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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May 24. 2024

5년차 밴드의 ‘쿨러’챕터, 내년 2집 앞둔 보수동쿨러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눈 아티스트들의 인터뷰 아카이빙

지금까지 진행했던 인터뷰들을 아카이빙 해봅니다 :)  
사라진 매체도 있고, 찾아보기 어려운 매체도 많아서 브런치에 조금씩 아카이빙 합니다. 

인터뷰는 모두 제가 직접 섭외, 진행 했습니다 :) 


오랜만에 공연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딱히 슬프지도, 힘들지도, 무엇보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의 가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의 목소리와 연주의 조화는 내가 단련해 온 단단한 슬픔을 부스러트린다. 곡에 대한 생각으로 밤을 하얗게 지새우게 하는 아련한 슬픔이 있다. 나는 보수동쿨러의 오래 지켜봐 왔다. 한 때 그들이 다시는 활동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이들은 무너져도 다시 솟아오르고, 부스러져도 다시 밀려 쌓이는 모래처럼 내일을 향해 일어섰다. 보다 더 짙은 슬픔과 포효로 광활한 황무지 위에 바스락거리며 휘날리는 눈 같던, 모래 같던 이들은 어느덧 낭랑하고 반짝이는 희망과 용기를 살포시 바람결에 품고 다시금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 

작년에 발표한 정규1집 ‘모래’ 이후 보수동쿨러는 ‘James’와 ‘Betty’라는 두 곡의 싱글을 발표했다. 지금은 2024년 4월 정규 2집을 준비 중이다. 번데기가 허물 벗듯 멈춰 있던 자신들의 과거를 벗고 새로운 밴드로 거듭나고 있다. 향기로운 풀밭에 몸을 던지고, 높은 미끄럼틀을 타고 내리며, 자유롭고 생동감 넘치는 삶의 향기를 온몸 가득 베게 삼으며 미래 보수동쿨러의 실체를 만들어간다. 아쉽게도 이제 우리는 공연장에서 <모래>(2021) 이전의 이들의 곡은 들을 수 없다. 하지만 그만큼 보수동쿨러 새로운 각오는 다부지다. 밴드로서의 삶에 새로운 생명수를 쏟아붓기 시작한다.

9월의 보름달이 아름답게 빛나고, 밤의 숨결과 바람의 움직임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던 가을 밤, 꽃집처럼 예쁜 보수동쿨러의 멤버 구슬한의 집에서 나는 보수동쿨러를 만나 까만 아기 고양이 ‘머고’의 울음소리와 함께 향기로운 차 한잔과 함께 밤새도록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왼쪽부터 이상원, 김민지, 최운규, 구슬한


Q 안녕하세요? 밴드 및 멤버 소개 부탁드립니다.

구슬한 저희는 부산의 밴드 보수동쿨러고요, 저는 작곡과 작사를 하고, 기타를 치고 있는 구슬한이라고 합니다.

이상원 저는 베이스를 치고 있는 이상원입니다.

구슬한 상원이는 뭐랄까 중립을 지키면서 조율을 하는 역할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밴드 내 의견 같은 게 나뉠 때 중용을 지켜주는 판사 같은 역할을 하고 있죠.

김민지 저는 기타치고 노래하는 김민지라고 하고요, 유일한 여성 멤버입니다. 그래서 남성들이 못 보는 다른 점을 좀 보는 것 같아요. 저도 저희 팀이 올바른 방향으로 갈수 있는 방법이 뭘까 항상 고민하는 편인 것 같아요.

최운규 저는 드럼 치는 최운규라고 하고요. 주로 페이퍼 업무나 사무업무, 그리고 돌아가면서 다양하게 많은 일을 하고 있는데 주로 돈과 관련한 재무, 매니지먼트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Q 오늘은 올해 새 싱글 ‘베티’와 ‘제임스’를 중심으로 보수동쿨러의 근황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우선 가장 최근에 나온 ‘베티’는 여행 갔을 때 미끄럼틀을 타는 외국인 소녀를 보고 그 용기에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고 콘서트에서 말했어요.

구슬한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은 목장을 페스티벌 부지로 만들어 진행하는 곳이에요. 거기가 히피 페스티벌로 유명해서 천막치고 자고, 샤워 같은 것도 잘 못하고, 먼지도 많고 그런데요. 자연으로 돌아간 듯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영국인데 그땐 마침 날씨가 너무 좋았어요. 바람도 선선하고 비도 오지 않아서 평화와 사랑, 자유의 감정을 어떻게든 풀어내고 싶다라는 마음을 갖게 됐어요. 그러다 페스티벌 장내를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그 곳 부지가 넓으니까 재밌는 부스가 되게 많아요. 아침에 요가를 함께 하거나 한 곳에는 엄청 큰 미끄럼틀이 있는데 작은 여자아이가 20분 가까이 낑낑대며 거길 올라갔다가 내려가질 못하고 있었어요. 물론 결국엔 용기를 내서 겨우 내려왔는데 주변에서 엄청 박수를 많이 쳐주고 다들 격려를 하는 거예요. 그 모습을 보면서 아직 세상은 살만하구나라는 좋은 감정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베티’ 후렴부 가사에 “너가 원하는 건 그렇게 너가 원하는 걸 이루는 것으로 이루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다.” 이런 말들을 넣게 됐어요.

사실 지금까지 보수동쿨러의 곡들은 조금 우울하거나, 자조적이거나 일상의 균열 같은 걸 많이 얘기했어요. 그런데 ‘베티’는 ‘보수동쿨러’라는 이름이 있을 때 이중에 ‘쿨러’에 맞는, 비교적 시원한 곡이 아닌가 싶어요. 사실 처음으로 이런 곡을 만들고 발표하게 된 것 같아서 너무 좋아하게 된 곡입니다.

김민지 싱어송라이터 신해경씨가 얘기하더라고요. 베티를 듣는데 되게 의외였다고. (웃음) 보수동쿨러도 이런 음악을 해? 같은.

최운규 저희도 너무 밝아서 당황했습니다. 구슬한씨가 메인으로 이 곡을 만들었다는 것이 의외의 포인트이기도 하고요.


Q 베티는 소녀의 본명인가요?

최운규 아니요, 전혀 모르는 아이에요.

구슬한 ‘헬렌’(내년 발매할 신곡)도 그렇고, ‘베티’도 그렇고, 이렇게 누군가의 이름으로 제목을 많이 짓게 되는데 딱히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제임스’(2023년 발매 싱글)도 이름에는 큰 이유가 없고요. 곡을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이름의 이미지가 종종 있는데, 그걸 가져와서 쓰는 편이에요. 듣는 사람에게는 그들에게 맞는 이미지의 사람이 떠오를 거라고 생각해요. 듣는 사람이 상상하는 대로 판단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이름 제목을 자주 쓰게 되는 것 같아요.

‘베티’ 티저에는 영국에서 찍는 미끄럼틀을 타는 소녀 영상이 나오는데, 나중에 연락오면 덕분에 좋았고 영감을 주고 좋은 곡을 만들게 해줘서 고마웠다고 전하고 싶어요. 김과자 같은 것도 주고.

최운규 그 소녀에게 연락하고 싶고 티셔츠도 보내주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네요.

김민지 보면 연락줘! 


Q 처음에 슬한 씨가 말한 것처럼 그간 보수동쿨러의 곡들은 슬픔이나 일상의 우울감을 많이 이야기했어요. 물론 그 속에서 작은 희망이나 행복을 찾으려는 부분들이 있었다고 하지만 듣는 사람이 처음 느끼는 감정은 그랬고, 이후 그 속에서 뭔가를 찾아내는, 감정의 파도를 느끼는 과정이었어요. 하지만 ‘베티’는 직접 환호도 보내고 용기도 내라고 응원도 하는 그런 행복의 이미지가 가득해서 페스티벌에 어울리는 곡이라고 생각했어요.

구슬한 맞아요. 그래서 약간 더 늦게 발매할 수도 있었는데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섭외가 되자마자 이건 무조건 펜타포트에서 사람들이 따라 불러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팬들이 숙지할 기간이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무조건 7월에는 내겠다고 계획했어요. 게다가 저희가 원래 안 하던 걸 한 거잖아요. 처음 녹음하고 준비할 때 많이 어색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하고 나니 이런 밝은 에너지도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경계를 두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죠. 


Q 이 곡이 1집 <모래> 다음에 나온 곡이라 그런지 좀 더 대비되는 것 같아요. 사실 보수동쿨러가 처음 데뷔했을 때 나왔던 곡 중에는 가사를 떠나서 템포나 분위기가 빠르고 밝은 곡도 좀 있었잖아요. 그때로 돌아간 느낌도 조금 있어서 반갑기도 하고 새롭기도 했어요. 앞으로는 어떨까요?

구슬한 2집은 1집에 비하면 훨씬 더 밝고 명랑한 편일 것 같아요. 훨씬은 아니고 조금 더? 우리 기준에서는 명랑하지만? (웃음)


Q <모래>는 <모래>만의 콘셉트가 있어서 트랙의 처음부터 끝까지 스토리가 이어진다고 해야 할까요? 감정선이 이어져 고조됐다가 마무리되는 느낌이 있어요. 다음 앨범도 그런 감정선이 있을까요?

구슬한 감정선의 콘셉트가 앨범 단위로 크게 흐를 것 같진 않고, 이번에는 사운드에 좀 더 집중하게 된 것 같아요. <모래>를 발매하면서 사운드 콘셉트에 확실한 변화가 있었던 것 같아요. 좀 더 어쿠스틱한 사운드에, 좀 더 밴드적인 사운드들을 중첩했다고 할까? 멤버 4명이 하나가 되는 에너지에 집중하려고 했어요. 2집에는 그런 걸 더욱 갈고 닦는 작업이 되지 않을까 해요. 지금까지 만들어진 곡들도 그렇고, 구성해둔 악기 편성도 그렇고, 무엇보다 멤버들이 모두 노래를 많이 부르게 될 것 같아요. (웃음) 그래서 좀 더 밴드가 하나가 되는 콘셉트를 그리고 있습니다. 


Q ‘베티’ 이야기를 좀 더 이어서 해볼게요. ‘베티’는 용기에 관한 곡이잖아요. 환호하고, 용기를 주는 그런 곡. 지금 보수동쿨러에게 가장 용기를 주는 건 무엇일까요?

최운규 저는 개인적으로 일상의 순간순간을 포착하고 그때 느끼는 감정에 취하는 편이에요. 최근에 펜타포트에 보수동쿨러가 출연했을 때 시간대 자체가 대낮이라 엄청 더웠거든요. 그런데 보러 와주시는 관객분들의 눈망울, 눈초리가 그날따라 더 잘 보이더라고요. 반짝반짝하다고 할까요? (웃음) 그래서 좀 진부한 답일 수 있겠지만 저희를 좋아해 주시는 팬, 특히 현장에서 저희를 바라보는 초롱초롱한 눈빛이 개인적으로 가장 큰 용기를 주는 요소인 것 같아요. 특히 펜타포트가 다른 페스티벌에 비해 열기나 열광하는 분위기가 다른 것 같아요. 눈빛이 다르기도 하고.

구슬한 저희가 펜타포트 타임테이블 상 첫 무대였거든요. 시작하자마자 저기서 사람들이 뛰어오는 게 보이더라고요.

최운규 거기서 오는 쾌감도 진짜…. (웃음)

구슬한 넘어지면 어떡하나 걱정도 되고.

김민지 저는 딱 얘기를 하셨을 때 ‘뭐가 용기를 줄까?’ 하고 생각해보니 떠오르는 게 쉼이었어요. 요즘 저에게 적절하게 휴식이나 쉼이나 어떤 적절한 보상을 해줬을 때, 저 스스로에게 오롯한 나만의 시간을 선사했을 때 그게 용기로 오는 것 같아요. 내가 내 자신을 더 잘 알 때 그 순간에 용기가 얻어지는 것 같아요. 남에게 얻는 용기도 있지만 스스로 얻는 용기가 되게 크고 중요한 것 같아요.


Q 이 답변이 정말 보수동쿨러의 핵심 같아요. 지금까지 보수동쿨러의 음악은 나 혼자 들으면서, 나를 위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노래가 많잖아요?

김민지 예전에는 남에게 얻는 위로가 무척 컸어요. 하지만 요즘에는 스스로도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올해 들어 공연도 더 재밌고 자신감도 생기고요. 저희가 1월부터 3월까지 휴식기를 가졌거든요. 그때 정말 잘 쉬었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공연 휴식기였기도 했고, 저희가 작년에 <모래> 앨범을 내고 각자의 일도 다 하면서, 공연도 하면서 엄청 바빴거든요. 그래서 다같이 ‘우리 잠깐 쉬자.’ ‘그러면서 새 곡도 만들자.’라고 했는데 이때 3개월의 쉼이 저 스스로 내면을 가꿨던 시간 같아요. 5월 단독 공연이 5개월만에하는 공연이었거든요. 그때 진짜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을 너무 많이 했어요. 오랜만에 하는 공연이니까… 그 전까진 공연이란 게 많이 하고 자주 해야지 실력이 는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쉬어 보니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 ‘적절한 쉼이 필요하고 내가 나만의 시간을 갖고 스스로를 알아갔기 때문에 공연이 더 재밌어지고 즐길 줄도 알게 된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어요. 저에겐 터닝 포인트였다고 할까요? 그 시간이 참 감사한 시간이었고 생각도 많이 바뀌고, 또 기다려 주신 팬들에게 더욱 감사한 마음이 커진 계기라고 생각해요. 내가 내 자신에게 주는 용기가 무척 필요하겠다 싶어요.

이상원 사실 저는 항상 음악을 전공했고 계속 해왔는데 스스로 확신이나 용기를 가졌던 적은 한 번도 없던 것 같아요. 그런데 밴드 멤버들의 응원과 칭찬, 서로의 신뢰와 대화가 저에게는 용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계속 밴드를 갈망해왔고 지금하고 있다는 게 기쁘고요.

구슬한 전 일상이 단조로워요. 레슨하고, 음악 만들고, 최근엔 고양이랑 놀고 자전거를 타고 수영하고. 주로 제 반경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편이에요. 사람을 많이 만나지도 않고, 조용한 곳을 좋아하는데 그러다 보니 작거나 찰나의 순간에서 힘을 많이 얻는 것 같아요. 특히 팬들의 이야기요. “이런 밴드가 내 인생에 들어올 줄 몰랐다.” 이런 글을 보면 내가 살아있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죠.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운전하다 나비가 차 유리에 앉았다 날아가는 순간을 볼 때? 단조롭게 살아서 그런지 작은 일상에서 용기를 많이 얻는 것 같아요. 


Q 일상의 사소한 낭만적인 순간들을 잘 캐치하시네요.

구슬한 물론 그러다보니 사람이 까다로워지는 것도 있는 것 같지만 그만큼 더 좋은 것을 뽑을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 같아요. 보수동쿨러의 가사를 쓸 때도 뭔가 일상에서 오는 것들을 많이 느낄 수 있게 쓰게 되는 것 같아요. 


Q 그럼 ‘베티’를 들려주며 용기를 주고 싶은 사람도 있을까요?

구슬한 ‘베티’ 가사에 “우리는 노래하고 춤 춰야 해. 옳은 것을 위해”라는 가사가 있는데 저희도 무척 불확실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한국에서 밴드를 한다는 것 자체가 오로지 우리의 재미를 위해 우리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걸 함께 느끼기 위해, 본인의 옳음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되게 고달픈 일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떠오른 사람이 한 명 있어요. 제 친구 중에 강동수라고 소음발광이라는 밴드를 만든 친구가 있어요. 요즘 새로운 밴드 멤버들을 찾고 있는데 힘을 더해주고 싶습니다. 


Q 소음발광 처음 봤을 때 충격을 잊을 수 없어요. 진짜 이런 밴드를 오랜만에 부산에서 만났다는 충격과 환희라고 할까요? 멤버를 꼭 구할 수 있길 바라겠습니다.

이번에는 ‘제임스’ 이야기를 해볼게요. 곡을 공개했을 때 BTS의 RM 씨가 인스타 스토리에 ‘제임스’를 공유하셨어요.

모두 맞아요! 네!

최운규 그때 마침 저희가 회의 아니면 합주를 하려고 모였는데 DM이 오더라고요. BTS팬 분들이 “RM 씨가 너네 음악을 스토리에 올렸다!” 하고 말해서 찾아봤죠. 설마설마 했는데 진짜 올라와 있더라고요. 멤버들에게 알려줘야 하는데 너무 믿기지 않아서 말을 못하겠더라고요. (웃음) 당연히 다들 설마, 그럴 리가 없지 하고 믿질 않았어요. 물론 RM 씨가 인디 음악을 좋아하고 세이수미도 샤라웃 해주신적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직접 저희 음악을 언급해서 너무 감개무량하고 뿌듯했습니다.

구슬한 그때 멜론 실시간 검색어에 제임스가 올라와서 “오! 세상에!” 하는데 사라지고…

이상원 스포티파이에도 그래프가 막 올라가고.

구슬한 이러다 우리 부자가 되는 건 아닐까 잠깐 생각했는데….

김민지 아주 잠깐이었습니다만 매우 행복했습니다. (웃음) 모르는 영어 댓글들이 유투브 영상에 달리기 시작하고.

구슬한 “남준의 스토리를 보고 왔어!”라며 댓글에 보라색 하트가 엄청 많았어요. (웃음) 엄청 좋았습니다.


Q 직접 ‘제임스’ 소개를 좀 해주시겠어요?

구슬한 ‘제임스’는 일단 헤어진 연인들에 대한 얘기입니다. 끝입니다. ‘제임스’가 남자주인공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웃음) 


Q 싱글 커버가 너무 예뻤어요.

구슬한 트위터를 돌아보고 있는데 어떤 작가님이 물결 사진을 엄청 예쁘게 찍으시더라고요. 윤슬과 자연을 많이 찍으시는. 그분 사진을 보다가 현재 ‘제임스’ 앨범 커버 사진이 나왔어요. 그걸 보는 순간 딱 이 사진에는 서사가 있구나, 이건 우리 커버가 될 사진이다란 느낌이 왔어요. 그래서 멤버들에게 어떻냐고 보여주고 작가님에게 DM을 보냈는데, 작가님에게 곡도 보내고 가사도 보냈더니 이 사진을 곡의 커버로 써도 될 것 같다고 말씀 주셨어요. 이후에 작품이랑 잘 맞다고 생각하셨는지 부산도 놀러 오시고 저희랑 커피도 한 잔하고 그랬죠. 첫눈에 반해버린 앨범 커버라 할까요?

‘제임스’ 싱글 커버


Q 너무 잘 어울렸어요. 그 전에는 커버에 늘 보수동쿨러 멤버가 나왔잖아요.

김민지 전에는 전부 사람이 나오는 편이었죠. 그래서 싱글은 사람이 안 나오는 걸로 해도 되겠다고 생각해서 이번 ‘베티’랑 ‘제임스’를 그렇게 했어요.

구슬한 정규앨범에는 사람이 나올 겁니다. 이게 앞으로의 콘셉트로 잡힌 것 같아요. 앨범 콘셉트 잡을 때 EP에도 인트로가 있고, <모래> 앨범 때도 ‘대니 INTRO’가 있었고 준비 중인 앨범도 인트로 곡이 있거든요. 이제 그런 식으로 앨범의 콘셉트를 하나씩 구축해 가려고 하고 있어요. 


Q 단독 콘서트 때 공개한 ‘헬렌’은 내년 언제쯤 정식으로 들어볼 수 있을까요? 전 단독 공연 때 그 곡을 들으면서 엉엉 울었거든요. (웃음)

구슬한 4월 22일?

김민지 저희가 운세 앱에서 각자 80점 이상의 날짜 대운을 받아서 합산을 해서 가장 좋은 날을 뽑고 있습니다. (웃음) 


Q <모래>는 특히 뒤로 갈수록 약간 찢어지는 듯한 절규 같은 게 느껴졌어요. 그러다 다시 조금 아무는 서사랄까요? ‘모래’라는 것 소재 자체가 쌓였다 부서지는, 감정이 올라갔다 쓰러지는 느낌이고요. 이 앨범은 멤버의 합이나 어우러짐이 중요했던 보수동쿨러의 터닝 포인트였는데, 이번 ‘베티’랑 ‘제임스’는 또 엄청 담백해진 것 같아서 신기해요. 물론 <모래>도 담백하지만, <모래>는 약간 바스락거리고 말라가는 느낌이었다면 ‘베티’랑 ‘제임스’는 기름이 빠진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앞으로 보수동쿨러가 어떻게 진화될지 엄청 궁금해요.

구슬한 ‘제임스’는 사실 모래 앨범에 들어갈 곡이었어요. 결국 콘셉트가 맞지 않다는 이유로 빠지게 돼서 나중에 싱글로 발매하게 됐어요. <모래>를 발매하기 전에 멤버 교체가 있었고 그게 저희에겐 굉장히 큰 일이었죠. 주변에 저희를 좋아하시는 분에게도 굉장히 큰 일이고 슬프기도 하고 힘들었던 일이기도 했고요. 저희 모두 힘든 상황에서 싱글로 우리의 변화를 천천히 알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도 했지만 차라리 강하게 기선을 제압하자는 의견으로 뭉쳐져 정규 1집으로 등장을 하자는 계획을 세웠고요. 힘들 일이 있었다 보니 자연스럽게, 말씀하신 대로 마음의 절규나 바스라지는 모습을 많이 담게 됐던 것 같아요. 그때 감정적으로 힘들었다 보니 이렇게 고스란히 음악으로 담아낸 것 같고요, 이제 그걸로 ‘멤버 모두 치유받지 않았을까?’ ‘이제는 좀 마음이 해결되지 않았을까?’ 하는 상태로 ‘베티’처럼 가볍고 긍정적인 것들을 만들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최운규 음악적으로, 작업의 흐름에서 봤을 땐 그 전까지는 그냥 이렇게 해야하지 않나? 저렇게 해야하지 않나?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정확하고 계획적으로 진행한 건 아니었는데, ‘베티’ 때나 ‘제임스’ 때는 조금씩 흐름을 가지고 저희만의 길을 찾는 방법을 알게 된 것 같아요. 그 부분이 엄청난 성과이자 의미였던 것 같습니다.

Q 지금 이야기를 듣고 보니 <모래>란 앨범이 멤버들의 살풀이 같은, 한번 풀어내고 우리의 마음과 감정을 다시 잡아보자는 의미도 있는 것 같네요.

최운규 저희 마음에 여러 주제가 있는데, 그걸 앨범으로 극복하려고 많이 노력한 것 같아요.

구슬한 민지 누나가 새로 영입된 후 처음 만든 앨범이었는데 다 잘 맞아떨어졌던 것 같아요. 저희가 앨범을 ‘이제 앞으로 보수동쿨러의 사운드는 이런 것이다.’라고 정립하고 싶은 마음으로 만들었는데, 민지 누나의 감성과 목소리와 잘 맞아 떨어져서 너무 좋았습니다. 앨범 리뷰 중에서도 어떤 누리꾼이 “김민지가 들어올 걸 알고 만든 앨범 같다.”라고 적어 주셨는데 그걸 읽는데 너무 신기했어요. 


Q 맞아요. 민지 씨의 목소리가 약간 악기처럼 녹아 들어서, 이게 보컬이 더 중요하고, 기타 리프가 더 튀고 그런 게 아니라 진짜 멤버 하나하나가 악기가 돼서 같이 어우러진 느낌이 들었어요. 이게 진짜 보수동쿨러의 새로운 모습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 것 같아요.

그럼 <모래>라는 앨범은 민지 씨가 들어오기 전에 어느정도 기간과 콘셉트를 정해 놓고 모두 새로 만든 곡인가요?

구슬한 ‘구름이’라는 곡은 원래 만들어져 있었던 곡이고요, 그 외 8곡 정도는 공백기간 동안 멈춰 있을 수 없다는 마음으로 차차차차 만들었습니다. 딱히 콘셉트를 생각하고 만들진 않았어요. 그런데 제 마음 자체가 항상 일관됐었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콘셉트처럼 나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Q 민지 씨는 어떠셨어요? 본인은 모래 작업을 하면서 새롭게 시작했지만, 멤버 세 분은 뭔가 한번 환기를 하려는 느낌이었잖아요. 그때 어떤 마음으로 멤버들을 바라보셨나요?

김민지 일단 약간 부담스러운 것도 있긴 했어요. 하지만 저에게 맞게 키도 조금 조정하고 하다 보니 잘 묻어가고 맞춰 가야겠다 생각했어요. 제가 튀려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고 무조건 잘 녹아들 수 있게 노력했던 것 같아요.

구슬한 원래 음악을 하던 사람도 아니었는데 첫 앨범에 이 정도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는 것은 굉장하다고 생각했어요.

최운규 곱씹을수록 진짜 대단한 것 같아요. 


Q 상원님은 어떠셨어요? 사실 베이스 멤버도 한번 바뀌었어요. 어떻게 보면 그런 부분에서는 민지 씨의 감정이나 상황에 공감하는 부분도 있었을 것 같아요.

구슬한 상원이는 <모래> 발매 날 지하철에서 울었습니다.

이상원 다 같이 힘들었던 시기라서 그 감정을 거의 하나처럼 멤버 모두가 동시에 느꼈을 것 같아요. 여러가지 감정이 섞여서 하나가 됐다는 것이, 그 마음이 발매가 될 때 많이 위로가 됐어요. 한편으론 오히려 감정이 폭발하기도 해서…. (웃음) 


Q 분위기를 바꿔 볼까요? 음악을 할 때 어떤 부분에서 영감을 받나요? 음악가들에게 제일 진부하면서도 어려운 질문이죠? (웃음)

최운규 최근 음악을 들으면서 세이수미 병규 씨가 저랑 슬한에게 얘기해준 이야기인데요. 어쨌든 우리는 음악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니까 음악을 들을 때 이게 왜 좋은 지 분석하는 버릇을 들이는 게 굉장히 좋은 자세이지 않냐고 이야기를 해줬어요. 그땐 그냥 듣고 잊고 흘려버렸는데, 언젠가부터 제가 음악을 들을 때 그걸 적용하고 있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접근하니 아이돌 음악이든 어떤 장르의 음악들이든 이게 왜 좋은 지 자꾸 이유를 찾게 돼요. 그러면서 좋은 음악을 스스로 더 잘 찾아가게 되는 방법을 찾게 된 것 같아요. 음… 그래서인지 다양한 음악을 들으면서 영감을 많이 얻는 것 같네요.

구슬한 운규는 진짜 음악을 다양하게 들어요. 저는 그렇지 않은데. (웃음)

최운규 그래도 최대한 밴드 음악을 많이 들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원래도 일본 밴드 음악을 많이 디깅했는데 최근엔 동남아시아, 대만이나 태국, 말레이시아 밴드들을 많이 들어요.

이상원 제가 생각하기에는 영감이라는 건 감정에서 많이 오는 것 같거든요. 내가 뭔가를 받아들였을 때 감정이 극대화돼서 표현되는 것 같아요. 그런 극대화된 예술성이란 걸 느끼려면 건강한 신체와 건강한 정신과 시간적 여유로움이 있을 때 항상 크게 와닿게 되는 것 같아요. 그 때는 시간도 느리게 흐르고 감정도 더 와닿는 것 같아요. 하나의 감정에 잠식되면 뭔가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모두 우리 상원이! 해냈구만! 멋있다! (박수) 


Q 민지 씨 관련한 이야기를 잠시 해볼게요. 민지 씨가 어떻게 합류하게 되었는지 여기저기 많이 이야기가 됐던 것 같은데요, 민지 씨 말고도 후보가 좀 많았나요?

최운규 연락 온 분만 100분이고 거기서 오디션보고 그랬던 것 같아요. 나름의 어떤 단계를 만들어서, 3차 정도 면접도 보고 인적성도 보고, 화상채팅도 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Q 프로듀스 101 보수동쿨러 버전이네요.

최운규 그렇죠. 어쨌든 밴드라는 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어떤 사람과 하느냐가 중요했던 것 같아요. 물론 반대로 저희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줘야 되는 것도 있었고요. 그래서 최대한 많은 분들을 만나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공개적으로 인스타그램에 제 연락처도 오픈하고 그러면서요.

구슬한 그런데 운규 형이 오디션을 보다가 우리가 원하는 사람, 우리와 잘 맞는 사람은 아마 우리한테 오디션을 보겠다고 연락이 안 올 것이라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런데 딱 진짜 그랬습니다.


Q 어떤 계기로 민지 씨를 발견하게 되신 거에요?

최운규 #보수동쿨러를 검색하다가 예전에 민지가 ‘죽여줘’를 커버해서 올린 영상을 봤어요. 그리고 민지가 불렀던 무키무키만만수의 ‘석관동’이라는 영상을 보는데 그 짧은 영상에 꽂혀서 한 몇 주 동안 그 영상만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색이 우리랑 너무 잘 어울린다고도 생각하고, 얼굴 안 나오게 클립을 올린 것도 왠지 우리랑 잘 맞는 것 같고 함께할 수 있을 거란 느낌이 들었어요. 밴드가 생각보다 힘들고 언젠가는 ‘현타’가 올 수밖에 없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일단은 정신적으로 성숙했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었던 것 같아요.

구슬한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이런 루틴을 하다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대충 느낌이 오잖아요. 음악을 잘하는 것보다 어떻게 보면 얘기를 잘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최운규 그리고 합주도 해보고. 저희 멤버 세 명이 의견을 조합하는 장소도 따로 있어서 거기서 늘 결과를 논의했던 것 같아요.

구슬한 세이수미 작업실 옆 놀이터. (웃음)

최운규 민지가 만약 보수동쿨러의 멤버가 됐을 때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 굉장히 신중하게 이야기를 꺼냈던 기억이 있어서 그런 것조차도 저희에겐 긍정적인 요소가 있었던 것 같아요. 


Q 민지 씨는 이제 부산사람이 된 것 같나요?

김민지 아직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웃음)

구슬한 그런데 한 번씩 사투리를 자연스럽게 쓰더라고요. (웃음)

김민지 아버지 쪽이 다 경상도셔서… 친척들이 대구, 경북이다 보니 사투리는 익숙했어요. 그래도 부산은 아무런 연고가 없었어요. 전 이제껏 수도권에서 계속 살았어요. 그리고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혼자 자취하며 살거나 언니랑 살기도 했고요. 어릴 때부터 혼자 있는 게 좀 편하기도 하고, 해외에서 잠깐 따로 산 적도 있다 보니 ‘어디든 상관없다.’ ‘사는 지역은 상관없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긴 했죠. 물론 서울에 한 번 살면 엄청난 편리함 때문에 안 나가려는 게 있잖아요. 그런데도 당시 이사를 해야 하기도 했고, 이직을 해보려는 생각도 있어서 부산에서 사는 것도 뭔가 새로운 기회가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무작정 부산에 왔어요. 타이밍이 온 것 같았죠. 하지만 부산 사람이 아니다 보니, 전 금방 적응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쉽진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부산에 가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생각한 게, 어쨌든 3대 1이잖아요. 부산밴드에 멤버 3명이 부산에 있고!

모두 (웃음)

김민지 보수동쿨러가 서울에 있는 것도 이상하잖아요. (웃음) 그래서 당연히 내가 가야지! 이런 생각이었어요. 그리고 한 번도 부산에서 살아본 적은 없으니까 재밌겠다고 가볍게 생각했던 것도 있고요. 


Q 민지 씨는 데뷔와 동시에 1집 가수가 되셨는데 앨범이 나왔을 때는 어떠셨어요?

김민지 너무 신기했어요. 우와…멋지다?

구슬한 너무 정신없었을 거예요. 들어오자마자 바로 합주하고 공연하고.

김민지 갑자기 오방가르드에서 소개되고, 게릴라 공연하고. 모든 게 진짜 갑자기였어요. 그러다 보니 약간 실감이 안 났던 것 같아요. 첫 공연 때 진짜 안 틀리려고 노력했어요. 정말 그냥 다행이다 이런 기분이었어요. 그냥 ‘가사 안 틀렸어.’ ‘크게 틀린 건 없어. 다행이야.’ ‘잘 한 건 아니지만, 틀리진 않았어 다행이야.’ 그런 기분으로 얼어있었어요. 


Q 민지 씨에게 멤버들의 첫인상은 어땠어요?

김민지 실제로 멤버들을 만나기 전부터 공연도 본 적이 있고 그랬어요. 공연 인상이랑 실제 대면했을 때 조금 다르기도 하지만, 운규가 말도 잘하고 스무스하게 잘 챙겨주고 해서 첫인상이 되게 좋았어요. 친근한 느낌이고 편하게 해주려는 느낌도 강하고. 나머지 두 사람은 상대적으로 조금 내성적이고 낯가린 느낌이어서 친해지기 어렵겠다란 걱정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좀 까다롭겠다란 생각도 해보았는데 합주하고 이것저것 이야기하고 피드백을 하다보니 다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Q 민지 씨도 원래 ‘음악을 해야지.’ ‘밴드를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김민지 음악은 아주 어릴 때부터 하고는 싶었는데 항상 자신이 없었어요. 내가 음악가가 돼야지 보단 내 음원 하나정도 있었으면 좋겠다 정도였던 것 같아요. 곡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있긴 했는데 밴드를 하고 싶다는 거창한 느낌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회사 생활을 하고 조금 적응이 됐을 때 문득 학생 때 기타 치려다 그만 둔 게 너무 후회가 되는거예요. 그래서 기타를 다시 쳐보고 싶다, 기타 치면서 한 번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뭐랄까… 나중에 친구들 사이에서 ‘할머니 스타가 돼야지?’ 같은 소소한 생각을 했어요. 그런 생각으로 기타를 배우러 갔는데 학원 선생님이 처음부터 노래를 시키시더라고요. 그리고 그 녹음 파일을 주시는데 너무 제 목소리가 듣기가 싫었어요. 그 이후부터 갑자기 저도 욕심이 나서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연습했어요. 그때 학원에서 꽤 칭찬을 받았는데 저는 사람 말을 잘 안 믿거든요. 내가 진짜 잘하는 건지 불특정 다수에게 검증을 받고 싶었어요. 그래서 인터페이스도 사고 마이크, 기타도 사고 직접 악보를 보면서 집에서 노래 연습도 하고 기타도 치고 SNS에 영상도 올리고 그랬어요. 주변 음악하시는 분들이 고쳤으면 좋겠다고 조언 주시면 그 점을 보완하려고 많이 노력을 했고, 무엇보다 기타는 안 놓으려고 노력했죠. 화성학 공부도하고. 그 와중에 보수동쿨러보다 먼저 다른 밴드 쪽에서 연락이 왔어요. 몇 번 합주를 해보니 잘 안 맞는 것 같다는 판단이 바로 드는 거예요. 밴드를 하겠다는 생각을 아예 안 했죠. 그러던 와중에 지인을 따라 보러간 공연에 보수동쿨러란 밴드가 나왔어요. 되게 신선하더라고요. 그때 이 밴드의 존재를 알게 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참 신기한 경험인 것 같아요. 제가 로큰롤 라디오를 좋아하는데 그 밴드 공연을 보러 가도 보수동쿨러가 같이 나오고, 잔다리나 뮤콘 어딜가도 보수동쿨러가 라인업에 있고. 뭔가 늘 제가 음악 곁으로 가면 보수동쿨러가 곁에 있는 느낌이랄까요? 보수동쿨러는 저에게 그런 존재였어요. 그리고 부산에 와서 같이 말을 나눴을 때 이 친구들이라면 같이 해볼 수 있겠다라는 판단이 들었던 것 같아요.

구슬한 민지를 처음 봤을 때 이 사람은 장군감이구나 뭘 해도 할 사람이겠구나 생각했는데 역시나 단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상원 늘 운규 형처럼 철없는 삼촌 같은 모습의 어른만 봤는데 민지 누나를 봤을 때 진짜 ‘어른이 왔다!’라는 느낌이었어요.

모두 (웃음)

최운규 사실 들어오자마자 1집 앨범을 내고 녹음을 하고 공연을 하는 게 부담스럽고 힘들 수도 있는데 민지가 티를 잘 내는 편이 아니라서, 저희도 바쁘다 보니 케어를 많이 못했던 것 같은데 너무 잘 따라와줘서 고마웠어요. 그러다 보니 지금은 인간적으로 많이 친해졌고, 이젠 믿고 맡길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요. 


Q 어떻게 보면 <모래>는 민지 씨가 처음부터 참여한 앨범은 아니잖아요. 혹시 본인은 이런 걸 하고 싶었다거나 앞으로 보수동쿨러에서 해보고 싶은 음악이나 방향, 주제 같은 게 있을까요?

김민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진짜로 나이 들어서 친구들 앞에서 기타 연주 발표회를 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진지하게 생각했으니까요. 저는 저를 크게 내세우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보수동쿨러를 하는 동안, 저 스스로도 조금 변화가 생겼는지 조금 더 용기를 내봐도 되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Q 보수동쿨러가 최근에 공연을 많이 했어요. ‘제임스’ 단독공연,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해서웨이와의 공연 등… 그래도 그 중에서 단독 공연이 제일 기억에 남을텐데 어떠셨나요?

구슬한 저희가 공연은 자주 했지만 단독공연을 한 건 오랜만이었어요. 그래서 걱정했던 게 공연에 오는 사람들이 온전히 우리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니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된다고 마음먹었어요. 옷도 다같이 새로 사러 가고, 비디오 감독님들과 영상도 많이 상의하고, 포스터 디자인 같은 것도 많이 신경 쓰고 이것저것… 저희가 이렇게까지 공을 많이 드린 공연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할 수 있는 건 다 했던 것 같아요. 정말 노력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도 울고 갔다는 분도 계시고 저희가 노력을 드린 만큼 받아 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Q 여운이 길고 짙은 공연이었어요. 저는 공연을 보면 관객을 많이 관찰하는 편인데, 사람들이 조용히 있다가 공연이 끝나자마자 도란도란 감상을 나누면서 나가는 모습이 너무 좋았어요. 저도 그날 그 공연에 대해 이야기를 참 많이 했고, 계속 생각했거든요.

구슬한 해서웨이가 단독공연을 하면 해서웨이 팬들도 마치 해서웨이 음악 같아서 인사도 많이하고 너무 귀엽고 표현도 크고 그래요. 진짜 ‘MZ’랄까? “싸인해 주세요!” “사진 찍어요!” 이러고. 그런데 저희 팬들은 다들 아련아련한 편인것 같아요. 음악이랑 팬이랑 닮아가는 것 같아요.

최운규 그날 비도 많이 오고 시간도 없고 그래서 팬들이랑 소통을 많이 못해서 소감이 너무 궁금했어요. 잘 보셨는지….

구슬한 진짜 우리 좋아하는 분들은 공연 끝나면 바로 다 가시더라고요. (웃음)

김민지 해서웨이랑 같이 공연했을 때 해서웨이 팬분들이 너무 신기하고 귀여웠어요. 퇴근길에 남아있고 인사하고 하는 게. 그런데 저만 해도 아무리 좋아하는 아티스트 공연이라도 끝나면 조용히 가거든요. 저희 팬들도 저 같은 사람들이 아닐까요? (웃음) 아, 실제로 제임스라는 외국 분이 제임스 공연을 보러 오셨어요. 실제로 비행기 타고 오신 분도 계셨고. 관객 중에 중후한 분들도 계시고 저희 팬들은 연령대도 되게 다양한 것 같아요.

구슬한 이번 단독 공연이 진짜 기념비적이었던 게 보수동쿨러로 사업자를 내고 이제 온전히 저희가 다 꾸려서 공연을 한 거였거든요.

최운규 저희가 오픈하고, 예매도 열고. 뭔가 이렇게 또 새로운 성장을 해가는구나 하는 공연이었던 것 같아요. 


Q 보수동쿨러는 <흐르는 눈물의 이유를 애써 물을 필요는 없지>라는 시리즈 브랜드 공연이 있잖아요. 이 공연도 좀 더 소개해주겠어요?

구슬한 저희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데리고 저희 노래를 커버하게 하고, 저희도 이제 그 사람들의 노래를 커버하면서 서로 다른 사람들과 음악을 나누고 친해지는 사심이 담긴 공연인데요. 사실 첫 공연은 해파님 쇼케이스를 못 가서, 해파님 공연을 보고 싶어서 만들었던 거예요. 그런데 이게 재밌어서 천용성 님과도 하고. 신해경 님과도 내년에 하기로 했고.

최운규 저는 개인적으로 Tuesday Beach Club이랑 청요일의 노래를 재밌게 듣고 있어서 같이 하고 싶어요. 아 그리고 은도희 님….

구슬한 저희가 은도희 님 이번 EP를 듣자마자 이분은 곧 해외로 가시겠다 했는데 진짜 가셨어요… 딱 노래를 듣자마자 약간 우리 느낌인데? 그분이 팔로우한 목록을 보니 진짜 3분의 1이 제가 팔로우 한 항목들과 같은 거예요. 와 이 분은 우리와 취향이 비슷하구나 생각했죠.

최운규 저희는 그런 느낌을 많이 따지는 것 같아요. 관객 입장에서 비슷한 느낌이 들고 같이 하면 진짜 갈만한 공연인지. 그런 의미에서 은도희 님은 꼭 함께 해보고 싶습니다.


Q 보수동쿨러의 노래 2곡이나 TV CF에 나왔어요! 커피와 핸드폰. 혹시 또 노리는 광고가 있을까요?

구슬한 저는 사실 해서웨이랑 같이 만든 ‘맛있는 거’가 동키치킨, BBQ같은 곳에서 연락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었습니다. (웃음)

최운규 개인적으로 ‘헬렌’은 영화에 쓰이게 되지 않을까하고 기대해봅니다.

김민지 ‘제임스’는 실제로 단편 영화 감독님이 쓰고 싶으시다고 연락 왔어요. 


Q 어떻게 보면 보수동쿨러는 참 협업을 많이하네요. 해서웨이와의 공동 작업, 시리즈 브랜드 공연, 최근 브로콜리 너마저의 <전국 인디자랑>도 나가시고. 이렇게 협업을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있나요?

구슬한 해서웨이랑 했던 건 ‘우리가 이걸로 세계를 재패하자!’ 이런 마음은 아니었어요. 사실 하다 보니까 ‘곡이나 만들자.’ ‘너 만들수 있지?’ ‘형 만들수 있어!’ ‘할 수 있어!’ ‘할 수 있지?’ 이러면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죠. 각 잡고 뭘 만들려고 계획적으로 한 건 아니고 그때 그때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을 모아서 만들어가는 형식이었던 것 같아요.

최운규 그리고 저희가 듣기에 이 음악이 너무 좋은데 사람들이 더 들어야 한다는 마음이 들면 같이 공연을 꾸리게 되는 것도 너무 좋고. 사심과 친분을 위해 해파 씨나 천용성 씨를 섭외한 것처럼요.

김민지 사실 밴드를 하면 싱어송라이터 분들이랑 친해질 일이 별로 없어요. 밴드랑 공연을 해도 개인 싱어송라이터랑 공연을 함께 할 일이 별로 없거든요. 그래서 이제 싱어송 라이터분들이랑 같이 뭔가 해보고 싶단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저희는 부산에 있으니 친해지기가 쉽지도 않고요.

구슬한 서울 사람들은 “내일 커피라도 드실래요?” 하고 만나고 그러는데 저희는 커피 한잔에 왕복하면 12만 3천원 정도 들고….

최운규 4명이니까 더 비싸죠. (웃음) 아무튼 그렇습니다.


Q 슬슬 인터뷰를 마무리를 하려고 하는데요, 올해 싱글 2곡이 나오고 시간이 좀 지났잖아요. 최근 근황이랑 앞으로 계획을 좀 알려 주세요.

구슬한 내년 4월에 발매될 2집 데모를 이제 거의 다 끝낸 상황이고요, 이제 앨범의 디테일들을 잡아가야 될 시간이라 그런 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아, 상원이가 수영구 대표로 테니스 대회에 나가게 됐습니다. (박수)

이상원 그냥 시간이 나면 사람들이랑 치는 그런 취미입니다.

김민지 올해 남은 기간 동안 세종, 창원, 그리고 대만 가오슝에서 페스티벌 공연이 있어요. 그리고 12월에 1일에 대만 가오슝, 12월 3일에 대만 타이페이에서 대만 지역 밴드분들을 게스트로 모시고 저희 단독 공연을 할 예정이에요. 그래서 추석에 좀 잘 쉬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I’m difficult 라고 대만 밴드랑 같이 공연을 했었고 작년에 I mean us랑도 같이 공연을 했었어서 대만에서 한번 공연을 해봐야겠다란 생각이 들었어요.

구슬한 스포티파이에서 저희 노래를 세 번째로 많이 이용하는 나라가 대만이니까… 1위가 한국, 2위가 미국… 


Q 이제 부산을 대표하는 밴드들이 많아졌어요. 그 중 보수동쿨러가 크게 자리하고 있고요. 보수동쿨러에게 부산의 의미가 있을까요?

구슬한 부산에는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일단 저만 부산 사람이고, 사실 다들 다른 지방에서 와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고요. 여기는 대구고,,, 다 전국에서 온 사람들이에요. 물론 저라고 딱히 부산에 큰 애착이 있는 편은 아니에요. 저는 그냥 바다 근처에 사는 게 좋아서 부산에 계속 사는 건데, 요즘은 인터넷 세상이니까 어디든 연결될 수 있고 부산에 있는 게 중요하다기보다 다들 서울로 가는데 우리까지 갈 필요가 있나, 부산에서도 진짜 쩔게 하는 걸 보여주고 싶은데 그런 반골적인 생각도 있기도 해요. 그리고 저희 같은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저희가 서울에 있던 부산에 있던 어디에 있든 다 찾아 들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또 이제 부산에 남아있는 동료들도 있고.

모두 세이수미, 해서웨이, 검은잎들, 소음발광….

구슬한 그들이랑 비슷한 걸 공유하게 되는 것 같아서 더 끈끈해지는 것도 있어요. 개인적 소망이라면 오방가르드가 진짜 열심히 끝까지 갔으면 좋겠어요. 거기에 저희가 이바지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최운규 진짜 소중합니다.

김민지 공연할 수 있는 공연장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Q 보수동쿨러가 이제 5년차예요. 사실 보수동쿨러가 중간 중간에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어떤 부분들이 가장 많이 바뀌었을까요? 그럼에도 보수동쿨러를 정의하던 큰 기틀이 있었다면 그것 자체가 바뀌는 큰 변화가 있었나요? 혹은 처음 밴드를 만들었을 때부터 지키고 있는 무언가가 있을까요?

최운규 저희가 초반에 ‘멜랑콜리’에서 피어나는 감정이란 것은 민지가 들어온 이후부터 동의하지 않고 새로운 방향을 찾아가고 있고요. 사실 그 전부터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음악에 대해서 고민이 있었고 그 방향은 조금씩 정리를 해왔던 것 같아요. 지금 우리가 하는 음악처럼 ‘밴드스러움이란 무엇일까?’ ‘좀 더 자연스러운 사운드란 무엇일까?’ 고민했고요. 그 전부터 저희가 탐구를 했던 것 같고 그게 잘 발현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희의 대형도 저희가 추구하는 방향과도 좀 많이 부합하는 부분이라 자연스럽게 저희의 스타일을 잘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4명이서 서로 의견을 많이 공유하기도 하고요. 


Q 하반기 계획도 가득 차 있고 4월까지 엄청나게 달려가시고 그 이후에도 발매를 하면 엄청 바쁘시겠어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하고 싶은 말이 더 있으실까요?

최운규 음악은 개인 취향이지만 개인적으로 말씀드리면 굉장히 좋은 앨범이 되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하니까 감히 말씀드리자면,

구슬한 ‘감히’ 금지.

김민지 하지마라….

최운규 기대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 뭔가를 보여드리겠습니다.

구슬한 이제 보수동쿨러가 어떤 걸 할 것인지를 기대를 많이 해주셨으면 좋을 것 같고요, 일단 뭔가 원초적으로 자연으로 돌아가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건 공식적으로 얘기하려는 생각을 했는데 앞으로 보수동쿨러는 <모래> 이전의 곡들은 연주하지 않을 거고요. 그래서 큰 기대를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음원으로 잘 즐겨주시고 새로운 곡들을 더 많이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때의 보수동쿨러는 지금의 보수동쿨러와 다르기 때문에. 그리고 이제 저희가 그 옷을 입기에는 좀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지금의 보수동쿨러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아가 주셨으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김민지 감사합니다.


인터뷰 조혜림

모든 사진 © 보수동쿨러       

Writer


조혜림(Heather Jo)



음악 콘텐츠 기획자, 하루키스트, Psychedelic rock. <중경삼림>의 영원한 팬. 읽고 듣고 보고 쓰는 것들을 좋아한다.
조혜림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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