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안 보이는 길을 걷는다 해서 경치를 볼 자격이 없는 건 아냐
2024년은 공식적으로 반백수가 아닌 백수가 되어버린 한 해이다. 지난 3년을 돌이켜봤을 때 무언가를 성취했냐 하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없다. 개인적인 성장이 많았지만 어딜 가서 그걸 장황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사회가 원하는 건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남길 수 있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내 사업 아이템을 구체화시키고 디자인을 시작했다는 점. 하지만 앞으로의 구직 활동에 있어 사업 계획을 당당하게 말하며 직장을 구할 수는 없으니 그 역시 강제로라도 묵비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한 마디로, 내가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무언가를 쌓아 올렸다 할 만한 것은 없다.
하지만 나라는 개인에게 일어난 일은 정말 많았던 한 해이다. 스스로 '놀았다'는 느낌이 드는 건 싫어 뭐라도 했지만, 그러다 지쳐 시간이 남게 됐을 땐 괜히 자아에 관한 철학적 질문들도 던져보곤 했다. 그런 식으로라도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지난 3년간 내 상태는 늘 그랬다. 국내에서 일하기는 싫고, 그렇다고 전에 일 해본 같은 나라에서 살고 싶지는 않고. 그러다 연 초에 캐나다 워킹홀리데이에 1차 합격을 했고, 아버지의 (갈 거면 빨리 가라는) 떠밀림에 가장 날 좋다는 시기에 캐나다를 갔다. 컴포트 존에서 나갈 수 있는 가장 결정적인 명분이었다.
캐나다에 가기 전부터 이미 캐나다 경기가 안 좋고, 집값은 더럽게 비싸고, 그럼에도 사람은 많이 몰려 구직이 어려울 것이라는 말을 여기저기서 들어왔지만 타국에서 맨 땅에 헤딩을 해봤던 나는 다를 거라 믿었던 거 같기도 하다. 하지만 아니었다. 현실은 현실이었다. 나도 이제 30대이기에 아무 일이나 붙잡고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영주권까지 딸 정도로 절실하진 않았다. 경력이 없는 것도 아닌데 내가 왜?라는 오만한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캐나다 거주하는 3개월 동안 2곳에서 인터뷰 1차를 못 넘겼고 결국 나는 귀국하기로 마음먹었다. 뭔가 노력하면 다 얻어졌었던 과거와 달리 이리 허무하게 돌아가는 마음에 발걸음이 무거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선 다 해봤던 건 사실이다. 알뜰살뜰 요리하고 여기저기 집 구하면서 어딜 가도 죽지는 않겠구나라고 느꼈다. 그리고 귀국 보상으로 롱디 중이던 남자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남자친구와는 롱디로 시작해서 1년 반동안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이였다. 물론 친구로서는 4-5년 된 것 같다. 남자친구의 성격을 모르는 친구들은 쉽게 혀끝을 차며 어떻게 직접 만나보지도 않고 사람을 만나고 믿을 수 있냐고 말하곤 했지만, 나와 정말 친한 친구들은 그런 나를 보고 말해줬다. 이렇게 정서적으로 잘 통하고 맞는 사람 만나는 게 몇 천만 분의 1과 같은 확률이라고. 그러니까 꼭 만나고 오라고. 그래, 보고 싶은 것도 보고 싶은 거지만 어쩌면 나도 더 큰 확신을 할 수 있으니 여행비를 들여도 잃을 게 없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그 친구들의 기대는 저버려지지 않았다. 이 기회에 남자친구는 나를 가족에게 소개해줬고 나는 환영을 받았다. 우리가 자라온 환경은 달라도 꽤나 비슷한 가정에서 자랐다 생각해 왔던 예상 역시 적중했던 건 남자친구의 부모님이 우리 부모님과 많이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알게 된 년수로도 충분히 어떤 사람인 지 알고 있었지만 이번 2주가량 같이 지내면서 더 확신할 수 있었다. 우리는 천생연분이라고. 실제로 본 남자친구는 뭘 해도 될 사람이라는 느낌을 내게 강렬히 심어주었고 그가 준 약혼반지는 그 진심이 담겨 한껏 빛나고 있었다.
공항에서 헤어질 땐 용감하게도 울지 않았다. 무조건 다시 볼 거기 때문에 울지 말자던 남자친구의 말에 방울지던 눈물도 쏙 들어가 버렸다. 귀국 후엔 우리 둘에게 큰 목표가 생겼던 것 같다. 이전엔 캐나다에서 함께 살림을 차리는 꿈을 꿨는데, 그 방향이 국내로 바뀌었다는 점. 가장 단순했지만 가장 미루게 되었던 종착지, 대한민국. 그 목적이 생기니 방향이 생겼고, 방향이 생기니 플랜 A, B, C가 다 망가져도 상관이 없었다. 다시 걸어야 할 길이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두통이 생길 만큼 걷고 또 걸어도 보이지 않던 그 길에 잠시 멈춰 서 경치를 보지 않았더라면 과연 새로운 길이 그려졌을까. 2025년엔 이 모든 현재진행형을 현재완료와 미래완료로 바꾸고 싶지만 욕심 내진 않고 조심스레 3년을 잡아본다. 그냥 조만간 혼인 신고 하고 남자친구를 한국으로 데려와 같이 살림 시작할 방법도 있겠지만, 부모님께는 과정보단 조금 더 결과로 설명하고 싶기에. 우선 그러기 위한 바탕으로 내가 국내에서 취직을 하는 게 우선이었다. 이렇게 방향을 잡고 나니 국내 구직을 마다하지 않게 됐다. 힘을 내서 2025년을 빛나게 살아보자. 국내에서마저 타지로 떠날 가능성이 큰 나는 오늘도 여전히 정착하고 싶은 영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