본분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 어린 시절 기억에 빗대어 허전함이 왔는가 보다.
짧지만 알차게 꾸려진 운동회. 아이들은 협동 게임에 장애물 달리기, 이어달리기도 했다. 운동회의 꽃인 계주는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며 역시나 모두의 마음을 졸이게 했다. 마지막엔 최신 유행 음악에 몸을 맡기고 흔드는 댄스타임까지. 90분을 꽉 채워서 즐기고 놀았다. 나 역시 사진 찍느라 바쁜 와중에도 아이들과 한 팀이 되어 같은 마음으로 응원했다.
훗날 오늘의 주인공들이 회상하는 운동회는 어떤 모습일까? 나의 운동회와 그들의 운동회가 같을 수는 없겠지만, 오늘의 흥겨움과 하나 된 마음은 재질이 비슷하지 않을까?
라떼까지 들먹여가며 과거 운동회 기억을 구구절절 소환한 것은, 그냥 애송이 학부모의 하소연으로 받아주실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