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26살의 직장인으로 어제 합정에 다녀왔다. 나에게 추억이 깃든 장소에 갔다 오니, 다시금 그때의 일이 생각이 나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대학생 때 기숙사에서 살았다. 기숙사는 지역점수와 성적을 합산해서 선정하였는데 지역이 수도권인 아닌 지방이 본가인 사람들은 거의 붙었다. 그러나 학점 관리를 안 하는 사람들이나 벌점이 많이 쌓인 사람들은 종종 떨어지고, 학교 앞에서 자취를 해야 했다. 1, 2학년 때와 3, 4학년 때 캠퍼스가 달랐는데 1, 2학년 때는 학교 앞 5분 거리에 자취를 할 수 있는 장소가 많아서 기숙사보다 자취를 선호하는 사람도 꽤 있었지만 3, 4학년 때는 학교 바로 옆은 자취할 수 있는 장소가 마땅치 않아 버스를 타고 나가야 해서 기숙사의 경쟁률이 조금 더 높았다.
1학년 1학기 때 교내 동아리 하나를 했다. 작곡, 작사하는 동아리였는데 그 시기쯤 꽤 호감을 가지고 있는 같은 과 선배를 대상으로 노래를 만들다 2학기 때 어쩐지 자연스럽게 흥미가 떨어져 그 동아리를 나오게 되었다. 1학년 2학기 때는 대부분을 기숙사 안에서 보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와 쌓아 놓고는 공강 시간에는 침대에서 책을 읽었다. 그게 아니면 영화를 틀고 영화를 봤다. 룸메이트와 수업시간이 거의 겹치지 않았기 때문에 룸메이트가 나갈 때는 방 안에 오직 나뿐이었다. 그렇게 가을, 겨울을 보내고, 1월쯤 학교가 눈으로 하얗게 뒤덮인 어느 날 올해는 학교 밖에서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대학교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만나는 사람들이 전부 초등교육과였다. 그래서 2학년이 되던 해부터는 공강이 있는 요일이나 주말이면 무조건 밖으로 나갔다. 과 사람들은 몇몇 무리를 이루어 함께 여행도 가고 같이 밥도 먹곤 했지만, 나는 왜인지 그런 것들이 불편했다. 혼자서 처음 보는 사람들에 둘러싸이고 싶었다.
그 시기쯤 룸메이트는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주기적으로 남자친구에게 꽃다발 선물을 받았다. 그녀는 선물을 받으면 그 꽃을 드라이플라워로 말려놓고 기숙사 책상에 놓아놓곤 했다. 나는 그 시기에 남자친구가 없었고, 자취방도 아닌 다 같이 쓰는 기숙사에 별 애정이 없었기에 내가 직접 꽃다발을 사서 말려놓을 생각은 딱히 하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학교가 있었기 때문에, 애초에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것이 처음이었고, 자취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으며, 기숙사도 대학생이 되어 처음이었다. 그 시기는 밥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몰라 다소 실험적인 일상을 살고 있었다. 평일은 조식, 중식, 석식 모두 학식으로 해결하면 되었지만 주말은 학생식당이 문을 열지 않아 난감했다.
고등학생 때 나의 본가인 대구에서 함께 대입 스터디를 같이하며 알게 된 다른 과 친구를 불러 함께 먹거나 학교 앞 5분 거리 반찬 가게에서 사 온 반찬과 햇반을 같이 먹거나, 학기 초 엄마가 싸주신 반찬을 먹는 식으로 끼니를 때웠다. 1년 전에는 기숙사 식당에 몇몇이 컵밥을 먹고 있어서 시도해 봤지만, 소고기 컵밥이라고 적혀있는 컵밥에 소고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생각 없이 30개를 한 번에 산 까닭에, 남은 29개의 '소고기 없는 소고기 컵밥'을 꾸역꾸역 먹기를 시도하다 결국 공짜로 기숙사에 사는 동기들에게 나누어 준 후 절대 컵밥 따위는 먹지 않았다.
학교 밖으로 나가기로 다짐했기 때문에 나는 서울의 한 지역이 꽂히면 그 지역을 한동안 돌아다는 식으로 시간을 보냈다. 하루는 같은 과 선배가 합정역에 있는 탱고 카페를 추천해 줘서 합정에 갔다. 이 선배는 1학년 때 주량을 모른 채 술에 취했을 때 나를 기숙사까지 데려다준 선배이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아직까지 연락을 하고 있는데, 어쨌든 카페의 분위기도 너무 좋았고, 일요일 저녁 8시부터는 사장님이 탱고 강의도 하시고 수강생을 키우는 듯 보였다. 7시 25분쯤이 되자 수강생들이 하나둘씩 들어오며 처음 보는 나에게 "안녕하세요"라고 했는데, 나는 상대가 인사를 할 줄은 몰랐기에 눈인사로 얼버무렸다. 그 이후에도 사람들이 여럿 들어왔는데, 읽고 있던 책이 너무 재미있어 집중하고 싶기도 했고, 굳이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인사를 해야 하나 싶기도 해서 그냥 고개를 내리 깔고 계속 책을 읽었다. 7시 40분이 되자, 사장님이 일요일은 항상 8시까지만 영업한다고 하셔서 7시 58분쯤에 나왔다. 그런데 하늘색의 길바닥이 낭만적이고 분위가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여기 와야겠다 다짐했다.
그리고 그다음 주 금요일은 수업이 없는 날이었다. 이런 날은 참 신기하게도 눈이 일찍 떠진다. 오전 6시에 일어나 프랑수아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을 한 권 다 읽고, 점심을 먹은 후 합정의 한강뷰 카페에 갔다. 그 카페는 '블러'라는 카페인데 창문 밖으로 한강과 국회의사당이 보인다. 바테이블 자리가 명당인데 앞사람이 일찍 나간 덕에 카페에 들어온 지 1시간 만에 바테이블에 앉을 수 있었다. 책을 읽다가 지겨워지면 풍경을 감상하고 카페 안 사람들을 구경했다.
기숙사 통금시간은 12시 30분이었고, 그때가 되면 문이 잠기기 때문에 적어도 11시에는 나갔어야 했다. 그즈음 막차 시간이기도 했기에 나는 10시 40분쯤 나갈 준비를 했다. 카페에서 역까지는 10분이 걸리기에 11시 전에는 충분히 탈 수 있을 것이다. 3월이었고, 아직 겨울이 가시지 않아 쌀쌀함과 추움을 오가는 날씨였다.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하늘색의 밤거리를 걷고 있는 중 나와 마주 보는 쪽에서 한 남자가 내 쪽으로 오고 있었는데 내 시선을 끌었다. 검정 셔츠에 검정 재킷, 통 큰 청바지, 검정 비니를 쓰고 얼굴은 맥반석 달걀을 깐 것 같이 매끈하고 까맸다. 약간 마른 듯한 체형이었다. 마른 체형을 보완하기 위해 통 큰 청바지를 입은 듯했다. 선해 보이는 인상이었지만 선은 날카로워 마냥 만만해 보이는 인상은 않았다. 옷이 평소에 이상형이라고 꼽은 옷 스타일이었고, 나 또한 검정재킷에 검정데님치마, 흰 크롭셔츠를 입고 있었기에 지금 바로 인생 네 컷 같은 곳에 들어가 함께 사진을 찍는다면 꽤나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그 남자와 나는 서로 스쳐갔다.
저번에 한 번 이런 의상의 사람을 거리에서 한 번 놓친 적이 있기에 얼마나 오랫동안 여운이 남아 마음속에 머무르며 아쉬움을 자아내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결코 흔치 않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나는 다시 뒤돌아봤다. 그 남자는 저쪽 길 건너편에 있었고, 그도 뒤돌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시간은 10시 50분이었고 내 전화번호만 주고 오면 될 것이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저 남자가 먼저 다가와주길 기다릴 순 없다. 여기서 더 지체하면 막차가 떠난다.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다가갔다. 내가 다가가자 그 또한 발을 떼지 않고 가만히 멈춰서 있었다.
"저기요, 너무 제 스타일이셔서 그런데 제 번호 드려도 될까요."
그는 핸드폰을 내밀었고, 내 번호를 찍었다.
그는 내 폰으로 전화를 걸었고, 그의 번호를 알게 되었다.
"이 주변 사세요?"
"네, 저 이 동네 살아요. 이 동네 사세요?"
"아니요 저는 인천이요"
"지금 막차 타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네 타러 가던 중이었어요."
오늘은 금요일이고, 기숙사 통금을 하루 어기면 벌점을 받게 된다. 거기다 아빠가 절대 헤픈 행동은 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럼 남자는 결혼할 여자로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룻밤 즐기는 여자일 뿐이라 했다. 1분 전에 본 남자와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냥 아빠 말을 듣기로 한다. 이것은 20년 간의 오랜 교육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기숙사 안 들어가면 어떻게 돼요?"
"네?"
"내일 주말인데 오늘 안 들어가고 이야기 좀 더 나눠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래 내가 이 남자랑 자겠다는 것도 아니고, 21살에 외적으로 이상형인 남자와 밤새며 이야기하는 것, 그건 나중에 인생을 되돌아봤을 때 기억 남을 사건 중 하나일 것이다. 이제 성인이니 이런 것쯤은 나의 판단하에 하는 것이다. 여긴 안전하고 사람이 많은 서울의 금요일 밤이다. 내 또래라면 오늘 같은 날에 보통 새벽까지 술을 먹거나 밤을 새우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그 짧은 순간에 찬 바람과 함께 내 머리를 지나갔다. 그리고 지금 이 남자를 보는 순간 잠이 다 깨서새벽까지 맑은 정신으로 깨어있을 자신이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며 가만히 그 남자의 맑은 눈을 쳐다보며 말똥말똥한 눈을 하며 서있었다.
"딱히 상관은 없어요. 벌점도 딱히 지장 될 만한 것도 아니고"
"그럼 가시죠. 이 주변에 4시까지 여는 바가 있어요"
나는 5분 전까지는 분명 기숙사에 가서 씻고 얼른 자려고 했다. 일단 룸메이트에게 카톡을 보냈다.
나 오늘 못 들어갈 듯 ㅠㅠ - 엉? 왜?? 내 스타일인 남자 만남 ㅋㅋ 번호 땀 같이 바가서 얘기하기로 함 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오키 잘 갔다 와ㅎㅎ 어딘데? 합정역 ㅋㅋㅋㅋ럭키스트라이크 가기로 함. 4시까지 한대 ㅎㅎ -알게땈ㅋ 파이팅 ㅎㅎㅎ
나는 키위 마티니, 그는 버드와이저 한 잔을 시켰다.
"저 어떤 게 마음에 드셨어요?"
"옷. 제가 평소에 좋아하는 스타일이에요." 수줍은 듯 웃으며 말했다.
"근데 아까 왜 저 보고 계셨어요?"
"저랑 비슷하게 입으신 것 같아서요. 저도 그런 스타일 좋아해요"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24살이요. 그쪽은?"
"21살이요. 학교 다니세요?"
"네. 학교 여기 바로 앞이에요. 학교 다니세요?"
"네"
"과가 뭐예요?"
"음.. 바로 말해주면 재미없으니까, 대화하면서 맞춰보세요."
그는 1학년 때부터 자취를 했고, 자취 5년 차라고 했다.
"저는 고등학생까지는 세종시에서 살았었어요"
여러 미술 작품에 대해서도 잘 알고, 역사에 대한 지식도 풍부한 것 같았다. 소설 또한 꽤 읽는 것 같았다.
그에게서는 섬유유연제 향이 났다. 향기가 꽤 좋은 것으로 보아 아마 섬유유연제 향의 향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다. 부드러운 목화향이 그에 대한 경계를 조금 더 풀어주는 효과가 있는 듯했다. 그는 외동이라고 했다. 내가 아는 정보는 여기까지이고 다정한 말투였다. 왠지 모르게 안전한 사람인 것으로 판단이 됐다.
4시쯤이 되자 그는 첫차 시간을 물었다.
"5시 35분이 첫 차네요."
"아직 1시간 35분이나 남았네."
우리는 주변에 24시간 여는 장소를 찾아봤지만 마땅치 않았다.
"저희 집 갈래요? 잠깐만 있다가 첫 차 타면 될 것 같은데"
죽지는 않겠지? 괜찮을 것이다. 그는 안전한 사라이다. 5시간 동안 그를 지켜보고 내린 내 판단은 옳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한 짓이었지만 그때는 왜인지 안전하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러나 범죄자들도 엄청나게 친절하다고 하지 않았나. 온화한 성격, 상냥한 얼굴.
그때는 그것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그의 자취방에서는 그에게서 나는 향과 똑같은 목화향 섬유유연제향이 났다.
남자의 방 치고는 매우 감각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는데, 곳곳에 자신이 그린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고, 은은한 조명이 그 그림들을 더욱 돋보이게 해 주었다.
그가 좋아한다고 했던 작가들의 책이 꽂혀있었다. 하루키, 다자이 오사무, 카뮈, 밀란 쿤데라. 그가 대화했을 때 말했던 그대로였다. 그가 말했던 것이 하나하나 맞아떨어지고, 나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음에 안심했다.
"일러스트과?
"공대예요. 건설공학 쪽. 일러스트는 취미예요."
벽면 위에 붙여진 고리에 티셔츠 한 장이 눈에 띄었다. 매장에서 흔하게 파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이 티셔츠 직접 디자인하신 거예요? 제가 오늘 오전에 읽었다고 했던 책 표지랑 디자인이 정말 비슷해요"
"그 느낌으로 만들어보려고 한 거 맞아요." 그는 멋쩍은 듯 웃었다.
티셔츠 타이포 그래피가 정형화되어 있지 않고 감각적이었다.
"글씨도 쓰세요?"
"캘리그래피 동아리 친구한테 배웠어요. 글 창작 동아리가 있는데 거기서 가끔 일러스트 요청하면 도와주기도 하고 알바 겸으로" 그는 살짝 머뭇거린 후 나에게 말했다.
"이 티셔츠 마음에 드시면 드릴까요?"
"한 장 밖에 없는 거 아니에요?"
"마음에 드셔하는 것 같아서. 이거 파일 다 있어서 새로 찍으면 돼요."
"정말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 다음 주에 이탈리아로 유학가요. 그래서 머뭇거렸던 거예요. 말을 걸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
어떻게 이상형인 사람을 만났고, 나와 이렇게 비슷한 사람을 만났는데 다음 주에 유학을 갈 수가 있지? 이런 일이 일어나기도 하구나. 얼굴에 살짝 스쳐간 듯한 아쉬운 표정을 고치며 말했다. "다음 주 언제 출발이세요?"
"월요일 아침 비행기예요. 주말까지 같이 있을래요?"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잘 모르겠고, 너무 오래 눈을 떠있었다.
"일단 좀 자고 생각해 볼게요."
나는 화장실로 들어가 그에게 방금 받은 티셔츠로 갈아입고 그가 준 트레이닝복 바지를 입고 양말을 벗고 침대 안으로 들어갔다. 그에게는 자신이 만든 다른 티셔츠가 하나 더 있었다. 취미로 그냥 만들고 인쇄한다고 했다. 시중에 파는 옷과 다르게 혼자 만들어서 입으면 그다지 돈도 안 들고 오히려 옷에 드는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내 앞에서 옷을 벗고 스키보드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었지만 나는 잠이 쏟아질 듯와 눈이 저절로 감기는 상황이었기에 그의 몸을 자세하게 보지는 못했다. 나와 디자인만 조금 다른 검은색 트레이닝복 바지를 입고 양말을 벗고 침대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나란히 누운상태여서 천장을 바라봤다. 그에게 등을 돌리는 건 오히려 더 어색해질 것 같았고 그를 의식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천장을 보고 눈을 감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우리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눈을 떠보니 낮 2시였고 그는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해주었다.
"커피 마셔?"
"응"
"갑자기 말 놓네."
"먼저 말 놓았잖아."
"뜨거운 거 차가운 거"
"따뜻한 거"
그렇게 점심을 먹고,
저녁은 근처 이탈리아 음식점에서 먹었다.
"이런 거 이제 계속 먹겠네?"
"그리울 것 같아, 한국 음식"
"오늘 다른 거 먹을 걸 그랬나. 이런 거 이제 실컷 먹을 텐데."
"이런 거 못 먹은 지 오래됐다고 했잖아. 이거 먹는 게 맞았어 오늘은"
일요일에는 아침은 집에서 간단한 버터 토스트, 점심은 닭갈비, 저녁은 스키야키를 먹었다.
그리고 일찍 들어가 그는 새벽 4시쯤 눈을 아침 비행기에 오를 준비를 했다. 무언가 일을 저지르기에는 유교의 도덕률이 내 온몸에 배어 있었고, 그도 나에게서 그 기운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나 같은 상태의 여자애한테 억지로 뭔가를 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그 또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애초에 나에게서 성욕을 느끼지 못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분위기 상으로 그건 아니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5시 30분에 합정역에서 헤어져서 그는 공항철도를 타고 인천국제공항으로 가서 9시 15분 비행기를, 나는 1500번 광역버스를 타고 40분 만에 학교로 가 월요일 1교시 도덕과 교육론 수업을 들으러 갔다.그 날 강의 주제는 콜버그의 도덕성 발달 단계였다. 콜버그에 따르면 나의 도덕성 발달 단계는 어느 정도인가 생각해 봤다. 수업 내내 그것에만 꽂혀서 생각하느라 다른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처벌 피하기 위해, 아니고, 욕구 충족도 아니야. 일단 1, 2단계는 아니야. 사회 질서 생각하면서 행동, 딱히? 마지막, 후관습적 수준, 6단계, 보편윤리적 원리의 단계, 도덕적 원리에 따라 스스로 선택한 양심적인 행위가 올바른 행위라고 본다.' 종이 쳤다. 문 앞에서 바로 다음 수업을 듣는 다른 과 학생들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바로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그는 그날 오후 11시, 다빈치 공항에 막 도착한 후, 무사히 잘 도착했다고 연락했고, 잘 자고 내일도 학교생활을 즐겁게 하라고 했다. 나 또한 그의 유학 생활을 응원한다고, 한국 오면 연락하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무단 외박을 3일 연속이나 한 나는 벌점 3점이 쌓였지만, 그 학기 내내 개강 달부터 쌓인 벌점을 만회하기 위해 두 세 과목을 제외하고는 A이상을 받은 덕에 다음 학기에도 무사히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성적장학금 100만원도 받았다. 날씨 좋은 5월에는 홍대 축제에도 갔었다. 잔나비가 확 떴던 해라 잔나비가 와서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를 불러주었다. 그 와 그 문자를 끝으로 다시 연락을 한 적은없다. 이 이야기를두 번 정도 한 적이 있는데 모두재미있게 들어 주었지만 정말로믿는 것 같지는 않았는 않았다. 이제는 동네방네 떠벌리고 싶지도 않아서 더 이상 말하고 다니지 않는다.믿거나 말거나 이것이 사실임은 변하지 않는다. 그 이후에 나는 다른 사람을 만났고, 그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그리고 가끔 그가 첫 남자였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그가 한국을 떠났던 주, 일요일 저녁. 기숙사 방으로 돌아와 그의 침대에 누웠던, 그가 그렸던 흰색 반팔 티셔츠를 입고 침대에 등을 기대어 노트북으로 타이타닉을 보며 생각했다.
자신의 철학은 부모님의 말씀을 바탕 삼아 자신의 경험으로 갈고닦고 수정해 나가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콜버그 도덕성 6단계를 향해. 영화를 본 다음날 월요일1교시, 늦지 않게도덕과교육론1 수업을 들으러 갔다. 그로부터 3년 후 나는 교사가 되기 위해 임용시험을 쳤다. 그 해 도덕과목에는 콜버그 문제가 나왔다. 나는 그 문제를 맞히고 합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