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에게는 금지된 것
무슬림이 멀리하는 두 가지는 돼지고기와 술이다.
그런데 나는 둘 다 좋아한다. 한국인에게 삼겹살에 소주는 ‘국룰’이지 않나?
아일랜드에서 집을 구할 당시 어떤 집을 보러 갔었는데, 같이 사는 사람이 파키스탄 사람이었다. 다른 건 다 마음대로 해도 되는데 딱 하나, 집에서 돼지고기만 요리하지 말라고 했다. 그때 나는 장기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을 찾는 것이 급했기 때문에, 순간 저 집에 들어갈까 생각도 했다. 돼지고기 그까짓 것 안 먹고도 살지!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1년은 어려울 것 같았다.
생고기뿐 아니라 햄과 소시지도 안되고, 살다 보면 어느 날 너무나 먹고 싶을 때가 생길 수도 있는데 스스로 괜히 그런 제한을 걸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안 갔다. 진짜로, 돼지고기 때문에 안 간 거다.
그랬던 내가 무슬림이 대다수인 나라에 와서 살고 있다니!
돼지고기도, 술도 좋아하는 내가 이슬람 국가에서 살 수 있을까? 남편과 결혼을 앞두고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일랜드에서 처음 만나 연애할 때부터 남편은 내가 뭘 먹는지에 대해서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한식당에서 본인은 소고기를 시킬 테니 내가 원하면 삼겹살 시켜서 불판에 반반 구워 먹자고 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좋았다.
막상 세네갈에 와보니 이곳은 외국인이 많아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다른 이슬람 국가에 비해 열려있는 느낌이다. 마트에 돼지고기도 팔고, 식당에도 가끔 있고, 술은 거의 대부분 판다.
그래서 불편함은 없는데, 대신 아쉬움이 생겼다.
남편이 한국 음식을 참 좋아한다. 그런 남편이 돼지고기를 안 먹어서 한국 음식의 절반을 모른다고 생각하니 좀 아쉽다. 내가 아는 그 맛을 같이 공유하지 못한다는 게.
그래서 가끔 ‘내 자식은 무슬림이 아니었으면…’ 싶기도 하다.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음식 때문에.
매콤한 제육볶음, 돼지고기 듬뿍 들어간 김치찌개, 지글지글 구운 삼겹살, 바삭바삭한 돈가스, 금방 나온 족발, 새콤한 냉채족발, 정구지 잔뜩 넣은 내 고향 부산의 돼지국밥, 김장 김치와 먹는 수육 등…
이 모든 것들을 같이 먹고 싶어서.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냥, 다 내 욕심이다.
사실 난 아주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어떤 남자들은 자기 부인이 돼지고기 구운 프라이팬 씻는 것조차 싫어서 돼지고기 먹는 집에서는 가사도우미 일도 못하게 한다는데, 내 남편은 나 먹으라고 베이컨도 구워주고 수육도 삶아주니 말이다. 평생 술이라고는 사 본 적도 없을 시어머니가 우리 가족이 세네갈에 왔다고 샴페인을 사다 주시기도 하고 말이다.
잘 먹고 잘 살고, 멀리서 봤을 때는 미처 알 수 없던 것들을 가까이 와서 다시 느끼고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