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마침표를 찍을 결심

2024 아일랜드 여행 에필로그

by missnow

버텨야 하는 목표와 삶의 방향성은 이미 잃어버린 지 오래였지만
버티면 얻을 수 있는 것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오로지 버티는 데 썼다.
이곳에서 내가 더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음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점점 모든 것에 무감각해졌다.


아일랜드 여행은 감각을 회복하고, 내 삶의 흐름을 되찾기 위한 계기가 된 여행이었다.
아일랜드에서는 곳곳에 여유와 자유로움이 배어 있어서인지 시간이 여유롭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특별하지 않아도 돼, 최고이지 않아도 돼, 그냥 너 ‘자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면 돼.
버텨서 얻을 수 있는 것들보다 진짜 너의 삶을 사는 게 중요해...
아름다운 여행지, 특별한 볼거리가 있는 여행지라기보다 내게는 쉼표가 된 여행지였다.
삶이, 일상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흘러가는 곳.
그래서 역으로 삶에서 내가 놓치고 있는 것들을 깨닫게 해 준 곳이었다.


아일랜드를 갔다 와서 내가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던 말은 ‘진짜 더는 이렇게는 못 살아’였다.
그동안 대체 어떻게 이 시간들을 버텨 온 거지...
내가 죽을힘을 다해 버텨야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은 결국 언젠가는 사라질 것들이었다.
더 버티다간 내 삶 자체가 멈춘 지도 모르게 멈춰 버릴 것 같아서 나는 마침표를 찍기로 했다.
내게 딱 마침표를 찍을 힘 정도만 남아 있다는 것을 이제는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삶은 제자리를 지키고 버티고 있는 게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라고,
그 나아감의 과정에서 때론 비를 맞기도 하고, 때로는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 속을 걷게 될 수도 있지만 그 과정까지도 다 삶이라고...
내 삶이 어떤 모습으로 흘러가더라도 나를 잃지만 않는다면, 나는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나다운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자유로워진다는 건 어쩌면 나다움을 잃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곳에서의 시간이 끝났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지난 6년간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사회적으로 나의 시간은 잠시 멈춘 상태지만, 내 삶은 그간 멈춰 있던 시간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배터리 방전 직전인 시계처럼 가까스로 움직이던 시계 초침이, 마침표를 찍고 나서야 째깍째깍 경쾌한 리듬을 회복해 가고 있다.


삶은 어떤 식으로든 또 흘러갈 것이다.
이번에는 한 걸음 한 걸음 나 자신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며, 새로운 여정의 시작을 향해 걸어가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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