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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명현 Aug 28. 2020

오늘의 표현:'Integrity' 나뉘지 않는 진실함

너 혹시, 인성에 문제있어..? 


“와, 유명현! 진짜 대박! 알고 보니 완전 허당이네!”

(내뱉어 놓고.. 움찔)

“야, 그.. 그게 네 매력이야!”


“으.. 응, 고마워..”


창피하지만 공부머리와 사는 머리의 괴리에서

늘 허덕이는 석사학위 소지자입니다.

받은 학위가 머쓱하게

 ‘허당’인 것을 매번 들키며 살아가는

헛 똑똑이 이기도 합니다.


가방끈이 조금 길다고 밥 먹여 주는 것도 아닌데

조그만 허점에도 바로 주위 사람들의

놀림감이 됩니다.



유학생 시절 교회 집사님이 살짝 오셔서 

청소년부 교사를 맡고 있던 제게

질문을 하나 던지셨습니다.


“선생님, 우리 교회 성도들이 선생님을

다들 좋아해요. 왜 그런지 아세요?”


의아한 표정으로

 “저.. 저요? 글쎄요…

저는 딱히 잘하는 게 없는데..”



집사님 왈,


“머리 안 쓴다고 다들 좋대요”



“... 예? 뭐라고요?”


‘면전에 나를 바보라고 하는 건 가…’ 싶어

눈이 휘둥그레져서 집사님을 쳐다봤습니다.


“아니.. 우리 유 선생은 쓸데없는 잔머리

안 쓴다고요. 오호호호.”


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시고

유유히 사라지셨습니다.


멍하니 한참을 서 있다가 집사님의 말씀을

곱씹어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순수하다는 칭찬인 건지

제발 눈치껏 행동해라는 완곡한 표현인 건지

며칠을 고민했으니까요.




이제와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잔머리를 안 쓰는 게 아니라 ‘못’ 씁니다…


매 순간 가장 적합한 처세를 골라내

이행할 만큼의 순발력이 없습니다.


매번 빛의 속도로 매끄러운 멘트를 생각해내고

 상황마다 무언의 질서를 의식하고 있기엔 솔직히 능력이 안 따라줍니다..


기어이 그렇게 해 내도록 제 머리를

혹사시키고 싶지도 않습니다.





제 주위엔 매 상황을 빨리 파악하고

상대를 신속히 읽으며

민첩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화 속에 특유의 스마트 함을 인정받으며

옆 사람을 한 없이 작아 보이게 만드는 사람.

때마다 알맞은 처세로 게 중에 유독 눈에 띄는 사람.


웃는 얼굴로 남의 코를 베어 가고도

곧 잘 들키지 않는 사람,

두 갈래로 갈라진 뱀의 혀 처럼

한 입으로 두 말을 천연덕스럽게 하는 사람, 

매번 수를 써서 손발을 덜 고생시키는 사람

말입니다.


한동안 이런 류의 “똑똑이” 들이 내심 부러웠습니다.


‘나는 왜 분위기 파악을 빨리 못하지?’

,’ 나는 왜 눈치가 없지?”

 ‘나는 왜 …. 우둔하지…?’ 하며 자책했습니다.  


똑똑이들 옆에선 영 미련한 제 자신이

한 없이 작아 보였습니다.



그 후’ 권모술수’라는 한자성어를 접하고는

마음을 달리 먹었습니다.


권모술수란 좋게 말하면 재주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속임수입니다.


 “저 사람은 권모술수에 능하다”라는 표현은

 ‘저 인간은 늘 경계하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삼국지의 제갈공명은 ‘권모술수에 능한 사람이었다’라고 칭찬하는 긍정의 의미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엔 적을 무찔러야 하는 ‘전쟁’ 중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있었지요.


혹시 당신은 인정이 많고 성격이 강직하며 정당한 보상을 받는데 익숙한 사람인가요?


 "Yes"라고 답한다면 당신은

주위의 권모술수에 강한 사람이 버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제가 동경했던 그 똑똑이들은 하나 같이

롱런을 하지 못했습니다.


비상한 머리를 갖고도 정도에서 벗어난

자신의 한 수에 늘 몰입해 있다 보니

결국 일이 터졌고 모든 정황이 탄로 났습니다.


똑똑이들이 자신의 야망에 따라 입장을 바꾸며

의리를 지켜야 할 사람에게 안면몰수,

뒷면 커버를 하는 바람에


인간관계 속에 신뢰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그런 똑똑이가 아닌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바보 이반처럼 살고 싶습니다.  



바보 이반이 누구냐고요?

러시아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

어느 마을에 3남 1녀를 둔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아버지에게는 유독 벙어리 딸과

어리숙한 바보 이반이 늘 아픈 손가락이었습니다.


씩씩한 군인인 첫째, 영리한 장사꾼인 둘째와

비교했을 때 이반이 얼마나 모자라게 보였겠어요.


약삭빠른 첫째와 둘째는 늘 자신의 몫을

아버지께 요구하고 이반이 보는 앞에서 챙겨갑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악마의 속임수에 넘어가 파멸을 맞습니다.

악마는 형들의 강한 욕망으로 눈을 가립니다.

군대의 야망을 품은 맡 형에게는

전쟁과 약탈의 ‘야망’으로

재물의 야망에 빠진 둘째에게는

재물의 ‘야망’으로 접근합니다.


그 결과 첫 째는 전쟁에서 참패합니다.

재물욕에 빠진 둘째는 결국 파산하게 됩니다.




반대로 이반은 자신만의 정직함과 우직함으로

일상을 이어나갑니다.


미련함의 상징이었던 농사일,

그 농사일을 묵묵히 하기 위해 휘두른

쟁기와 도끼에 유혹을 하러 찾아온 악마의 꼬리가 잘려나가고 항복을 받아냅니다.



악마를 물리치는 과정에서 얻은 능력으로

죽어가는 공주를 살려 결혼까지 합니다.

매 순간의 자리에서 자신의 신념을 이어나간

묵묵함이 모든 것을 가능케 했습니다.


이쯤 이면 해피엔딩으로 끝나야 하는데

악마들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한 번 더 찾아옵니다.


그리고 온갖 술수는 계속됩니다.



나중에는 이반의 나라 사람들에게

손으로 일하는 바보 이반의 나라가

너무 어리석다며 충동질을 해댑니다.


“머리를 쓰면서 일해라!!”라고 대놓고 외칩니다.


마지막 악마의 발악에

이반 나라 사람들은 “일은 몸으로 하는 것이다”라는 말로 악마의 멘탈을 털어버립니다.


잠깐, 여기서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밑도 끝도 없이 바보가 되어 비 효율적으로

일하자고 권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올바른 신념을 이어가되

수를 쓰는 지름길보다는 바른길로 나아가라는

당부의 스토리텔링입니다.




모든 악마의 꿰임은

결국 남 보기에 바보스럽고 미련하기까지 한

이반의 성품으로 인해 실패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악마의 꽁무니를 절단시키고 혼쭐을 내준 무기는

다름 아닌 묵묵함과 우직함이었습니다.


이반이 눈 한번 질끈 감고 단번에 타협했으면

 큰일 날 뻔했네요.





그러고 보니 아기돼지 삼 형제의

막내 돼지도 묵묵히 해야 할 일을 감내했기에

늑대가 달려와도 끄떡없었네요.


“까이꺼 대충”의 술수를 부려 집은 지은 두 형님들은 결국 막내에게 신세를 져야 했으니 말입니다.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습니다.

편법과 권모술수에 능하지 못하면 웬만한 업계에서는 명함도 못 내미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인생이 그만큼 복잡한 것만 같아 보여도

의외로 단순합니다.


바보 이반과 막내 돼지처럼

그래도 가야 할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이

결국 이깁니다.





스티브 잡스의 스탠포드 졸업식 축사로 유명한

“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명언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헝그리 정신으로 무모한 도전을 하라는 뜻입니다.  


돌아가신 잡스 님께 죄송하지만

  ‘Foolish’라는 대목에서 제 나름의 개인적인 주석을 첨가하고자 합니다.


저는 이 표현을 보고 들을 때마다

바보 이반이 떠오릅니다.


 ‘바보 같은 무모한 도전’에 플러스 알파로

‘미련할’ 정도로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라고

 격려하는 것 같습니다. 


마치 과거의 자신처럼 말입니다.


왠지 더 잘 될 것 같은 신기루를 쫓아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지 말고…


술수에 밀려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잘릴지언정

미련하고 묵묵하게 걸어내라고

격려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속내를 감추고 에둘러 말하며 상대의 환심을 사는 사람,

꼼수를 부려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사람.


이 처럼 각자 삶의 자리에서

나를 작아 보이게 만드는 똑똑이들이

한 두 명은 있으실 겁니다.


이 글을 읽고 뒤돌아서서 그 ‘똑똑이’ 들을

다시 대면하실 겁니다.


그들이 결코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니

더 이상 비교하고 낙심하며 자책하지 마세요.





의외로 똑똑이들 에게도 허점이 있다는 것을

요 근래 깨닫습니다.


이들은 가끔 상대가 바보가 아니라는 것을,

나 만큼이나 혹은 나보다 더

똑똑할 수도 있다는 것을 종종 망각합니다.



생각 이상으로 세상에는 사람을 예리하게 보는 눈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상대의 잔 재주나 임기응변 능력보다는 그 사람이 과연 신뢰할만한 대상인가

 아닌가를 판단합니다.


그 사람의 그릇과 재능은 차 후의 문제입니다.


꼭 나중에 사고를 치고 피해를 입히는 사람은

정직하지 못하면서 잔 재주만 부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 보는 ‘’이 있는 사람은

너는 어떤 것을 할 수 있냐 (Doing) 보다

너는 어떤 사람이냐 (Being)의

에너지를 느끼려 합니다.


Doing은 지식을 쌓으면 될 일입니다.

학원에 등록하면 알아서 가르쳐줍니다.


하지만 Being은 당신의 본질입니다.

당신의 내용물입니다.


급조해 낼 수 없는 ‘당신 그 자체’입니다.  






각자의 Being속에 우직함과

권모술수를 쓰지 않는 정직함으로 채워갈지


OR


현란한 Doing 들로 가득 메워

상대를 현혹시킬지  


둘 중에 취사선택은 여러분의 몫으로 남겨두고

글을 마칩니다.

 


채근담


성서 고전 1:27-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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