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무게, 21그램

2월 18일, 우수(雨水)

by missingcow

필라테스를 시작하고 나서 바닥에 누워 몸을 확인하는 시간이 생겼다.


골반이 바르게 바닥에 닿아 있는지, 어깨가 들려 있지 않은지 느껴 보려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다. 몸은 늘 곁에 있었으나 그 감각은 생경하리만치 희미하다. 비로소 걷는 순간마다 내 안의 뼈들이 어떻게 맞물려 움직이는지 상상하게 된다.


얼마 전, 병원에서 마주친 청년의 꼬물거리는 무릎이 떠오른다. 종아리가 사라진 무릎 위로 여전히 건재하다는 듯 미세한 근육들의 움직임이 보였다. 청년의 의족은 꽤나 무거워 보여서 족히 10kg은 넘을 거라 예상했지만, 의사는 고작 4kg이라고 했다. 그리곤 사람의 한쪽 다리는 무려 10kg 안팎의 무게라고도 알려준다.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다리의 무게이다. 나와 함께 태어나, 함께 소멸할 운명인데도 그저 체중계의 숫자정도로만 인지하며 살아왔다는 것이 참으로 놀라울 지경이다.


대부분의 환자가 국가유공자인 병원의 대기실과 복도는 물론 점심시간을 맞이한 식당 안에는 노인들이 가득했다. 젊은 나이에 나라를 지키겠다고 전쟁터에 나가 사지를 잃고, 지금은 노쇠한 몸이 되어 버린 상이용사들이 휠체어에 앉아 있는 모습이 마치 신체에 남은 전쟁의 흔적이 사라지고 있는 풍경처럼 보인다.


1901년, 미국의 내과의사 던컨 맥두걸은 인간 영혼의 무게를 재는 연구를 하고, 그 무게가 21그램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동물에게는 없는 오직 인간만이 지닌 영혼을 입증하려는 실험.


어째서 이런 오만한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우월과 열등을 분류하는 행위가 영혼이라는 고귀한 비물질을 과학적 실험을 통해 증명하겠다는 것이 참으로 모순적이다.


만약에 영혼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실험결과의 기록이 아니라 내가 그날 마주쳤던 노인들 생의 어느 순간에 있었을 것이다. 움직이던 무릎, 휠체어의 속도, 닳아 가는 흔적들이 그 흔적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마치 내 몸에 붙어 있는 다리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도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설날이 지나고 우수(雨水)가 지났다. 본가에서 돌아오니, 튤립이 이파리를 펴고, 히야신스가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다. 모두가 아는 입춘(立春)과 경칩(驚蟄) 사이의 숨은 절기 우수(雨水)처럼 — 어떤 존재는 특별히 드러나지 않아도 없어서는 안 될 변곡점이 되어준다. 그 노인들의 시간이, 그 무릎의 움직임이 그랬던 것처럼.


24 절기의 두 번째 절기가 사뿐하게 봄과 함께 내려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