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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쌍이 Jul 04. 2024

덩그러니

개똥 (사진 혐오 죄송요)

 지나친 뒤에야 알았다.

너를 밟지 않아 참 다행이라고.

너는 쓸모없고 더럽고 냄새나고

혐오스럽다고.


싱그러운 봄날 산책길

그냥 지나치면 그만인 걸

웬 바람인지, 

가만히 들여다본다.


지나던 파리 한 마리 

네 위에 내려앉는다.

잠깐의 정적

봄 햇살처럼 쨍한 울림.


새싹과 꽃망울 움트고

곤충이 다시 날개를 펼 때,

너는 덩그러니 자리 잡고

작은 힘 보태고 있구나.


너의 근원이던 그곳에서

떨어져 나온 순간부터

잔해가 모두 사라질 때까지

앞으로의 소임 다 하겠구나.


나도 황망한 쉼을 멈추고  

나의 소임을 찾아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나야겠다.




 친구 따라 강남 가듯 들어갔던 회사에서 19년을 일하면서 건강이 많이 나빠졌어요. 퇴사는 작년에 했지만 이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벌써 2년이나 지난날을 끄집어내야 하네요.


 두 아이를 키우며 워킹맘으로 일하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어요. 근처에 사시는 시어머니의 도움을 받았지만 코로나 시기를 겪으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지요. 첫째에 이어 둘째까지 모두 코로나 시기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상황이 많았거든요. 연로하신 어머님께서 둘을 케어하기엔 부족함이 있었어요. 소위 말하는 구멍이 항상 생겼어요. 일을 가서도 아이들 혹은 학교, 학원, 시어머니의 전화가 빗발쳤지요. 그렇게 직장 생활을 이어가느라 생긴 저의 부재는 아이들과 저의 가슴에 작은 구멍처럼 생채기를 남겼나 봅니다. 그땐 늘 예민하고 뾰족했고, 말에는 항상 짜증이 묻어있었죠.


 아이들은 또 아이들대로 얼마나 힘들었을까요...하지만 당시에는 아이들 마음까지 어루만져줄 여유가 없었습니다. 직장, 집안살림, 아이들 학교와 학원, 시어머니와의 관계까지 신경 써야 할 것들이 가득 차 있었거든요. 그 무게가 너무 무겁고 버거웠지만 질질 끌고 가는 느낌, 딱 그거였어요. 꾸역꾸역 해가는 기분.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없다는 것도, 내가 꼭 필요하지 않다는 것도, 머리로는 잘 알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나 봐요. 일과 육아 둘 다 잘 해내고 싶었던 저의 욕심은 결국 마음의 병을 키웠습니다. 일하던 중에 공황발작이 왔어요. 갑자기 확 밀고 들어오더니 몇 분 후, 언제 그랬냐는 듯 싹 사라지더군요. 숨이 탁 막히며 곧 죽을 것 같은 느낌. 정신줄을 놓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심호흡하며 버텼어요. 그 짧은 몇 분이 정말 아득하고 길게만 그껴졌어요.

 그전에도 몇 번 가슴이 답답해지는 경험을 하긴 했었지만 낮잠을 자던 중에 느끼거나, 금세 사라져 모르고 지나쳤던 거였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다 공황장애의 증세라 하더군요. 이게 2년 전 가을즈음이었어요.


 그렇게 시작한 정신과 상담과 약물치료.

 예민한 성격 덕분일까요? 불행 중 다행이라고 증상 초기에 병원을 방문했고, 주된 스트레스의 근원이었던 회사를 퇴사하면서 치료는 6개월 (퇴사 전 3개월 +퇴사 후 3개월)만에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그 6개월 동안 치료와 휴식을 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 나는 무엇 때문에 치열하게 살았을까? 조금 느슨하게 살았다면 마음에 병이 생기지 않았을까? 나의 주된 소임은 이제 무엇이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계속 던졌습니다.

 아등바등, 꾸역꾸역 살던 날을 뒤로하고 다시 맞은 이른 봄.

 산책길에서 마주한 개똥을 보고 제가 저 글을 써놓았더군요. 브런치 서랍장에,

 덩그러니.

 


 

 공황장애 치료는 작년 3월에 마무리 되었고, 그 해 4월에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힘든 고비 하나를 넘으니 더 큰 고비가 온 격이였죠. 그 사고 이야기는 슬기로운 입원 생활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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