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5일, 경칩(驚蟄)
점심시간의 카페는 활기로 북적였다. 약속 장소인 카페 카운터 구석 테이블에는 한 남자가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다. 나도 그도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는 것을 서로의 뒷모습과 기척으로 눈치챘다.
나는 인사 대신 가볍게 말을 건넸다.
“일찍 오셨네요?”
마치 어제 만난 사이처럼 건넨 인사였다.
유독 큰 눈과 밝은 갈색 눈동자를 가진 그는 잠시 긴장한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가볍게 숙이며 미소 지었다.
사실 나는 이 사람을 잘 알지 못한다.
3, 4년 전쯤이었을까. 가까운 후배의 소개로 인사했던 예술가 커플. 청계천 세운상가에서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던 현장을 우연히 마주친 것이 첫 만남이었다. 그는 밴드에서 음악을 했고, 아내와 함께 영상 작업도 한다고 했다. 경계 없이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소리를 빚어낸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그때 나는 집에서 잠자던 신디사이저 하나를 그에게 건넸다. 당시에는 그저 깜찍한 디자인에 반해 샀지만, 정작 건반 한 번 제대로 눌러본 적 없는 물건이었다. 어차피 내가 쓸 것 같지 않으니, 차라리 그가 사용법을 익혀 나중에 내게도 알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돌이켜 보면 그 호의 안에는 작은 계산도 섞여 있었던 것 같다. 언젠가 이 신디사이저를 매개로 그와 함께 작업할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선의로 포장된 막연한 기대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그런 얕은 꾀는 오래가지 못했다.
곧 팬데믹이 시작되었고 세상은 빠르게 닫혔다. 제주도에 터를 잡은 그 커플과도 자연스럽게 소식이 끊겼다. 그 신디사이저가 어느 구석에 놓여 있는지조차 잊어버릴 만큼 긴 침잠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최근 문득 그 악기가 떠올랐다. 이제는 내가 그것을 사용할 이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보낸 메일에 그는 마침 서울 일정이 있다는 답을 보내왔고, 우리는 그렇게 몇 년 만에 다시 마주 앉게 되었다.
그는 이제 밴드 활동보다 연극이나 영화 음악 작업에 더 몰두하고 있다고 했다. 안 본 사이 놀랄 만큼 많은 작품에 참여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괜히 마음이 흐뭇해졌다. 누군가 묵묵히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이 있다.
이야기는 최근 내가 준비하는 프로젝트에 맞물려 자연스레 뿌리에 대한 기억으로 흘러갔다. 그의 부모님도 내 아버지처럼 황해도에서 전쟁을 겪고 내려온 실향민이라고 했다. 내 가족은 대전에 자리를 잡았고, 그의 부모님 역시 대전을 거쳐 서울에 정착했다. 그는 지금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살고, 나는 젊은 날의 마포를 떠나 이제 사대문 안쪽에 자리를 잡았다.
각자의 삶은 다른 방향으로 흘렀지만, 묘하게 겹치는 궤적들이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몇 년 만에 내 품으로 돌아온 신디사이저 케이스를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때 나는 왜 이 악기를 그에게 건넸을까.'
아마도 그것은 인연의 실마리를 억지로라도 쥐고 싶었던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보니 인연이라는 것은 그렇게 애쓴다고 해서 매듭지어지는 종류의 일이 아니었다. 오늘 그를 만나러 가는 길에도 어쩌면 함께 작업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스치긴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것이 필연이든 우연이든, 내가 억지로 끌어당긴다고 되는 일이 아님을.
이번에는 마음을 조금 다르게 먹기로 했다.
무언가 결과를 만들기보다는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고, 그가 만드는 음악을 진심으로 이해해 보는 것. 창작이라는 일이 얼마나 고되고 외로운 행위인지 나 역시 잘 알고 있으니까.
고풍스러운 한옥과 트렌디한 카페가 늘어선 거리를 지나며 우리는 마지막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다들 '이 사람 뭐야'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네요. 하하.”
그의 말대로였다. 크지 않은 키에 덥수룩한 수염, 상투를 튼 것처럼 묶어 올린 머리는 서울의 번화가보다는 제주 시골집 마루가 더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우리는 그 이질적인 풍경 속에서 낄낄거리며 작별 인사를 나눴다.
집으로 오르는 마지막 오르막길에서 작년 늦가을에 보았던 새끼 길고양이 형제 중 한 마리가 보였다. 그사이 제법 자라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고양이식 인사로 눈을 깜빡여 봤지만, 아기 고양이는 나를 잠시 응시하더니 이내 산마루로 날쌔게 사라져 버렸다. 모진 겨울을 어디선가 무사히 버티고 살아남았다는 것 확인하니 기특하고 어쩐지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경칩(驚蟄)이 지나자 집안의 식물들도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동네 곳곳에는 보이지 않던 길고양이들이 볕 좋은 곳에 누워 봄볕을 쬐고 있다.
여전히 케이스 안의 신디사이저를 책상 위에 두고 잠시 생각에 잠긴다.
인연이라는 것도, 아마 이런 계절 같은 것인지 모르겠다. 억지로 부르지 않아도 때가 되면 오고, 가야 할 때가 되면 멀어지지만, 결국 어느 볕 좋은 날 다시 마주치게 되는 그런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