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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트 Dec 22. 2023

1시간 42분

돌아가는 길이 멀어 조금 더 머물기로 했습니다

어디를 가나 연말과 여행과 크리스마스얘기다. 휴가계획이 뭐냐고 묻는 질문을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르겠다.

회사 캘린더를 확인해 보니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Out이었다.

대체 연말에 사람들은 무엇을 하는 걸까.

어쩜 이렇게 온 나라 사람들이 무엇에 홀린 듯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 하고 떠나는 것일까.

그래서 왜 무난히 흘러가는 내 하루가 이상하게 보이게 만드는 것일까.


해가 너무 짧아졌다.

6시가 되기도 전에 하늘이 오롯한 남색으로 변하고 곳곳에 작은 전구며 조명이 더욱 극명하게 빛난다.

요 며칠 연달아 희한한 꿈들을 꾸었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좋게 좋게 생각하고 그 해몽이 현실이 되어 주길 바라며 아침잠을 몰아내는 요새였다.

폭닥폭닥한 이불을 몸에 칭칭 감고 깨끗한 아침 하늘을 보자면, 이 집이 동향인 탓에 이른 아침 잠깐동안만 이 햇살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새삼 사람을 가라앉게 만들었다.


내 의지가 아닌 이사가 잦다는 건 사람을 참으로 외롭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 어느 동네에도, 심지어 내가 온 하루를 보내는 공간에 마저 마음을 붙일 수 없게 한다.

이젠 익숙하지 싶다가도 계약 연장 여부를 물어오는 공인중개사 전화를 받고 나면 애써 얇은 천으로 덮어둔 한 구석 뻥 뚫려있는 벽을 주먹으로 툭 치여버린 기분이다.

어쨌든 몇 달이 지나면 다음 주거지가 정해지겠지만, 새로운 곳을 가든 이곳에 더 머무르든 결정을 내렸을 것을 알지만 그 지난하고 번거로운 과정을 너무나 잘 알기에 한숨부터 나온다.


와중에  내 마음의 호수에 돌을, 어떤 때는 그 호수가 증발할 거 같은 화기(火氣)를 던져버리는 듯한 일들이 지나가면 참말로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감각이 가슴 한가운데서 느껴져서 눈앞이 아른거리는 것을 참기 어려웠다.


그제에는 채혈을 하러 보건소를 가느라 이 귀중한 빙하색 하늘이 가득 찬 한낮의 2시간을 사용하게 되었다. 보건소를 가느라 20분이나 썼을까, 채혈을 하는데 10분이나 걸렸을까, 헌데 보건소 주차장에 들어가지를 못해 근 40분을 멍하니 차 안에 앉아 있어야 했다. 그리 속이 타는 일은 아니었다. 처리하고 나오지 못한 일이 머릿속에서 맴돌고 끊임없이 내 퇴근시간을 조정하는 것만 뺀다면.

채혈직후, 내 혈관은 잘 계신가 확인하려 소독솜을 바로 뗐더니 그 조그만 바늘구멍으로 피가 주르륵 흘러 금세 바닥에 똑똑 떨어지는 것이었다. 놀란 마음에 급하게 솜으로 채혈부위를 누르고 보건소 직원에게 다가가니 더 당황한 눈으로 급하게 핏자국을 닦아주셨다.

그분은 분명히 얘기했었다. 최소 3분은 꾹 누르고 있으라고, 그렇지 않으면 혈관이 부을 거라고. 멍하니 있다 흘려들어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엔 팔꿈치안쪽에 시퍼런 멍이 들었다.


특별히 애쓰는 것도 없는데 왜 하루하루가 이리 맥이 없을까. 가다듬을 마음이 뭔지도 모른 채 출근했다 결국 사무실을 박차고 나왔다. 이곳저곳을 쏘다니다 보니 집에서 몇십 킬로가 떨어진 곳까지 와버렸다. 막상 돌아가려니 오는 데 걸린 시간에 두 배는 걸렸다.

지금 돌아가겠다고 고집을 부려봤자, 꽉 막힌 고속도로에 내 기름값만 한 푼 두 푼 떨구는 일밖에 되지 않겠지.


밤하늘이 남색에서 짙은 회색의 파란색으로 변하고 나니, 카페에 있어도 발끝에는 이미 한기가 가득 머금어졌다.

눈앞에 도마를 열심히 닦는 저 직원은 언제 집에 갈까. 집이 가까울까. 이렇게 조용한 곳에 있으면 심심하지 않을까. 괜스런 생각이 스쳐간다. 괜스런 생각이라도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더 크고 복잡한 잡념이 치고 들어올 것 같았다.


난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내 뒤에 앉은 저 인간은 저리 재잘재잘 몇 시간을 쉼 없이 말을 할 수 있는지, 상대는 중간에 말 한 번 끊는 법도 없이 그 말을 묵묵히 다 들어줄 수 있는 건지.

분명 지난날 속상한 일을 얘기하고 있건만 그 누구보다 신이 나 보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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