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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드리절트 이승민 Jan 02. 2021

법정스님한테 말씀들으러 가면 듣는말

가을 산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예고도 없이 불쑥 들어선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는 것이 내 첫인사말이다. 

"그저 와 보았어요"

"큰절까지 왔다가 한번 올라와보았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이같이 말하면서 기웃거리다가 이내 내려간다. 아무 구경거리도 없는 어설픈 암자이기 때문이다. 개중에는 간혹, 좋은 말씀 듣고 싶어 왔다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분들에게 나는 한결같이 산이나 바라보다가 가시라고 일러준다. 눈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내게 좋은 말이 있을 턱이 없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말이기로 자연에 견줄 수야 있겠는가. 자연만큼 뛰어난 스승은 그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사람의 말이란 자연에서 치면 한낱 파리나 모기 소리와 같이 시끄러움일 뿐이다. 



법정스님은 자기한테 말씀을 들으러 온 사람들에게 "산이나 바라보다가 가시라"고 하셨다고 한다.  무소유정신으로 유명한 분이지만, 그에게 무소유는 자연에게 배운 많은 가르침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는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결코 자연에는 견줄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의 책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어떤 책에서 읽은 이야기인데, 염직의 세계에서 뛰어난 어떤 사람은 식물에서 염료를 추출, 실을 물들이는 일에 평생을 바쳐왔다고 한다. 한번은 봄눈에 꺾인 벚나무 가지를 자르고 있는 분한테 가지를 얻어와 그 길로 솥에 넣고 삶았더니 벚꽃과 똑같은 빛으로 물들더라는 것이다. 

  벚나무는 그런 빛깔의 꽃을 피우기 위해 한겨울에도 안으로 물감을 마련하면서 산 것이다. 봄철에 꽃을 피울 때까지는 나무는 1년 동안 생명력을 기울여 꽃의 혼을 잉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엄숙한 사실을 알 때 어떻게 함부로 꽃가지를 꺾을 수 있겠는가. 말은 없지만 나무가 얼마나 아파하고 한스러워하겠는가.

  그 염직가는 9월의 태풍에 큰 벚나무가 넘어졌다는 말을 듣고, 달려가 가지를 한아름 얻어다 물들여보았지만 이때는 전혀 다른 빛이었다고 한다. 식물은 그 시기가 있기 때문에 그 적기를 놓치면 그 빛을 볼 수 없다. 비슷한 빛깔은 낼 수 있어도 그 정기는 벌써 꽃과 함께 날아가버린 것이다. 



참 재밌는 내용이다. 봄눈에 꺾인 벚나무 가지를 가져다 솥에 삶으면 벚꽃과 똑같은 빛으로 물든다고 한다. 그런데 완전히 넘어진 나무를 가져다가 물들이면 전혀 다른 빛이 돈다고 한다. 생명이 끊어지면 꽃의 혼이 끊겨 빛깔도 돌지 않는 것이다. 

법정스님은 말한다. 벚나무는 그렇게 아름다운 빛깔의 꽃을 피우기 위해 1년 동안 생명력을 기울여 꽃의 혼을 잉태한 것이라고. 자연의 아름다움은 그저 무심한듯 반복되는 것 같지만, 내면으로는 얼마나 온힘다해 아름다움의 혼을 잉태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법정스님이 자기의 말씀을 들으러 온 사람들에게 산이나 보고 가시라고 답하신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는 이어 말한다. 



산에 오면 우선 '그 사람'으로 부터 해방이 되어야 한다. 되지도 않은 말의 장난에서 벗어나 입 다물고 자연의 일부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밖으로만 팔았던 눈과 귀와 생각을 안으로 거두어 들여야 한다. 그저 열린 마음으로 무심히 둘레를 바라보면서 쉬어야 한다. 복잡한 생각일랑 그만두고 가장 편안한 마음으로 자연의 숨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 밖에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강원도 산골로 잠깐 떠나기 전에 오랜만에 법정스님의 책들 중 한권을 펴니 마음이 참 좋다. 2021년을 시작하는 즈음에 모처럼 도시를 떠나 자연의 숨결을 느낄 생각을 하니 무척 마음이 설렌다.  


*인용글귀: 법정, '텅빈충만'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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