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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하 Sep 27. 2024

한강뷰 카페 바테이블에 앉아

24.09.27 금요일, 오후 8시 48분

지금 국회의사당이 보이는 카페의 바테이블에 앉아있다.

검정 가죽자켓을 입고 있다.

이 옷은 왠지 모르게 안정감을 주고 나를 지켜줄 것 같다.

위에는 흰색 크롭 셔츠, 소매는 세 번 정도 걷어올렸다.

단추는 위에서부터 3개, 아래로부터 2개를 남겨놓고 모두 잠그었으며

안 잠근 단추의 개수가 더 많다.

아래 단추를 2개 풀면 셔츠의 아랫부분이 두 갈래로 나누어지는 모양이 되는데

그걸 묶어서 다시 한 갈래로 만들었다.

마치 혼란했던 인생을 한 가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바로잡듯이.


방금 윗 문장을 적을 때 맥북 위로 벌레가 지나가서 두 손바닥으로 짝 소리를 내며 잡았다.

모기였다.

피가 나오지 않는 것을 보니, 내 종아리를 물었던 모기는 아닌 것 같다.

오늘 아침에도 자취방에 있는 날벌레를 잡았다.

벌레를 보고 기겁하며 피한 적은 태어나서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벌레라는 것을 보면 언제나 잡고 싶어 안달이었다.


이 글쓰기라는 건 7살 때부터 해오던 행동으로

이걸 하지 않으면 제대로 못 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를 바로잡기 위한 행동으로,

저번에 어쩌다 알게 된 남자와 한강에 갔을 때

그 남자가 "250만원 받고 작가하기, 대신 별점 2점 이상 vs 500만원 받고 교사하기, 대신 글 못 씀" 밸런스 질문을 했는데 나는 글을 아예 못쓰는 거면 무조건 전자라고 했다.


어쨌든 다시 옷 얘기로

아래는 검정 데님 치마.

이 의상은 거의 내 시그니처가 되는 듯하다.

나는 옷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계속 입는다.

이 카페에서 시킨 음료도 시그니처 커피다.

에스프레소와 크림과 우유가 섞여있는, 위에는 참과자나 아이비로 추정되는 크래커가 올려져 있었는데

처음에 바로 안 먹고 컵의 끝까지 푹 담근 후 먹었다. 이 방법을 추천한다.

크래커 위에 크림이 올려져 있는 상태로 먹으니 더 달고 적당히 녹아서 맛있었다.

처음 커피가 왔을 때 상태는 아래는 에스프레소, 위에는 크림의 형태에다 맨 위에 크래커가 얹어져 있는 형태라, 색은 아랫부분은 갈색이 2/3, 위의 1/3 부분은 흰색이었다.


요즘 나는 이렇게 돌아다닌다.

여긴 합정역 7번 출구에서 내려서 10분 정도 걸으면 나오는 카페이다.

저번주 일요일 합정역에서 내려서 탱고음악이 흐르는 북카페에 갔는데 나오는 길에 길 풍경에 반했다.

오늘 금요일이었고 3시에 조퇴를 했다.

나는 원래 자유가 중요한 사람인지, 어쩌다 돈보다 시간을 보장해 주는 직업을 가지게 되어서 히피 여자애처럼 지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쩌다 보니 이렇게 돈보다 시간을 중시하는 사람이 되어있는 것 같다.


원래 15일 이상 조퇴를 안 하고 풀근무를 해야 시간 외 근무수당을 모두 주지만, 나는 요즘 그런 거 상관 안 하고 수요일, 금요일 이틀은 죄다 조퇴를 갈겨버리는 것 같다. (한다 보다는 역시 갈긴다는 표현이 조금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이유는 글 쓰고, 책 읽고, 직장이라는 공간을 벗어나는 게 나에게 너무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조퇴를 하니, 더 밝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여행도 방학 때 갈 여행을 미리미리 예매를 해놓으니 인생이 즐겁다.


1학기 때는 학교 갈 때 좀 꾸미고 갔는데, 화장도 매일 하고,

2학기 되니 화장을 안 하고 가고 싶은 날이 많아졌다.

그래서 화장 안 하고 안경 쓰고 가는 날이 거의 대다수다.

자연상태라는 사실이 기분이 좋을 때가 많다.

직종도 대다수가 자연상태로 출근하는 사람이 많아 딱히 이질감이 들지는 않는 듯하다.


이 직업의 좋은 점은 아무래도 내 개인 사무실, 교실이 있다는 점이다.

전담이 많은 은 너무 좋다.

애들이 다 나가면 대부분 나 혼자 책을 읽는다.


나는 극강의 효율을 추구한다.

애들이 있을 때는 소설을 못 읽기 때문에

주제글쓰기 검사나 독서록 검사를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등 틈틈이 한다.


고등학생 때도 이랬던 것 같다.

세계사 공부를 하다가 반 애들이 너무 떠들어서 집중이 안 되면

바로 수학을 꺼내서 수학을 풀었다.


시간을 1초도 허투루 쓰는 법이 없다.

어제와 오늘은 새벽 4시쯤에 알람을 듣고 일어나서 글을 쓰고 출근했다.

학교는 집에서 걸어서 15분 거리.


이번주에 어떤 다른 반 애가 내가 사는 곳을 언급하며 "선생님 혹시 ~사세요?"라고 물었다.

내가 왜?라고 물으니 "저 거기 사는데 선생님 자주 마주쳐서요"라고 했다.

나는 대답을 안 하고 그냥 웃으며 지나갔는데, 그날인가 그 뒤에 날

같은 층에서 그 여자애를 만났다.

그래서 나는 "어, 안녕!"이라고 웃으며 인사했다.

나는 사실 별로 상관이 없다.

내가 고등학생 때도 우리 아파트에 영어 선생님이 사셔서 거의 매일 같이 등교를 하며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있어서 딱히 신경이 쓰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시, 나는 바테이블에 앉아있고, 원래 이 좌석은 2시간이 지나면 일어나야 하지만 내 옆에 한 자리가 남았기에 비켜줄 필요 없이 계속 이곳에 있어도 될 것 같다.

국회 의사당을 처음 보는 것 같다. 바로 정면에 국회의사당이 있고, 나는 그걸 보면서 이걸 쓰고 있다. 위에는 민트색깔 반원이 있고, 그 반원의 밑부분은 흰색 띠가 감싸고 있다. 그 흰색 띠 안에는 검정색 네모가 창문처럼 다다다 있는데 저게 창문인지 그냥 구멍인지까지는 멀어서 잘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아래에는 아마 창문으로 추정되는 또 많은 네모들이 있고, 기둥들이 10개 정도 있다. 초등학교 수학시간에 배우는 물체를 앞에서 본 모양은 이렇다. 옆에는 서로 다른 높이의 고층 건물이 13개 정도 있다. 불빛이 번쩍번쩍거리는데 참 건물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이 바테이블은 살짝 높은 감이 있는데 낮은 것보단 낫다. 허리를 쫙 펴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 허리를 구부리고 거북이처럼 쓰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꽤 괜찮다.


이 카페는 4층이어서 건물의 윗부분이 보이는데 지금은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지만, 6시쯤 해가 떠있을 때 봤을 때 그리 아름답지는 않았다. 문득 키가 큰 사람은 사람들의 정수리가 보여서 별로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하루만 생각해도 이렇게 쓸 일이 많은데, 왜 몇 개월 아니 하루만 지나면 그 수많은 생각들과 감상은 어디로 사라지는지 모르겠다.


합정이라는 곳을 좀 더 알고 싶어서 이틀만 출근하는 연휴가 많은 다음 주에는 합정 4일 살기를 한 번 해볼까도 잠시 생각해 봤다. 그래서 방금 전 지하철로 오는 길에 야놀자, 아고다, 에어비앤비 어플을 깔았다. 이 합정이라는 곳은 바닥을 하늘색으로 칠해놓은 하늘길이 있는데 아이디어가 좋은 것 같다.


내가 살고 있는 안산이라는 도시도 일부분을 색깔을 칠해 '분홍길'이런 식으로 이름을 붙이면 기물파손죄가 될까.


어쨌든 네이버 지도에도 '하늘길'이라고 되어있더라.


여기는 혼자 오는 사람을 아까 2시간 전에 1명 봤고, 남녀 섞인 친구 4명에서 오거나 여자 2명에서 오거나, 남 1, 여 1 이렇게 오는 경우가 있다.


책을 읽기에는 조명이 약간 어두는 감이 있지만 하루키 단편 2개를 읽기는 했다. 책 제목은 <지금은 없는 공주를 위하여> 그냥 별거 없는데 그래서 더더욱 혼자 왔지만 친구랑 수다 떠는 기분이 든다.


여름부터 거의 혼자 이런 식으로 서울을 떠돌아다니고 있다.

나는 왜 이러고 있는가. 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도록 해야겠다.

나는 요즘 뭔가 잘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유는 아마 '이렇게 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나는 6월 첫날, 그러니 여름이 시작되는 첫날 누군가와의 약속이 잡혀있었다.

그리고 그 약속은 내가 2주 전부터 기다려온 약속이었다. 그러나 어떠한 이유로 인해 당일 파토가 났고, 3주 뒤에 연락을 한다고 했지만, 연락이 오지 않았고, 그것은 딱히 놀랍지 않았다.


그날 나는 혼자 놀았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번 여름을 절대 망치지 않겠다고. 단 하루도 우울하게 보내지 않겠다고.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딱히 우울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상할 정도로 태양에 집착했고, 나가고 싶었으면 나갔으며, 거의 매일 카페에 간 적도 있었으며,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먹었으며, 먹기 싫으면 먹지 않았고, 서울 가고 싶으면 서울에 갔으며, 3시간 전에 처음 본 남자랑 저녁도 먹었다. 다음날 한강도 갔다. 그리고 깔끔하게 헤어졌다. 그 사람이 일주일 뒤 추석을 잘 보내라고 문자가 왔다. 그리고 그 이후 만난 적은 없다.


다행히 주식은 다시 올라가고 있고, 나는 자취 7개월 차에 접어들고 있으며, 돈을 딱히 모으고 있지 않다. 나의 관심사는 오로지 '단 하루도 기분 나쁜 일이 없게 사는 것'에 맞춰져 있다. 그러기 위해서 이런 히피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좀 성실하게 사는데 싶은 것은 새벽 4시에 일어나서 4시간 정도 글을 쓰고 출근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에게 있어 필연적인 것으로,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다. 제대로 살지를 못할 것 같다.


그리고 정신건강과 행복을 위해 일찍 잔다. 밤새는 건 지양한다. 오늘도 막차 전에 집으로 갈 것이다.


참 이상하게도 직장에서의 나와 직장밖에서의 내가 철저하게 분리가 된다. 그래서 직장에서 나오면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딱히 떠올리려 노력하지도 않는다.


오늘도 퇴근하고 화장을 시작했으며 렌즈를 끼고, 옷도 갈아입고 1시간 10분 지하철을 타고 여기로 온 것이다. 지하철에서는 사람을 구경하거나 자리가 나면 앉아서 책을 읽는다.

서울 지하철은 노선이 잎사귀처럼 갈라져버려 난감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이제 제법 익숙해져 간다.


지방에 살던 애들이,라고 일반화할 순 없겠지만 어쨌든 아직은 지방 거주 기간이 수도권 거주기간을 월등히 추월하는 내가 왠만한 수도권에서 살던 애들보다 더 자주 놀러 다니는 것 같다. 새로움의 연속이다.


어쨌든 그 약속 파토 사건 이후로 계속 떠돌아다니고 있다. 먼저 연락할 생각은 없고, 자꾸 내가 했던 말을 기억을 못 해서 나도 기억에서 잊어버릴 생각이다. 그리고 그 파토사건 이후 혼자 너무 새롭고 재미있는 것들을 많이 해서 기억의 저편으로 밀려났다. 그날은 오전 그 파토 카톡을 봤을 때만 당황했고 오후는 오히려 재밌었다고 할 수 있는 날이었다.


혼자 바도 가고, 한강도 2번이나 가보고, 한강뷰 카페도 가고. 혼자 못 하는 건 없는 듯하다.


오늘은 금요일, 집 앞 카페 갈까 생각하다가, 집 앞 역 앞에서 카페 후보 4곳에 앉아있는 모습을 상상해 봤는데 다 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별다른 고민 없이 여기로 왔다. 너무나 충만한 금요일이다. 주어진 휴일을 하루도 낭비하지 않다니. 금, 토, 일 3일간의 휴식 중 금요일을 이렇게 보람 있고 즐겁게 보내다니. 내 선택은 왜 항상 틀리지 않을까.


아무리 남들이 날 흔들고, 약속을 파토내도 왜 나는 잘 살까.

수많은 경우의 수에 대응하는 유연한 삶.

한강 앞 도로에는 수많은 차가 다니고 있다. 저 차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시간은 어느덧 9시 45분이다.

카페에 충전을 맡겨둔 스마트폰을 가지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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