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조성진에게 배우다(3)
꽤 오래전 일이지만 교사 시절 겪었던 교원능력개발평가가 생각난다.
먼저, 학생들은 수업하시는 모든 선생님을 평가한다. 평가 대상, 평가 항목이 워낙 많기에 대체적으로 대충 하는 듯하다. 서술형으로 답하는 문항에서는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기도 하고 그동안 쌓아왔던 악감정을 토로하기도 한다.
다음, 선생님들은 같은 교과 선생님을 서로 평가한다. 평가 항목이 많아도 평가 대상은 적다. 바로 내 옆, 건너편에 앉아 있는 선생님을 평가하는 것이기에 신중을 기한다. 빌런이라도 있다면 티 나지 않게 부정적 평가를 내려야 한다.
평가 결과를 보는 날이 오면 살 떨린다. 대충 평가했던, 신중하게 평가했던지 간에 평가받는다는 건 두렵고 떨리는 일이다. 교무실 여기저기서 탄식이 흘러나온다.
“내가 차별을 한다고?”
“내가 수업 준비를 안 한다고? 밤새 수업준비해서 들어갔더니 이런 말을 써놨네 하...”
좋은 칭찬받은 것에는 말이 없고, 대부분 부정적 피드백에 억울해하고 속상해한다. 나 역시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동료 교사 평가의 내용 중에 기숙사 사감업무를 별 거 아닌 것으로 간주하며 수업시수를 줄여주는 등의 특혜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피드백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뭐라고?!!’
당시 나는 특별 기숙사 사감이었다. 그 보직은 모두가 꺼리는 자리였다. 주말과 공휴일 자습감독은 물론이고, 매일 늦게 자고 새벽에 학생들을 깨워 학교에 보내야 하니 무엇보다 육체적으로 너무 힘든 보직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막 신혼살림을 차린 나에게는 너무 부담되는 업무였다. 그래도 그나마 나처럼 젊은 남교사가 담당하는 게 순리에 맞다고 생각했고, 명문대 진학생을 많이 배출하면 학교 명예도 높일 수 있으니 좋은 일이라 억지로 스스로를 달래 가며 겨우 받아들인 제안이었다.
그렇게 헌신한 나에게 수업시수조차 줄여주기 아깝다고?!
그리고 나는 사감을 그냥 하지 않았다. 자습만 많이 시키면서 그저 밥 잘 먹이고, 잠만 잘 재우면 된다고 생각지 않았다. 유명 입시학원의 프로그램들을 조사해서 우리 기숙사에 맞는 학습 플래너를 개발하고, 생기부를 더 풍성하게 채울만한 독서프로그램도 운영했다. 거의 매일 영단어 시험을 200개씩 보고, 새벽 2시까지 대면 상담도 진행했다.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었다. 그저 그렇게 적극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최대한 하는 것이 학교와 학생들을 위하는 길이라 생각했다.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 나에게 그런 평가를?!!!
심장이 쿵쾅쿵쾅. 진정이 되질 않는다.
‘도대체 누굴까? 어떻게 저런 소릴 할 수 있나!’
명탐정 코난이 되어 범인을 추리하기 시작한다.
사람은 그렇게 ‘박한 평가받는 것’에 가장 박하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유퀴즈에 출연한 영상을 보았다. 조성진이 우승을 거머쥔 제17회 쇼팽국제콩쿠르의 뒷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한 심사위원이 결선에서 조성진에게 10점 만점에 1점을 준 것. 그럼에도 2위와 5점 차로 우승을 차지했다.
유재석이 묻는다.
“최종라운드에서 10점 만점에 1점을 준 심사위원이 있었다고 해요?”
조성진이 대답한다.
“저는 그냥 그런 의견도 있다고 받아들였고..”
물론, 우승하였기에 넉넉한 마음으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주목하는 점은 대다수가 만점에 가까운 평가를 할 만큼 아름다운 연주를 보여줬음에도 누군가는 1점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공신력 있는 세계적인 대회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데 우리 일상생활에서야 말해 무엇할까.
우리가 최선을 다해도, 아무리 잘 해내어도 우리를 싫어하는 사람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우리에게 최하점을 주며 앞길을 막아서기도 한다.
명탐정 코난이 되어 최하점을 준 ‘그 빌런’을 찾게 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더욱 괴로워질 뿐이다.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의 ‘미움받을 용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유란 타인에게 미움을 받는 것
남이 나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든 마음에 두지 않고, 남이 나를 싫어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인정받지 못한다는 대가를 치르지 않는 한 자신의 뜻대로 살 수 없어. 자유롭게 살 수 없어. 자유롭게 살 수 없지.(187p)
다면평가에서 누군가 최하점을 주었다면 명탐정 코난이 되지 말자. 미움받을 용기를 내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나는 아무렇지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